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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Oct 18. 2024

내 아이도 자란다

큰 아이가 6학년이 되면서 바깥 활동이 잦아졌다. 그동안 친구들과 그다지 친밀한 교류가 없는 것 같아 걱정했던 엄마는 내심 기분이 좋다.

학교 마치고도 바로바로 오던 녀석이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 땐 엄마에게 전화를 하든지 톡을 남기라고 해도 깜깜무소식이다. 몇 차례 주의를 주다가 이제는 그냥 그려려니하게 되었다.


훈육이란 명목으로 그 똑같은 대화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른데, 요 녀석은 좀처럼 다루기가 힘드니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작고 사소한 말 한마디를 기억해 뒀다가 어느 순간 내게 되돌려주는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여린 그 아이의 마음에 괜한 생채기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되돌아오는 말을 들을 땐 "그때 난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밖에서 밥을 먹고 다니는 횟수도 늘어났다. 집에서 때가 되어 기다리다 전화를 하면 그제서야 말을 하니 엄마 입장에선 답답한 날도 늘어간다. 미리 얘기해 주면 좋으련만...


그러다 어제처럼 갑작스런 통보가 있을 땐 기쁘기도 당황스럽기도 하다.

"엄마, 오늘 5시에 친구가 만나서 저녁 먹재요~"

어머~~ 요 녀석 웬일이야~~ 미리 얘기를 다 하구!!

매번 나가기 직전에 통보하고 나가던 녀석이 1시간이나 더 남은 시간에 얘기를 하다니!! 말이 없는 녀석의 한마디는 그냥 무슨 말이든 기쁘게 받게 되었다.


"근데 오늘은 멤버가 누구야?"

"○○랑 여자 3명요"

뭐야? 여자 친구도 끼어 있어?

뭐든 뭐든 요 녀석이 겪는 모든 일상이 내게도 처음이니 새로울 수밖에 없다.

저녁 먹은 후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녀석(요즘 녀석의 패턴을 보면 기본 9시)의 손에 쇼핑백 하나가 들려있다.

"그건 뭐야?"

"○○ 생일 선물요~!"

"친구 생일인데 선물을 받아왔어?"

"원래 생일이 내일이에요"

아하~ 오늘은 생일이어 만나긴 했는데 선물을 미리 준비 못해서 내일 주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들고 왔다.  요거지?

아휴~~

좀 친절하게 설명 좀 해주면 안 되겠니?

뭘 묻질 않으면 도통 앞뒤 사정을 알 수가 없구나!

엄마가 똑똑한 질문을 해야 했다. 요 녀석과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려면.


오늘 아침에는 혹시나 해서 얘길 해봤다.

"이번주 일요일엔 외할머니 산소에 가는 날이야. 약속 잡지 마~~"

"벌써 잡았는데요?"

"그럼 취소해야겠다~"

"네~"

앞으로는 주말 스케줄은 미리미리 확인해 봐야겠구나. 또 한 가지 머릿속에 입력사항이 늘어났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했었지? 엄마에게 사소한 지적이나 꾸지람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것이 없어도 나 나름 잘 자랐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도 그렇게 잘 자라리라고 믿어보자. 도움을 요청할 때 도울 수 있는 거리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로 하자. 손 닿을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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