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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27. 2024

7. 학원 그만둡니다

 7. 학원 그만둡니다          

  둘이 있을 때 윤이는 순한 송아지처럼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소처럼 큰 눈은 아니지만, 두 눈을 깜빡거리며 간간히 그를, 어미 소를 보듯, 쳐다보며 안심하지. 그러나 수업만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특히 다른 아이들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면, 성난 황소처럼 날뛰기 시작하는 거야. 눈은 살짝 돌아가고,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들이받는 소. 

  “왜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혹 선생님들이 저를 왕따 시키는 건 아닌 건가요?”

  “조용히! 좀 조용히 해.”


  다른 아이들을 제지하고 윤이 말을 들어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어. 윤이는 여러 아이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자신의 존재가 형편없어지는 것처럼 여겨져 견디지 못하는 걸까.

  “내일 당장 학원 그만둡니다.”

  윤이는 화를 삭히지 못해 흡사 황소처럼 콧바람을 내며 씩씩거렸어. 당황한 그는 윤이를 잘못 건드렸나 싶어 뺨에 점이 있는 희멀건 얼굴을 보았어. 점점 그 얼굴이 크게 보이고, 겁이 난 그는 고삐를 놓아버리고 달아나고 싶어졌어. 무슨 말이 이어질까 두려워졌지. 여차하면 먼 곳으로 내빼고도 싶었지. 그때 유머 하나가 그에게 떠올랐어. 


  아침 8시 30분. 엄마는 아들을 깨우러 방에 들어간다. 학교에 가려면 이미 40분 전엔 일어났어야 한다. 엄마는 늦게까지 TV 보고 핸드폰 하다가 늦잠 잔 아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아들을 깨운다.

  “얘야 학교 가야지. 지금 가도 늦어요.”

  그러자 아들이 이야기한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애들도 날 싫어하고 선생들도 다 날 피한단 말야.”

  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는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화를 내며 아들에게 소리친다.

  “넌 학교 교장이라는 애가 그게 할 소리니?”


  하긴 놀랄 일은 아니었어. 신출내기인 그는 아직 겪지 못했지만 그런 말은 어린 초등학생들 입에서도 자주 흘러나왔어. 아이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선생님을 협박하는 거지. 저 내일 학원 그만둬요. 이렇게 말하기만 선생님이 움찔 놀라며 표정이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 물론 이제 막 학원에 온 신출내기 학원생이 아니라 오랫동안 학원에 다닌 경력 학원생일 경우 그렇다는 거지. 

  그런데 윤이는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숨겨왔던 진실을 말할 때처럼 진지하게 말했어.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신에게 빌었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윤이가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않기를.

  “원장님이 차별해요. 진짜로.”


  원장, 자신이 아니라 원장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그는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어. 어쩌면 윤이가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닐까. 나를 떠보려고 말이야. 사실 아이들이 불만을 가질 사람은 나야. 수업도 늘 시끄럽고, 그래서 나는 자주 고함을 지르게도 되었지. 그때 원장이 수시로 학부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 우리 선생님들은 너무 순해서 제가 늘 불만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을 향한 말이 분명하다고 여겼어. 그는 자신이 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아무튼 그가 보기에 윤이가 원장에게 불만을 가질 까닭은 없어 보였어. 조용한 호수의 수면과 상태에서 수업이 이루어지고, 원장은 얼마나 아이들을 얼마나 잘 다루는데. 학부모들은 또 얼마나 잘 요리하고. 그리고 원장이라면 사전에 학생들의 사소한 불만 같은 것은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 싶었어. 그는 얼마 동안 윤이의 말을 곧이듣지 못했어. 그래, 윤이는 무언가 핑계가 필요한 거야. 평소에 윤이는 제 말을 씹는다고 택도 아니게 소리도 지르고. 논술이 재미는 있지만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내보니 그게 아니에요.”


  원장이 아이들에게 처음 다가가는 모습은, 몇 번이나 보았던 터라, 그도 상상할 수 있었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고, 부드럽게,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상냥하게 말했어. 여기는 너의 집이나 마찬가지야. 여기서는 네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 해줄 수 있어. 아니라고? 음, 아니야. 아니고말고. 그러면 아이는 원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 아마 아이는 거기서, 부모님보다도 더한 신뢰를 느꼈을 거야. 

  이런 원장을 보며 그는 속으로 무한히 감탄했어. 나는 죽어도 원장 같은 사람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거야. 어떻게 해도 말이지. 


어. 조만간 해주려고 했지만 미처 때를 만나지 못한 말. 그는 이번에도 속으로 그랬어. 내가 네 말을 씹는 것은 아니야. 하는 수 없이 수업을 진행해야 할 경우도 있는 거야. 내 입장을 좀 이해해 주렴. 그런 후 한숨을 쉬었어. 학생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렇게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뛰는 존재를 어찌해야 할까 걱정하면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윤이가 좋은 상태일 때도 있어. 어느 때는 그의 말을 아주 잘 이해하는 듯 선생님에게 좀 기대고 싶다는 느낌을 드러낼 때도 많았거든. 그런데 뜻밖의 상황에서, 달라도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였어. 헐크일까, 지킬과 하이드일까.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어요, 하고 감쪽같이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어.


  “국이하고 저하고도 차별하는 것 같아요.”

  “그래, 정말이야?”

  “선생님도 그러는 거 같아요.”

  그는 룰렛 게임을 하던 도스토옙스키처럼,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심정이었어. 할 말이 없어진 그는 국이를 흘깃 보았을 따름이었고. 국이는 또래에 비해 키가 컸지만 얼굴도 길었어. 말이라고 불리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의 가수처럼 말이지. 그래, 가만 보면 국이도 말이었어. 순박하게 웃는 것이 반항이나 독한 기운하고는 거리가 멀었어. 


  그는 국이가 언제부터 눈앞에 있었나 생각해 보았어. 국이는 윤이보다 더 오랫동안 학원에 다녔어. 국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2인 지금까지 있었으니까. 아, 이제 그는 신출내기 강사가 아니었어. 그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생각해 보면 국이는 혼자 집까지 걸어 다녔어. 학원 버스에 오른 적이 없었어. 친구들과 사이가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늘 말이 없었어. 표정은 피부색처럼 어두웠고. 나중에 그가 알고 보니 국이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집이 가난했냐고? 아니야. 아버지가 작은 공장을 한다고 했으니까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어. 원장에게 들은 말로는 아버지의 바람기로 인해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어. 아니 새엄마와 살게 되었다고 했나. 삐뚤어지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했나. 그 이후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차마 누구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어. 국이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원장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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