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단 May 06. 2024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

선택적 주의 (selective attention)

밴쿠버는 전기 자동차를 사면 OK가 적힌 decal를 발행한다. 차를 구입한 후 관련 정부 사이트에 신청을 하면 집으로 배달된다. 이것을 차 후면에 붙이면 되는데 OK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는 전기 자동차라는 표시이고, 전기차들은 BC 하이웨이에서 HOV lane을 달릴 수 있다. HOV는 주로 맨 왼쪽(간혹 오른쪽인 곳도 있다) 차선이고 버스와 두 사람 이상이 탄 차들만 달릴 수 있는 전용차선이다. 그런데 전기차는 운전자 한 사람만 타고 있어도 HOV 차선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로 기어가는 차선을 옆에 두고 HOV 차선에서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 전기차의 오너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OK 스티커를 새 차에 붙일 번호판 옆에 가로로 붙일지 세로로 붙일지 혹은 트렁크 오른쪽에 붙일지 왼쪽에 붙일지 등등 신중을 기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Decal을 붙인 시각적으로 느끼는 전체적인 균형이 나에게는 중요했기 때문이다. 


접착력이 센 스티커를 위해 전용 Mount를 아마존에서 팔기도 한다. 세번째 사진이 마운트를 이용한 것.
두 번째 사진은 decal를 오려서 양쪽에 붙였다. 법적으로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스티커 부착 위치가 중요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스티커를 붙인 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전에도 OK decal를 붙인 차들이 있었을 텐데 내 관심사가 되고 나서야 그 차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 붙어있는 스티커들을 보면서 사람들 취향이 정말 각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쩌다가 처음 보는 위치에 붙여진 OK 글자를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방법으로 스티커를 붙인 차를 보았다. 이 스티커의 크기는 한 가지뿐이다. 개인적으로 조금만 작았으면 차에 직접 붙이지 않고(다시 뗀다면 차 페인트가 벗겨질 것 같아서) 번호판 가운데에 어찌어찌 붙일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었다.(이때는 전용 Mount가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어제 그 차는 이 스티커의 크기를 줄이고 줄여 내가 붙이고 싶었던 바로 그곳, 차 보험 스티커를 붙이는 자리에 OK decal를 붙였던 것이다. 

주홍색 부분은 원래 차 보험을 들었다는 표시로 보험 날짜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던 자리다. 이제는 온라인으로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이 되어 더 이상 보험 스티커를 붙일 필요가 없다.


이게 뭐라고! 나의 관심은 온통 그 스티커의 위치에 쏠렸다. "아니 저렇게 작은 스티커가 있었다고? 와 저거 내가 딱 생각했던 그 자리인데? 그런데 저렇게 붙여도 되나?"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같이 차를 타고 오던 친구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없었다. 친구는 전기차가 아니어서 예전의 나처럼 그 스티커에 관심을 둔 적이 없는 것이다. 친구는 한낱 스티커에 흥분한 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미지근한 응대를 해주었다.

"그랬어?" 끝.


오늘 아침 남편과 코스코에 장을 보러 가는 중에 OK 사인을 붙인 차를 보자마자 어제 본 그 스티커가 생각이 나서 어떤 자리에 어떻게 붙어 있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스티커가 그렇게 작은 사이즈가 있는 걸까?" (이 말에 귀 기울이면 "나도 그 사이즈로 갖고 싶어"라는 메아리가 들릴지도 모름) 애초에 스티커의 크기와 붙이는 자리가 중요했던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도 어제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뭐 작게 만들었나 보지." 끝. 


아마도 의문이 풀릴 때까지 이 생각은 계속 떠오를 것이고 나는 그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상대의 공감 반응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관심분야가 있다. 그것만 들리고 보인다. 내 귀에 들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진심을 담아 반응한다. 마치 자신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장면과 소리는 필터로 걸러내듯 말이다. 


분명 우리 앞에 같은 차가 가고 있었는데 나는 봤고 친구는 보지 못한 스티커처럼,

OK 스티커의 크기와 접착 위치가 중요한 나와 그까짓 것은 아무래도 별 상관없는 남편처럼,

또는 같은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도 기억에 남는 장면과 영화의 해석이 각각인 것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이렇게 자기에게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와 관련이 깊은 현상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한다.


일상생활 중에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고 듣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오해를 줄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대화로 끝낸 내 친구와 남편의 반응을 '내 말을 무시했다'면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면 서운한 감정이 들어 마음에 벽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관심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보편적인 사람들의 반응으로 이해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상대가 나의 관심 밖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어 주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어제와 오늘 나는 '귀 열고 눈으로 듣기!'라고 마음속에 한번 더 강조 표시를 해두었다.


올바른 소통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사람은 자기의 관심사에만 귀가 열리고 눈이 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체화되었을 때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나와의 관계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킷이 진짜인 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