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생각을 하고 있구나

by 날마다 하루살이
녀석은 중1성장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거실에서 뒤늦게 수행평가 준비를 시작하기에 공부방에 들어가서 하라고 했다. 단순한 권유 사항이라도 충분히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녀석은 도통 따라주질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진다.


"어제는 너한테 방해될까 봐 우쭈에게 폰 소리도 줄이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우쭈가 그 말에 상처받아서 삐졌었어. 그러니까 여기서 공부하지 말고 공부방으로 들어가면 좋겠어~"

그래도 자기는 방해되지 않는다고 계속 앉아서 무언가 하는 모양새를 멈추지 않는다. 태블릿으로 뭘 하나..했더니 지뢰찾기를 하고 있었다. 휴우~ 곧 끝내고 해야할 것을 시작하겠지. 입 꾹 닫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가 옆에서 나누는 대화가 계속 들리니 집중이 잘 안 되었는지 그제서야,


"엄마, 공부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한다.


내가 건넨 첫마디에 따라줬더라면 낭비되었던 몇 분의 시간도 아꼈을 테고, 무엇보다 엄마의 말을 잘 따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느꼈을 텐데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거봐~엄마 말 들으라니까'라는 핀잔만 받아 들게 되었다. 물론 철저히 입을 막은 채 녀석에겐 최대한 발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기본이다.


"그래? 얼른 들어가서 해~"


세상 다정한 엄마 모드로 장착해야 한다. 일단 녀석이 공부방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놓인다. 무엇이든 하겠지.


그동안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내 맘을 들여다보면 결과물을 보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노력이라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났던 것이었다. 녀석이 조금씩이라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난 진정되었다. 물론 더 바라는 점도 있긴 하지만 말은 최대한 아끼고 녀석이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녀석을 이제 조금씩 더 믿고 싶다.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져서 다행이다.


녀석의 그 뒤 시간은 스스로에게 맡긴 채 난 잠자리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6시가 훌쩍 넘었다. 보통 중간에 두어 번 깨곤 했었는데 어젯밤엔 피곤했었나 보다.


아침을 준비하고 녀석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녀석이 아침을 먹어주길 바라면서 매번 묻는 말.


"○○, 아침 먹을 거지?"

"네~"

"오늘은 카레야~ 엄마가 어제 새로 만들었어~"


가끔 차려두고 안 먹고 가는 날이 있은 이후 두 번 체크는 필수가 되었다. 아침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빠진 이후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녀석 표정이 편안해진 것만으로도 난 좋다.


"어제는 하려던 거 다 했어? 10시에 태블릿 꺼지지 않았어?"

"네~"

"근데 뭐 한 거였어?"

"과학 수행 평가요~"

"어제 수행평가 본다고 했었잖아"

"어제 안 하고 미뤄졌어요."

"그랬구나.. 그럼 다시 또 준비해야 했구나. "

"ppt 만들기가 중요해요~ 기말고사가 25점이고 수행평가가 20점이더라고요~"

"아~~ 그러네.. 수행평가 준비도 잘해야겠네."


녀석이 아무 생각도 없이 있나 싶었었는데 적절한 생각을 하고 있긴 한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미리미리는 아니더라도 닥치는 대로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나가다 보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겠지. 녀석이 본인의 생활에 주도권을 잘 잡고 방향키를 잘 조절해 나가길 바란다. 비록 조금(?) 미루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기한 내에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고쳐 보자. 바라보는 입장에서 조바심은 녀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도 나는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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