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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May 23. 2024

2. 혁이와 윤이

  2. 혁이와 윤이          


  200×년 겨울이야. 어려움은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시작되었을 거야. 여러 아이가 있겠지만, 나중에 생각할 때 그는 말총머리에 여드름이 얼굴을 거의 덮고 있는 혁이라는 녀석을 떠올렸어. 그가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하면 잠시 혁이는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금세 정신이 산만해졌어. 자세히 살피지 않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대개 교사를 속이지 않아. 학교에서라면 모르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정체를 드러내지.  


  혁이는 오랫동안 그와 함께 학원에 있었어.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지만, 친구라면 사족을 쓰지 못할 정도로 좋아했거든. 그 애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어울리는 친구는 정해져 있었어. 중학교에서 선배들이 빵셔틀을 시키기도 하고 돈을 가져오라고 할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보약 같은 친구들이지. 보약인가 고약인가. 그건 좀 듣기에 따라서 다르게 들려. 그러나 둘 다 좋은 거지. 아, 그건 좀 더 나중의 얘기지. 혁이는 까불기는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야. 간혹 왜 학교나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하는. 한 번씩 이상한 구석도 있어. 선생님인 그가 관심을 보이면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보이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왜 나한테는 잘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해. 이럴 때 누군들 무슨 말을 하겠어. 그로서는 할 말이 없었어. 장난스럽게 내던지지만 혁이의 진지한 말투에 한순간 기가 꽉 막힌다고 할까. 심장이 오그라든다고 할까. 아무튼 그는 난처해 견딜 수 없어졌어. 그때까지 해보지 않은 고민을 사십 대에 시작한 거지. 난 녀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가. 비록 학원 강사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나중에 보면 초심자다운 고민에 불과했지만, 그때는 심각한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어. 


  그래서 그는 저녁 10시 30분경에 같은 반 윤이라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어.

  “위로를 좀 해주렴. 너도 친구니까 알잖니. 그리고 논술도 같이 할 수 있으면 하고.”

  이 순간 그는 얼토당토않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국어 교사 키팅 선생님을 떠올렸을 거야. 자신이 꼭 선장이 될 수 없을지라도 아이들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을 거고. 쉽게 말해서 키팅 선생님처럼 좋은 역할을 하고 싶어졌을 거야. 부드러운 말투를 쓰고 좋은 길로 학생들을 이끄는 모습을 상상했어.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고 단호한 말투였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지. 사람보다 성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 그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 장래 나라를 짊어지고 갈 사람 말이지. 이 말에 반대의 뜻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건 결국 출세하라는 것이었어.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고 금의환향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봉양하고. 그러나 키팅 선생님은 그가 알던 것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어. 그건 이를테면 혁명이었지.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해. 오늘을 즐겨라. 그 말이 좀 거부감이 생긴다면 까르페 디엠. 아니 이 순간을, 가뭇없이 지나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주말에 그는 윤이와 함께 논술도 하고 있었어. 학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인지 두 달이 지났을 때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어. 갑자기 논술이라고 하니 의외일 수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원장의 배려였어. 그가 받게 될 월급이 얼마 되지 않으니 논술이라도 해서 보충을 하라는 의미 같았어. 그에게는 딸이 둘 있고, 아픈 마누라가 있다는 것을 원장도 알게 되었으니까 좀 부담이 되기는 했을 거야. 그가 고분고분하고 원장의 지시를 잘 따른다고 해도. 아마 그즈음이었을 거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이 학원에 다닐 수 있게 해준 것도. 그는 원장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했어.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에서 그것을 싫다고 할 처지가 아니었어. 그는 고맙다고 거듭 원장에게 말했어. 


아, 빠뜨렸지만, 처음부터 원장이 논술 수업에서 나오는 수입을 그에게 다 주기로 한 것은 아니었어. 처음에는 시험 기간이 아닌 때, 주말에 논술 수업을 하고 수입을 반반씩 하면 좋지 않을까 원장이 제의를 했을 거야. 그런 연후 초등학교, 중학교 원생들에게 논술 신청서를 받았을 거고. 그런데 생각처럼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하지 않았어. 이곳은 대도시와 가까웠지만 아직 논술 같은 것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니까. 얼마나 들어왔냐고? 네 명씩 두 팀이 들어왔어. 맞아. 한 명이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중간에 취소했던 거 같고. 논술은 정규 학원 수업이 없는 주말에 초등부와 중등부를 나누어 지도하기로 했어. 얼마 되지 않은 수입은 그가 가져가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이제 윤이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었네. 윤이는 중학교 팀이었어. 보기에는 키가 백팔십 센티미터가 넘어 중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였지만 윤이는 아직 중학생이었어. 국이나 혁이와 함께 논술을 했고. 국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거야. 아버지가 재혼하는 바람에 새엄마와 살게 되어 늘 우울하게 보였던 키가 크고 마른 아이. 이 애도 같은 패거리였어. 아무튼 윤이는 그에게 논술을 하며 글 짓는 법을 배웠어.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끌어내 글로 쓰느냐가 관건이었지. 분위기가 어땠냐고? 분위기는 학원 수업을 할 때와는 달랐어. 글을 쓰는 동안에는 혁이나 윤이나 국이가 쓰는 연필 소리만 들렸어. 아마 이 논술이 오랫동안 이루어졌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키팅 선생님이 되고. 물론 그런 일은 꿈이었지. 육 개월이 지나기 전에 논술 수업은 막을 내렸으니까. 어떻게 해서 그만두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세상일이란 그렇잖아. 꼭 거기에 인과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끼어들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게 열정이 식어버리기도 하고. 음, 윤이가 주로 쓴 것은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였는데 게임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어. 주로 자신이 주인공이었는데, 다른 아이들도 그랬지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는 잊지 않고 있었어. 던전의 아이들이라는 글이었을 거야. 던전이 무엇인지 그가 윤이에게 몇 번이나 물었어.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을지도 몰라. 그도 학원수업보다 논술을 가르치는 일에 신이 났어. 학원 선행학습에 대해 회의적이고, 학생들에게 좋은 분위기도 만들어 주지 못했지만, 논술은 가슴이 물결치는 보람 같은 것을 주었거든. 그렇게 분잡스럽던 아이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글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는 아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시간을 헛되이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서 의미 있는 일에 종사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러나 윤이를 통한 방법은 효과가 없었고, 그가 고심하며 찾아낸 여러 가지 방법도 통하지 않았어. 그가 분위기를 좀 가라앉혀야 한다 싶어 수업 시간에 농담도 하지 않고 원장 말대로 오로지 수업만 해도 소용이 없었어. 한마디로 돌아서면 그뿐이었지. 혁이는 윤이와 달랐어. 논술을 할 때 윤이가 보여 주었던 것을 혁이는 보여 주지 않았어. 친구들 때문일지도 모르지. 저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친구들이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가 보기에 혁이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어. 빠르게 움직이던 온몸의 혈관들이 요동을 치며 여기서 불룩, 저기서 불룩했을 거야. 하는 수 없이 그는 혁이를 혼낼 수밖에 없었고 그 애는 그 애대로 기분이 좋지 않아 책을 덮고 멍청히 있는데, 옆에 앉은 얼굴이 하얀 애는 장난을 걸며 시시덕거렸어. 이런 것을 보면 무어라고 해야 할까. 눈치가 없는 게 인간이냐고 유행어를 써야 할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어. 그 애는 조부모와 함께 자라 아직 어린애 티가 남아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달리 순진한 편에 속했지. 지나치게 억압적인 집에서 자라, 모범적으로 보이는 얼굴이 하얀 애와 비교가 되기는 했지. 그 애는 얼굴이 앳되고 귀엽게 생겼지만 어머니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허기를 폰 게임으로 달래고 있었거든. 한 번씩 장난스럽게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혁이 패거리 중에 빠진 애가 있어. 어머니의 말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장난기가 심한 동이. 이 패거리가 모두 한 반에 있는 구조는 학교에서라면 일어나기 어렵지.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 편성이라는 걸 하고 헤어졌다 만나기를 되풀이하니까. 아무튼 이런 구조는 친한 친구를 데리고 와서 옆에 앉힐 수 있는 학원에서만 가능해. 


  그 패거리들을 보면서 그는 애들이 스스로 조용히 하거나 공부에 전념하거나 얌전해지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서서히 깨닫는 중이었어. 간혹 그는 몇 차례나 가출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해 보려고 했어.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그는 겉으로 보기에 얌전하고 조용했지만 늘 집이나 학교를 떠나고 싶어 했거든. 그러면서 그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졌고 동시에 우유부단해졌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가만 내버려 둘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고.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통제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었어. 더구나 바로 옆이 교무실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샌드위치 패널로 칸을 만들어 놓은 강의실은 전혀 방음이 되지 않았어. 언제 원장이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나 고함을 지를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때 그 순간은 뭐라고 할까. 지구가 잠시 돌기를 중지했다고 할까, 변사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고 할까. 그나 학생들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덜컥 놀라 멍한 상태에 빠졌지.


  지금까지 그는 혁이 손바닥을 세게 때려왔어. 다른 애들에게 그런 것처럼. 인정사정 두지 않고 단 한 대를. 그때마다 혁이 손바닥은 빨갛게 변했고, 혁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쪽 발을 굴렀어. 에이, 하고 투덜거리면서. 그런데 어느 날은 손바닥이 아프다고 어깨를 때려달라고 부탁했어. 좀 이상하기는 했지. 장판에 엎드린 죄수가 볼기가 아니라 등짝이나 종아리를 때려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지. 이 말에 그는 당황했어. 늘 오갔던 길에서 벗어나 아직 한 번도 발을 내디딘 적이 없는 길에서 인상이 나쁜 주정뱅이를 만났을 때처럼. 몇 번 망설인 끝에 그는 혁이의 마지막 소원인 양 그 말을 들어주기로 했어.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말이지. 사실이 그렇지. 사람이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이러니저러니 하고 묻고 따지는 것을 생략하고, 단숨에 그것을 수용해 줄 때거든. 음, 그래, 좋아. 


  그런데 혁이 어깨를 한 대 때리자마자 하필 그 순간에 원장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거야.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이렇게 조용하면 좋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원장은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는 대신 기분 좋게 말했어. 누구도 떠드는 사람이 그 순간에는 없었거든. 그 점이 이상하기는 했어. 애들은 떠들어야 하는데 말이지. 원장이 나가고 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어.

  “왜 원장님은 국어 시간에만 들어오시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다른 시간에는 안 들어오고.”


  그 말에 그는 눈이 번쩍 뜨였어. 그는 자신의 눈치 없음을 몇 번이나 탓했어. 지금껏 그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수업 시간에만 원장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다른 반에도 들어가 본다고 여겼지. 왜 그럴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는 원장이 갈구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했어. 이건 갈구는 것이 아니라 초짜이니까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그러는 거야. 갈구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라고 할 수 있지. 초짜인 내가 잘하는 게 없지 않은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어쩌면 그가 처남인 사회 선생, 목소리가 크고 경력이 많은 수학 선생보다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어. 그는 무분별한 열정만 있는 강사였으니까. 그래 어쩌겠어. 아이들이 만만한 선생 시간에 더 떠드는 것처럼, 원장도 더 어리숙한 강사에게 더 눈을 부라리는 법이야. 좀 지나면 나아질 거야. 잘하게 될 거고.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했어. 그 말이 사실이기는 했어. 그는 어느 순간 본인이 힘이 드는 날은 애들도 더 떠든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가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별 뾰족한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실마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긴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아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대기는 하지. 


  어느 날은 푸념 삼아 사회 선생에게 조언을 구했어. 나이는 비슷했지만 사회 선생이 이 바닥에서는 경력자였으니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을까요?”

  사회 선생은 자신 있게 말했어.

  “정 안 되면 1명씩 불러서 격파하세요.”

  자신감 넘치는 사회 선생의 말에 그는 더 막막함을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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