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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망치는 2가지 방법

R.I.P 굿바이 마이 파트너

by 향단

지난 수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그녀가 어떤 사고로 인해 중태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그리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널스가 울면서 오피스 문을 열고 나에게 달려오면서 그녀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널스와 저는 함께 껴안고 엉엉 울었지요. 믿기지 않은 그녀의 사망 소식에 우리는 할 말을 잃은 채 한참 동안 울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케어를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시니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서로를 다독이면서 오전 케어를 시작해야만 했지요. 이런 슬픔 속에서도 일상은 이렇게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위선으로 느껴져 힘들었습니다. 순간순간 가슴이 미어져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어르신들께 동료의 사망 소식을 어나운스 할 때 오전 내내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 HR 매니저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어서 바로 퇴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도 쉴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를 해 주었지요. 작은 회사 안에서 처음 맞은 큰 상실에 모든 직원들이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많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회사 Chaple에 어르신들과 스탭들을 위해 Ram을 기리는 곳을 만들어 놓았다.


Ram은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2년 전부터 직원이었으니까 15년째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올해 초부터는 나의 수요일 근무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롱 시프트, 저는 숏 시프트로 함께 일을 해왔지요. 초등학생 정도의 왜소한 체격인 그녀의 인생은 '일'뿐이었습니다.

롱 텀 케어센터, 다른 어시스티드 리빙 센터 그리고 우리 회사, 이렇게 세 군데에서 일을 해오다가 작년부터는 우리 회사에서만 일을 했는데 short of staff 상황인 모든 디파트먼트의 자리를 채워오던 그녀의 일 '양'은 세 직장에서 일할 때와 다름없었을 거예요. Janitor, Housekeeping, Kitchen, Nursing, 오전, 오후 그리고 야간. 어느 디파트먼트 어느 시간이든 상관없이 시프트 오퍼를 수락했던 그녀는 마치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짧은 인생을 일만 하다가 떠난 그녀의 삶이 애처로워요. 이렇게 허무하게 떠난 그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제 기억 속에 그녀는 Tea만 마시고 있어요. 음식을 권할 때마다 사양해서 언젠가부터는 권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어요. '한 번 더 따뜻하게 음식을 권해볼걸,,,'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이렇게 후회할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할까요? 그동안 겪었던 모든 상실 앞에서 후회가 되는 일들은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여전히 생활 속에서는 생각 없이 흘러 보내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네요. 몇 번의 경험 후에도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뒤돌아 보니 부끄러움과 자책감이 밀려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내 마음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과 보여줄 수 행동을 아끼지 마세요. 상대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표현해 주는 말, 눈짓 그리고 미소를 나중으로 미루지 마세요.


내가 Ram을 보내면서 이토록 미안하고 아쉬운 이유 중 한 가지가 '13년 만에 파트너로 함께 일하게 된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 순간 표현해야 해요, 더 이상 '다음'으로 미루면 안 돼요, 우리들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요.


널싱 오피스에 붙여놓은 그녀의 부고 소식


Punjabi인 그녀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나보다 12살이 어린 Ram의 마지막 모습을 내가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는데 오늘 뵙고 왔네요. 불의의 사고로 떠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나면 더 오랫동안 힘들 것 같아서 그 줄에는 서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먹고 갔는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와 가까웠던 직장 동료 S의 지시대로 움직이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고인의 마지막 모습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장례식장 로비에 Sikh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검은색 스카프가 있었어요. 그것을 머리에 쓰고 고인이 누워 있는 곳으로 줄을 서서 갔습니다. 그곳에 준비된 꽃잎을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 놓으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Ram, 함께 일해서 좋았습니다. 생전에 이 말을 전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의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Ram 부디 편히 가세요.'

예쁘게 화장을 받고 두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이 평화로워 보여서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은 덜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Sikh교의 전통대로 'Ardas' 리딩이 끝난 후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널싱 매니저와 S가 우리 회사를 대표로 헌정사를 읽는 동안 또다시 슬픔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동료가 어깨에 얹어 준 위로의 손짓에 눈물을 멈출 수 있었는데요, 이 글을 쓰기 전에 Sikh교 장례식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장례식 에티켓 중에 "Displays of emotion are not common"이라는 문장이 있네요. 이 문장대로라면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나는 그들에게 큰 실례를 범하고 온 거예요. Sikh교는 환생을 믿고 죽음은 영혼이 그들의 신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신을 존경하는 표현으로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적혀있거든요.


그런데 오늘 장례식의 모든 차례가 끝나고 화장을 하기 전에 그녀의 가족과 아직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지인들이 차례로 인사를 나누는 순서가 되었을 때 Ram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울면서 차마 그녀 앞을 떠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인터넷 속 정보처럼 반드시 눈물을 참아야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요, 종교의식을 따르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어찌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울음까지 막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우리들을 다시 울렸습니다.


가족,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모두 마친 그녀는 곧 화장터로 옮겨졌습니다. 장례식장 바로 옆에 화장하는 곳이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태우는 의식에 참석하게 된 거죠. 고인의 가족들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때 'Now she's gone, It's done.'이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에 화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후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화장터에 가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 과정은 좀 충격이었습니다. 이 순간을 내가 함께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내 아이를 화장할 때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어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던 그때의 슬픔이 그대로 올라와 그 자리에 있고 싶지가 않았어요. 아, 삶과 죽음이 모두 현실 같지 않았습니다. 살았다고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고 죽었다는 것이 죽은 것 같지 않은 혼란스러운 감정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습니다. 이렇게 슬프고 아픈 이 순간의 감정도 잠시 후면 옅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녀의 존재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니 삶과 죽음은 단지 무대에 올려진 연극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대 위에 서있는 배우이고 너는 지금 눈물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마음속에서 메아리가 울렸습니다. 온갖 감정들이 오르내리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렀던 곳으로 돌아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Ram 어머니를 안아주며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었고 자식 잃은 어미의 아픔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 동료들끼리도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현실이었고 우리도 연극배우가 아니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직장 동료들이 회사 근처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저는 혼자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회사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핑계를 대고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가는 중에 우리 동네의 한 디저트 카페에 들러 딸기 팬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오늘의 감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나의 우울한 감정이 가족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이의 상실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삶과 죽음은 애초에 그리 특별하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또각또각 흐르는 시간 중 '한 점의 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 '삶'이라는 한 점을 살아가는 중이고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한 점을 지나가겠지.

그저 '한 점' 일뿐인 삶을 아등바등 살 이유도 없고 또 반드시 지나칠 '한 점'인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만나는 모든 인연들(자연, 환경, 생명, 물질)을 감사한 마음으로 눈과 마음에 담으면서 삶을 이어가다가 죽음의 점을 지날 때가 오면 가볍게 굿바이 인사를 남기고 가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아하, 죽을 때 세상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면서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에게는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요.

오늘 동료와의 이별 그리고 내가 아직도 힘들어하는 상실의 아픔들을 돌이켜보니 모두 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어요. 그리고 지병을 앓고 계셔서 언젠가는 떠나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엄마의 죽음이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송한 마음'인 것 같아요.


어느 날 문득 떠난 어린 딸과 언니 그리고 암 진단 후 3주 만에 떠나신 아빠와는 모두 예상 못 했던 이별을 해야 했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제가 간호를 하면서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를 떠올릴 때는 가슴이 무겁지 않은데 코비드 19 기간에 홀로 병원에서 눈을 감으셔야 했던 엄마와 언니 그리고 어린 딸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숨이 막히거든요.




차분히 나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다른 동료들보다 유난히 힘들어했던 이유를 찾은 것 같아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직 치유되지 못한 나의 다른 '갑작스러운' 상실의 아픔들을 모두 끌어올렸던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떠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아픔과 힘든 시간을 겪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던 무의식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헛된 생각으로 망치고 있었어요. 알아차리니 편안해졌습니다.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료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내 마음도 토닥여줬네요.


"괜찮아, 지금은 Ram도 울 아가도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모두 다 평온함 속에 계실 거야. 그들의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웃어주는 거야. 이 생에 미련을 버리고 훨훨 날아가실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떠날 때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떠나게 된다고 해도 남은 사람들은 또 그들의 삶을 잘 살아갈 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듯이. 우리 애들은 나보다 강하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극 T인 남편이니까 나처럼 감정에 휘둘릴 일은 없을 거야."



한 시간 정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다가 딸기 팬케이크를 한 개 주문해서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딸의 집 문 앞에 케이크 박스를 놓고 오면서 전화를 넣었어요. "딸~ 너 주려고 딸기 팬케이크 사서 문 앞에 두고 엄마는 지금 집으로 가는 중이야. 맛있게 먹어~" 임신한 딸의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일 듯한 반응이 오더군요. "오오오 맛있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는 슬픔을 날려버리는 신비한 약입니다. 그 묘약이 넘쳐날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자고 마음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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