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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20. 2024

6. 영지를 만나다

6. 영지를 만나다

중학교 3학년 애들이 앉아 있는 곳은 교무실로 쓰는 곳이었어. 그 안에 상담용으로, 타원형 큰 탁자가 있었거든. 그 뒤로는 작은 창문이 있어 누군가의 움직임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어. 조금 더 멀리로는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보였고. 출입문과 맞은편에는 유리문이 달린 책장이 있었어. 그 안에 학원 허가증과 표창장이 놓여 있고. 책장은 중2 학년이 쓰는 교실과 샌드위치 패널에 기대어져 있었는데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어. 이른바 성적이 오른 원생의 명단과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 액수가 쓰여 있었어. 이들 중 많은 원생을 들뜨게 했던 것은 전 과목 올백을 맞아 10만 원의 부상을 받은 초등학생의 이름이었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일이어서 원생이나 강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어. 플래카드 맨 아랫부분에는 그 학생이 원장에게 물었다는 질문이 있었어.  


  - 원장님, 정말 올백 맞으면 10만 원을 주나요?


  - 정말이지. 정말이지 말고. 학생이니까 돈이 아니라 10만 원 상당의 부상을 주지.  


  그 아래 카드단말기가 놓인 책상이 있고, 기역자로 다시 원장의 책이 꽂힌 책상이 놓여 있었어. 수학의 정석, 개념원리, 앎세포 과학, 개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런 책들이 있었는데 개미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저 생긴 책 같았어. 원생들이 보던 책일 수도 있고, 재활용터에 가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책을 펼쳐 보면 아주 깨끗했어. 한 번도 본 흔적이 없었어. 그 옆으로 나란히 초등부 수학 선생 책상이 있었어. 안경을 끼고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한 번씩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선생이었어. 수학은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일 뿐 아니라 수업 시간도 많았어. 초등부는 수학이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 원장은 초등부 선생에게 늘 주의를 주고 있었어. 그래서 옆에 앉도록 했을 거야.  


  그는 나중에도 이 구도를 생각할 때마다 두 사람 모습이 아니라 목소리를 떠올렸어. 전체적으로 니은자인 교무실은, 휙 돌아앉아 다른 벽을 보고 있는 그의 자리에서는 초등 수학 선생 얼굴은 보였지만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거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자주 들렸어. 그때마다 그는 두 사람을 향해 등을 약간 돌렸지만, 초등부 수학 선생만 보였을 뿐 원장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어. 그는 다시 제자리로 몸을 돌리고 목소리만 들었어. 원장은 목소리가 크고 굵었지만 금속성이 섞여 있었고, 초등부 수학 선생은 물기가 있어 상냥하고 애교스러웠지. 이 수학 선생이 그만둘 때까지 그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을 수십 수백 차례 들었어. 주로 둘은 학생이나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원장은 주로 이야기를 받는 편이었어. 갈수록 목소리도 부드러워지고. 어쩌면 원장은 여자에게 그처럼 상냥할까 싶을 정도로. 그때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무엇보다 원장에게 곧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여선생이 부러웠어. 그는 도저히 그럴 처지가 아니었어. 너무 의기소침해서 그런 거냐고 묻고 싶겠지만, 대답하기는 힘들어. 수업을 할 때야 그도 큰소리를 내고, 개그맨처럼 유머를 날리기도 했지만 원장에게는 늘 조아리는 것처럼 겨우 대답할 뿐이었어. 어쩌면 그도 이런 태도가 원장에게 가장 호감을 주는 방식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을 거야. 남자와 여자는 좀 더 다른 형태지만, 남자와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한쪽이 굴종하는 것처럼 서열 짓는 모양을 취하게 돼. 그래서 오랫동안 원장과 함께 할 수 있었지 모르지.


  금방 알아차리게 되지만, 교무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었어.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과 달리 금세 분위기가 풀어졌거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얼굴을 보고 수업을 하니까 너무 친밀해져 버린다고 할까.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해서, 거리를 없애버린 것처럼 말이지. 어찌 보면 모순이지만, 원장이 교무실에 마음대로 학생들이 들고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일 거야. 아무리 강사들이 이야기해도.  


  가만, 그때 중학교 3학년 반에는 학생 세 명이 있었어. 책이나 노트에 내내 빨간 별표만 그리는 진이는 수업 내내 과자를 먹어대는 영지가 데려온 친구였지. 먼저 영지라는 여학생은 소개해야겠지. 영지는 사회 선생이 탁구 클럽에서 알게 된 학생으로, 예쁘고 뽀얀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아이였어. 아니 큰 눈이 들어온다고 해야겠어. 누가 보아도 꽃처럼 환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그 애는 한때 아역 배우로 활동했다고 그랬어. 이 말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이건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아니야. 영지가 제 입으로 그랬어. 그러면 과연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몸매는 아니었어. 한창 자라는 나이라 변화가 심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활동 안 해, 라고 물어보면 영지는 웃으며 그랬어. 지금은 탤런트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니 탤런트 시험에 몇 번 떨어졌다고 했나. 그것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연예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야. 더구나 아버지가 중국집을 하고 있어 형편이 어렵다고 했거든.  


  영지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학원으로 왔는데 컵라면이나 빵으로 저녁을 때우는 것을 보고 그는 애처롭게 생각했지. 그래서 토스터에 식빵을 구워주기도 하고 김밥을 한 줄 사다 주기도 했어. 그런데 그처럼 영지를 애처롭게 생각한 사람이 또 있었어. 원장이었어. 원장이 원래 그렇게 정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었냐고? 거기에 대해서는 그도 무어라 말하기 어려움을 느꼈어.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이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이런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 아이들에게 잘해준 것이 원장의 진심이었을 수도 있고, 원장으로서의 수완일지도 몰라. 천성이 섬세할 수도 있고, 언젠가 고등학교 여학생이 말했듯이 알랑방귀를 뀐 것인지도 모르고.  


  영지가 데려온 아이가 진이었어.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몸집이 큰 아이였는데 늘 영지와 함께 붙어 있었어. 그 시기의 아이들은 이성 친구를 사귀기 전에 동성 친구에게 끌리는데 둘은 학교에서도 짝지였던가 봐.  


  또 한 애는 남학생이었는데 학원에 오래 잡혀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했어. 그래서 조금이라도 수업을 더 한다 싶으면 냅다 달아나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귀여운 녀석이었어. 그런데 원장은 그 애의 집에 알리지도 않았고, 혼을 내지도 않았어. 그것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그 애에 대해서는 원장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어. 그래야만 탈이 나지 않을 테니. 아무튼 그는 이 애들이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감탄했어. 혁이나 윤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단수들이었어. 전혀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그러다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할 시점이 찾아왔어. 수업이 시작된 지 몇 분이 지나도 책을 내지 않고 녀석들이 잡담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지. 몇 번인가 그는 조용히 하고, 책을 내라고 했을 거야. 하지만 애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어. 이제 이 학원 분위기 파악은 끝났고, 강사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그런 표정들이었어. 화가 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어.


  “가방 싸서 집에 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 그는 깜짝 놀랐어. 이 말이 애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지 알고 있었거든. 사실 이 말은 자신도 모르게 원장에게 배운 거였어. 알콜중독자에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자란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행태를 닮아가는 것처럼.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도 당사자인 학생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어. 어떻게 저런 독설을 퍼부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교육자의 입으로. 이런 생각들을 했지.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그가 이 말을 하고 만 거지. 아이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동안 그는 자신에게 더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어. 내가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할 수 있을까. 이건 충격이야, 충격. 어린아이가 엄마나 아빠의 욕설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 하다니. 더구나 나는 어른인데 원장의 말을 학습하여 내 것으로 쓰다니. 놀란 그는 절망했지만, 바닥에 주저앉지는 않았어. 구덩이에 떨어졌다가 기어오르며, 침착하게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어. 원장의 말이 다시 생각난 건 이때였어. ― 이러다 반 전체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참, 그래봐야 3명이지만.  


  잠시 후 그는 아이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학원에 와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아이들. 부모님들이 이런 사실을 알까. 그는 몇 번 고민해 보았지만 실은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부모님들은 단지 불안한 거였어. 친구들과 어울려 쏘다니지 않을까,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을까. 이성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음침한 곳을 찾지 않을까. 그래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잡고 있다면 그 시간 동안은 안심할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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