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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Nov 28. 2023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생기 있는 자유 작가의 어느 행복한 수요일



2028년 11월 22일 수요일 (5년 후, 그날을 꿈꾸며)


  새벽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린다. 바쁜 일정이지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커피 한 모금은 놓칠 수 없다. 냉동실에서 꺼내 놓은 떡은 먹기 좋게 녹아 있다. 쫀득쫀득 찰진 식감에 오도독 씹히는 호두와 땅콩은 가볍지만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하기에 좋다. 남편과 아이들은 단백질 셰이크와 스크램블 에그로 후다닥 아침을 해결하고 출근 등교를 완료했다. 잠시 숨을 들이켜고 하루 일정을 확인해 본다. 영어 그림책방 소모임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책들로 이야기 꽃을 피운 뒤, 한 분 한 분 영어교육 방향을 코칭해 드리기로 했다. 개인별 상담에 집중하기 위해 일곱 분 신청을 받았는데 다 오시려나 잠시 걱정이 스친다. 책방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도 노쇼는 늘 있기 마련이니 상처받지 말자 되뇌어본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만남 앞에서 여전히 찾아오는 울렁증, 그나마 감사한 건 조금씩 나아져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상대로 두 분이 오시지 않았다. 이렇게 남는 자투리 시간엔 책 읽기로 충전한다. 5년 전, 용기를 내어 도전했던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 덕분에 그간 여러모로 깊어졌다. 140여 명의 동기들과 함께 독서모임, 운동모임, 글쓰기 모임 등을 꾸준히 해왔다. 출간하신 작가님들 덕분에 책장도 가득 차고 마음도 두둑하다. 다들 어쩜 이렇게 책을 뚝딱뚝딱 써내셨는지.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깊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 요즘 써내는 글은 조금씩 삶의 향기를 품는다. 아직 출간 작가가 된 건 아니지만 간간이 들어오는 미팅과 협업 제안들이 기적 같다. 이 기적들이 쌓이다 보면 조만간 나도 출간 작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인가. 기분 좋은 상상에 오전 마무리 시간이 즐겁다.


  내 사랑 혼밥을 포기하고 오늘은 오래간만에 영혼의 친구가 대화를 하러 왔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샐러드 김밥을 주문하고 따듯한 둥굴레차를 준비한다. 아이들 양육에 바쁘던 시절은 카톡과 줌으로 안부를 묻고 응원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서로 찾아다니며 마음을 토닥일 수 있다. 사실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라 이렇게 짬을 내기 쉽지 않은데, 시간을 내어준 마음이 포근하다. 밤을 새워도 모자란 수다는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마무리를 짓고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헤어져도 마음이 든든하고 기대가 되는 건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기 때문이겠지. 말과 태도의 온도를 너무도 쉽게 알아차리는 레이더 때문에 피곤한 삶이지만, 진심 어린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음이 쉽지 않은 방문을 해준 그녀를 통해 빛을 발한다.



  오후에는 하교한 아이들이 책방에 찾아온다. 명칭은 영어그림책 도서관이지만 영어그림책을 좋아하거나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도 쉬어 간다. 수준에 맞는 영어책 추천과 더불어 책 읽기를 꾸준히 해나갈 수 있도록 코칭한다. 때론 스토리텔러가 되어 맛깔나게 읽어주고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토닥여주는 일도 한다. 틈틈이 배우던 학습코칭 자격증 과정 덕분에 좋은 선생님들과 협업 기회도 생겼다. 영어와 선생님에 대한 정서가 편해야 아이들도 영어책 읽기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교재연구와 그림책 강좌 수강도 채워가며 오늘도 배우고 있다. 혼자서 소소하게 꾸려가는 이곳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가지게 된 오랜 꿈이었다. 가끔, 학교 수업에서 만났던 그때 그 시절의 소중한 제자들이 자신을 닮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책방에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여전히 영어그림책을 신나게 읽어주는 선생님이 있는 곳에 찾아와 고군분투 직장생활, 좌충우돌 육아 이야기, 마음에 간직한 꿈 이야기 등을 나누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 그런 따듯한 공간을 위해 계속해서 꿈꿀 것이다.


  꿈을 꾼다는 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도,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꿈을 꾸다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본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다 나를 돌보게 된 일, 나를 돌보다 다른 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귀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경쟁으로 차가워진 시선 속에서 서로 보듬어 주는 일이 될 수 있음을. 혼자인 듯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존재임을 알아가는 따듯한 여정이 즐겁다. 그 시작에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와 아름답고 온화한 이은경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조용히 살던 내가 그곳에 문을 두드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5년 전 그날의 다짐이 귓가에 맴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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