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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n 06. 2024

4. 불가항력적인 아이

 4. 불가항력적인 아이          


  초등학교 3학년에 강의실에 가면 불가항력적인 아이가 또 있었어. 이름을 밝히기 어렵지만 이름에는 어떤 특이성이 없어. 그저 평범한 이름이니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러한 악을 저지른 사람들은 어른들이고,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어, 그럴 만한 사고와 능력이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시골 촌부에게서도 발견되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떤 의도가 없어도, 부지불식간에 다른 것에 아픔이나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없었던 거지. 이 애는 아직 어린아이이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그것이 그를, 이름만 들어도 고통스럽게 했고. 


  웃는 모습을 보면 그처럼 해맑은 아이가 없지만 무어라고 떠들기 시작하면 그는 사거리 횡단보도에 걸려 차들의 빵빵거리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듯했어. 도저히 자신이 학원 교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이곳에 잘못 온 걸 거야. 아이들에게 서점이나 꽃집에 가는 길을 묻기 위해 잠시 이곳에 들른 거야.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몰라. 하긴 여기가 학원이 아니라 학교라면 다를 거야. 내게 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하지는 않을 거야. 아직은 그래도 학교에는 권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신문이나 방송에서 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권위가 무너졌어요, 교단이 붕괴했어요, 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에게 잠정적 결론을 내렸어. 뭐 스스로에게 속삭인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 음, 이 애는 학원에 와서만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 학원이라는 것은 학교처럼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곳은 아니지. 학교는 좋든 싫든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군대 같은 곳이니까. 조회 시간이면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몸을 꿈틀거리지 않고 들어야 하니까. 나중에야 그가 안 사실이지만, 학교가 학원보다 더 엄격하고 체벌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어. 그가 학교에 다녔던 80년대나 가능했던 거지. 아직 학원보다 권위가 있기는 했어. 하지만 학교는 독재자가 총에 맞아 죽은 후 서서히 민주화가 진행되어 교사가 그날 그때 기분에 따라 체벌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거든. 그러니까 그는 아이들 말에 의하면 꼰대였지. 자신이 학교 다닐 때를 기준으로 현재의 학교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지. 숙제를 해 가지 않아도 매를 맞고, 손이 더러워도 화장실 청소를 하고, 기성회비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원산폭격을 하는 시대 말이지. 그때는 아이들도 스스로 그런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어른에게 말대답하거나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드는 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말이지. 아무튼 스승은 하늘이었어.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면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없다고 믿었지. 그래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 어느 학생이 손바닥이나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아도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어. 


  이 아이는 어느 때 보면 훈육이라는 걸 거치지 않은 애처럼 보였는데 누가 보아도 젖먹이 어린애처럼 굴었어. 떼를 쓰기도 하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그런데 인상을 쓰며 혼을 내려고 하면 금세 문을 열고 도망쳐 버렸어. 버스 뒤에서 소피를 보는 데 갑자기 버스 출발한 것처럼 난처한 상황이었어. 이러니 이 애 손바닥 한 대 때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한 대 때리면 이 아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어. 


  뭐 이 정도야 넓은 아량으로 보살펴 줄 수도 있어. 아이들이란 싸우면서, 응석 부리면서 자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때 다른 아이의 기회를 빼앗아 큰소리로 읽어대는 것은 가만두기 어려웠어. 그때 그는 교사로서 이런 상황은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이게 그의 머릿속에 꽉 차 있었으니까. 누가 봐도 이 아이의 행동은 옳지 못한 것이었지. 그건 사람들이 비난하는, 욕심 많은, 기회주의자의 것이었어. 제 차례는 이미 지나갔거나 곧 다시 돌아올 텐데, 다른 사람의 기회를 낚아채는가 말이야. 그래서인지 이 애는 몇 안 되지만, 같은 반 아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어. 이 애가 개그맨처럼 웃기는 행동을 하면 막 같이 웃다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위해를 가하려고 하면 일제히 야단을 치며 대들었거든. 몸을 던져 덤비기도 하고. 도저히 용서하려고 하지 않았어. 어찌 보면 그건 장관이었어. 놀란 그가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였어. 이 애를 가만히 두었다가는 고통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수 차례 겪으면서 몸으로 깨달은 걸까. 

  이런 분위기를 이 애가 어떻게 받아들였냐고? 이 애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웃으면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지. 다른 핑계를 끌어대며 다른 아이를 괴롭히려고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뗐어. 그 모습이 얼마나 천연덕스러웠는지. 그는 몇 번이나 감탄했어. 아무튼 이 애에게 어떤 악의가 있다는 것은 가당치 않아. 그 행동은 어린애처럼 순수하고 꾸민 데가 없이 자연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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