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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Jun 07. 2024

엄마가 끊어야 딸이 산다

하마터면 진상 엄마가 될 뻔했다


영화가 당기는 평온한 오후였다. 브룩쉴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부의 어머니>에 눈이 멈췄다.

브룩 쉴즈 사진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가서 사던 시절이 있었다. 콩닥 거리는 심장으로 표를 사고는 중학생인 것이 걸릴까 봐 맨 앞 줄에 앉아서 봤던 '끝없는 사랑'은 며칠 동안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살면서 그녀만큼 좋아했던 배우는 없었던 것 같다. 뭣 때문에 그렇게 좋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예뻤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또래의 그녀가 인형처럼 너무 예뻐서 그녀의 사진을 볼 때마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는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었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낯설었다. 몇 분이 지나도 그녀 같지 않은 그녀 때문에 영화를 잠시 멈추고 출연자들 이름과 배역 이름을 확인했다.

브룩 쉴즈가 맞다!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사라졌다! 영화를 그만 보고 싶을 만큼 나이 든 그녀의 모습에 실망했다. 그때 자라지 않은 내 마음속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사십 년이 흘렀잖아, 늙는 게 당연하지...'


가끔 내 나이도 헷갈려서 덧셈 뺄셈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이 계산을 마치면 "어머,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다고?" 라며 언제나 놀란다. 바깥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내 안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내가 점찍은 어느 시점에서 정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브룩 쉴즈도 그녀를 좋아했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성인이 된 내 아이들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작년에 결혼을 한 딸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 내 안에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음을 알았는데 오늘 영화를 보면서 해결이 되었다.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으니 눈물을 쏟을 내용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한 장면에서 내 감정이 공명했고 눈물이 쏟아졌다.


브룩 쉴즈는 딸의 결혼식을 함께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딸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협찬을 이용하는 결혼식을 선택하자 엄마의 도움이 필요 없어졌다. 이벤트 회사의 스케줄에 맞춰 결혼 스냅사진을 찍고 있는 딸을 엄마인 브룩 쉴즈가 멀리서 바라보며 지나가는 장면이다. 바로 이 순간에 울컥했던 감정이 나를 돌아보게 했고 이 글을 쓰게 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그녀의 두 눈 속에 내 마음이 있었다.


녹록지 않았던 이민 생활에 적응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서로 위해주고 존경해 주는 짝을 만나 재미있게 잘 살아가고 있는 딸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 때가 있었다. 알 수 없었던 그 감정의 핵이 브룩 쉴즈가 멀리서 딸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동자에 공명을 일으키며 폭발했나 보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뿌연 안갯속에 갇힌 듯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예쁜 딸과 멋진 사위

남편이 하던 일이 잘 안 되어 가정경제가 기울어지면서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 과외 그리고 주말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마쳤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높은 연봉을 받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현명하게 자신의 일을 성취해 가는 딸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집으로 들어와 얼마간 함께 살 것이라고 기대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졸업 후 바로 뉴욕에서 일을 하게 되어 더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리고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이제는 영영 함께 살 기회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많이 서운했다. 대학교 입학하고 기숙사에 짐을 실어다 주던 그날 이후의 딸 모습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십 년 세월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그래서 단 몇 년이라도 함께 살면서 소소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혼과 함께 그 기회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나도 고등학교 이후 고향을 떠나게 되어 친정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짧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크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에 내 딸은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나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딸에게 투사했던 것이 보인다.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준비를 하고 집을 구입하는 딸을 보면서 든든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제는 딸에게 내가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서 허전했다. 독립한 딸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로 되돌려 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아이의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갓 태어난 아기도 독립된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며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이룬 딸을 나에게 종속시키려 했다. 때가 되면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만 담고 있었을 뿐이고 마음은 집착으로 질척이며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하마터면 진상 엄마가 될 뻔했다. 이름 지을 수 없었던 감정과 모호했던 생각들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차분히 정리되었다.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독립을 큰 목소리로 강조하던 내가 집착의 늪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나도 새로운 관계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음을 인정해야겠다. 엄마가 집착을 끊어야 딸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엄마에게만 의지하던 내 안의 어린 딸은 이제 사라지고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 딸이 내 앞에 있다.  지금부터 나는 가깝고도 멀게 살아가는 모녀의 '상리공생' 관계를 지향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딸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활기차게 내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이제야 딸의 결혼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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