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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내 새벽을 뺏어간 소지섭

-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by 물구나무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을 봤다.
줄거리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친절히 설명해 줄 테니,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느낀 것들, 내 마음에 남은 조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지섭.
진짜 멋있다. 남자가 봐도 멋있다.
칼에 찔리고, 총에 맞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도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옷이 찢기고 흙먼지가 묻어도,
그의 눈빛은 선명하고 흔들림 없다.
화면을 통해 느껴지는 단단함, 그 어른 남자의 묵직함.
오래간만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말 그대로 내 새벽을 통째로 뺏어가 버렸다.

이야기 속에는 ‘여자’가 없다.
등장인물 정보에도 여성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남성적인 세계.
그 마초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신선했고,
이상하게도 거기에 빨려 들어갔다.
어릴 적 보던 비릿한 누아르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
가슴이 묘하게 뜨거워졌다.

하지만, 단순히 총과 칼, 피와 복수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가족’이 있고, ‘부성애’가 있고,
‘규칙’과 ‘책임’이라는 단단한 주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두 명의 ‘보스’와 그들의 ‘자식’이었다.
한 사람은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걸 내어주려 했다.
자신의 호텔을 넘겨주면서까지, 아들을 지키려 했던 그 마음.
조직의 보스도 결국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차가운 얼굴 뒤에도 피가 흐르고,
사랑이 있다는 걸 느꼈다.

반대로, 또 한 명의 보스는
자식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매일이 악몽 같고 피비린내 나는 자리,
그걸 자식만큼은 모르고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려 아버지를 죽인다.

그가 남긴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며 말은 하셨지만,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는 한 번도 물어보지 않으셨잖아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부모와 자식의 오해가 담겨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가진 걸 다 주어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결국 아이는 외롭고, 부모는 오해받는다.
사랑의 방식은 늘 엇갈린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배신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믿었던 이가 칼날을 들이댄다.
조직이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현실과 너무 닮아 있었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등을 돌려야 했고,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를 밀어낸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이 이 드라마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규칙'에 대한 이야기.
한 보스의 아들은 결국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죽었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정의롭게,
사업은 정직하게,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걸 어길 때, 균열이 생기고, 결국 무너진다.

우리는 그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잊는다.
권력에 취한 정치인,
더 가지려다 무너지는 기업인들.
그 모두가 ‘규칙’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본 결과다.
드라마는 그것을 잔인하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대사.
한 검사가 소지섭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이 자리에 앉으려고 난린데,
너희 형제는 왜 그냥 준다는데도 거절하냐?"
소지섭은 말한다.
“이젠 더 올라갈 곳도 없고,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아서 싫다.”

그 대사 앞에서 한참 멈췄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찔렀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욕심,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어쩌면 그것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데도 왜 나는 더 가지려 하는 걸까.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나는 왜 이렇게 바락바락 살아가고 있는 건지.
그 생각에 마음이 시끄러워졌다.

광장은 르와르 영화다.
피가 난무하고, 폭력과 죽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
관계의 비극,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기본’들을 되새기게 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새벽은 소지섭에게 빼앗겼지만
그 대신 나는 많은 걸 얻은 것 같다.
오랜만에 뜨겁고 진지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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