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 꼼짝도 하기 싫은 토요일 오전…
택배가 왔다며 신랑이 현관문을 열고 커다란 스티로폼 택배상자를 가지고 들어온다.
“뭐야? 인터넷에서 음식 시켰어?”
“아니, 엄마가 제사 지낸 음식 보낸다고 문자 왔던데?”
택배 상자 안에는 얼음대용으로 쓴 꽁꽁 언 식혜를 비롯해 각종 전과 튀김, 나물들, 한번 먹을 만큼 소분한 국 봉지, 평소에는 선뜻 사 먹기 힘든 구이용 소고기까지 정말 종합선물세트처럼 ‘제사상 음식 선물상자’가 집으로 온 것이다.
얼마 전에도 시골에서 이모님들과 김장을 했다며 배추김치, 무김치, 사과주스까지 3박스나 택배로 보내주셨는데 또 제사음식까지 보내주신다.
예전에는 이런 걸 보내주시면 남편은 양이 너무 많다며 투덜투덜 댔고, 나는 식비도 아끼고 좋네~ 하면서 반색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확히 반대의 양상이다.
남편은 엄마가 해준 반찬이 맛있다며 좋아했고, 나는 시댁에 뭐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며 왠지 모를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마침 마땅히 먹을 것이 없던 주말 점심에 튀김과 전을 데워서 맥주와 함께 먹으니 맛있다.
“잘~ 한다. 시어머니가 힘들게 해 주신 제사 음식을 저렇게 편하게 먹고 있고…” 라며 심기를 건드린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잘 먹고 있었는데 괜히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진다.
나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K-장녀이다. 어려서부터 반항이라고는 몰랐고 말 잘 듣는 착한 첫째 딸이었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이 늦었던 아주버님보다 일찍 결혼을 한 남편덕에 둘째지만 첫 며느리로서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두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면서 키우는 과정에서 왠지 모를 양가에 섭섭함도 들고, 뒤늦게 들어온 형님에게 질투 아닌 감정도 느꼈다.
아기가 없을 때는 시댁에 가는 것이 좋았다. 따뜻한 시부모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셔서 며칠씩 있다 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 년에 특별한 날에만 가는데도 아이들 짐까지 캐리어에 바리바리 싸서 가지만 하루이틀 자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첫 데이트에서 카페라기보다는 찻집에 가까웠던 그곳에서 엄마 이야기를 하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그의 눈이 기억이 난다.
스무 살에 가난한 집안에 장남과 결혼해서 아래로 줄줄이 여섯의 시동생을 키워야 했던 젊은 시절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몰래 봤던 남편의 블로그에는 엄마가 다음 생애에는 자신의 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가여운 엄마를 이제는 자기가 품어주고 싶다고…
그렇게 남편에게 소중한 존재인 시어머니에게 나는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을 즐기면서 사셨으면 좋겠는데 왜 아직도 자식들에게 마음을 쏟고 부담을 주실까?
나는 이렇게 좋은 시어머님을 뒀으면서도 삐딱한 마음을 갖는 걸까?
그래 오늘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전화 한 통, 아니면 애교 섞인 이모티콘을 넣어 문자 한 통 남겨야겠다.. 하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나중에 엄마한테 잘 먹었다고 문자라도 보내드려 “ 하는데 딱 하기 싫어진다.
이래서 공부 안 하는 애들한테 “이제 그만 놀고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회피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켠다.
어머님~
보내주신 제사음식이랑 김치 너무 잘 먹었어요~
날씨도 춥고 힘드실 텐데 택배까지 보내주시느라 너무 죄송하네요ㅠㅜ
감사히 잘 먹을게요~
아버님이랑 건강조심하시고 조만간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