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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13. 2024

5. 타이밍을 맞춰야지

5. 타이밍을 맞춰야지          

  어제 중학교 2학년 강의 시간은 참으로 조용했어. 그래서 그는 감격에 겨워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굴었어. 화장실에 갔다 늦게 들어와도 혼을 내지 않았어. 누군가 소곤거려도 못 들은 척하고. 그런데 이것이 빌미가 되었을까. 아니면 아이들이란 이런 순간을 알아차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일까. 갑자기 위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 아니, 아니야. 잔잔했던 호수의 물이 물개의 등장으로 출렁거리고, 불안해진 고기들이 자신도 모르게 쉭쉭 거리는 분위기, 있잖아.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원이가 친구 한 명을 더 데리고 온다고 큰소리로 말했어. 표정도 그랬어. 아이들이 다 알고 있지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제가 도저히 숨길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 그러나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갈수록 가관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어디선가 부르릉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 이때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어. 윤이었어. 그래, 윤이가 가만있을 턱이 없지. 덩달아 떠들고 난리야. 그는 기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사실 달갑지는 않았어. 한 명 더 데리고 오는 것은 좋지만 내게 그리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야, 라고 있는 대로 말해 봐. 원장이라도 듣게 된다면 해명하기 곤란한, 아이들 말로 왕뻘쭘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의 태도에 아이들은 잠시 말이 없었어. 그런데 윤이는 흥분하기 시작하면 처음에 있던 기분으로 돌아오기 힘든 곳으로 세차게 달려가는 아이야. 누가 어떻게 잡을 수도 없어. 쉽게 말하자면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임하는 것은 좋은데, 윤이는 미묘한 것을 놓치거나, 화제가 지나간 후 얻어걸리는 막차를 타는 거야. 수업을 하는 것은 파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 같이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 파도를 탈 때는 같이 타야 해. 안 그러면 저만치 혼자 떨어져 뭍에서 멀어지거나 물속에 곤두박질치게 되는 거지. 


  “선생님은 자꾸 제 말을 씹어요.”

  이 자식이, 이 말이 선생님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생각하다가도 그는 받아주었어. 그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어. 지금도 곧잘 연속극에서는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거야, 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그때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도 시도하지 않았어. 그저 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이 진리인 양 듣고 받아들이기만 했지. 그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어. 꼰대라고 할 수 있지.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이후의 삶을 지배하는, 유년 시절을 기억한다고 할 수 있지. 찬 기후에서 배아 시절을 보낸 가문비나무들은 어김없이 다른 나무들보다 버트 세트를, 첫서리가 내릴 것에 대비해 성장을 멈춰. 더 길고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거지. 호프 자런의 연구가 맞다면 말이지.


  “네가 타이밍을 잘 못 맞추는 거야.”

  “타이밍이라. 타이밍!”

  윤이는 절망하는 체했어.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까. 누구라도 자신의 말이 이렇게 비껴가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는 어렵지.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다고 말하지. 아니 윤이는 정말로 절망했는지도 몰라. 확신할 수 없었던 그는 서둘러 수업을 진행해야 했어.

  “저는 인제 국어 시간에는 절대 발표 안 합니다. 절대로.”

  이 말에 그는 움찔 놀랐어. 짐작이 맞았던 거지. 그러면서 몸 어딘가가 아프고 쓰라린 느낌이 들었어. 은연중에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누구에게나 사랑받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그런대로 옳은 생각이었어. 정치에서라면 바보 같은 생각이 될 수 있었지만. 정치 9단 박지원의 말처럼 실패의 지름길이지.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에 빠질 틈이 없었어. 

그 사이에도 혁이와 국이는 눈치껏 장난질을 하고 있었거든. 그도 슬쩍 둘의 모습을 사진인 양 찍었어. 칠판에 필기를 한 후 적으라고 했을 때 책도 펴지 않고 있던 혁이. 슬슬 눈치를 보면서 마침내 국이 팔꿈치를 건드리고. 의뭉스러운 국이는 무심한 체 받아치고. 그 순간 그는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절망할 생각이었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는 시처럼. 그는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었어. 나는 교사, 아니 학원 교사 자격이 없어. 아이들이 좀 특수한 편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을 1980년대처럼 조용히 수업에 임하게 해야 옳지 않은가. 과연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할까. 차라리 그만두는 게 옳지 않을까. 그가 생각해도 아이들은 견딜 수 없어 울어대는 염소 같았고, 자신은 풀이 자라는 곳도 모르는 무능력자로 생각되었어. 


부족하지만, 그냥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오면 안 되는 걸까. 너무 고통스러워 그는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고 칠판을 보며 멍한 상태로 있었어. 그러다 곧 원장이 들이닥칠 것 같아 얼른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는 이미 평정심을 잃었어. 어쩌면 가슴이 삭막해진 상태에서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갈길 것 같았지. 그 순간 그는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어. 원장 시간에는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비록 시작한 지 몇 분이 안 되어 아이들은 모조리 졸고, 원장은 듣는 이 없는 강의를, 열을 내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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