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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May 16. 2024

1. 내비도 선생 학원에 가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아. 오늘을 즐겨라. 그 말에 거부감이 생긴다면 까르페 디엠. 아니 이 순간을, 가뭇없이 지나갈 이 순간을 사랑하라. 






  1. 내비도 선생 학원에 가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은 어제오늘 떠돌던 것이 아니었어. 천문이나 수학이 발달한 마야인의 달력은 2012년 12월 23일 6번째 태양이 없어지는 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전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있었지.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빗나가고 말았어. 예언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해하지만 사실 겁나고 무서운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어. 그도 마찬가지였고. 몇 차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고 난 후 그는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눈을 감는 것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어. 눈을 감자마자 세상이나 가족은 그에게서 사라졌으니까. 그러나 눈을 감기 전에 그는 살아있는 것이었고 살아가기 위해 일이 필요했지. 그때 막 사십이 넘었을 때, 그는 다른 어느 것보다 직장을 잃는 것이 두려웠어. 그에게는 몸이 불편한 아내가 있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이 있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고, 그도 어느 순간까지는 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여겼지만 일하던 학원에서 3개월 만에 잘렸을 때, 지금이 이 일이 전부야,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지만 말이야. 이렇게 중얼거렸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일을 하지 못하면 지구는 망하는 거지.


  그는 키 작은 원장에게 매달렸어. 자신의 이상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다른 학원이라도 소개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어. 아니 그다지 간곡한 표정은 아닐 수도 있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고 아쉬운 말도 잘하지 못했거든. 

  “부탁입니다. 꼭 좀 알아봐 주십시오.”

  그는 간곡한 표정을 짓는다고 했지만, 어찌 보면 형식적인 동작에 그치는 것 같기도 했어. 이럴 때 어떤 표정이나 말투를 지어야 할까. 난 어딘가 뭔가 어색하고 부족해. 이런 생각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어. 고작 3개월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가 어찌 나를 알겠는가 싶어서 말이지.

  “그러지요. 제가 학원연합회 부회장이니 한 번 알아보지요.”

  “고맙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그는 좋은 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에게 학원 강사의 길을 제시한 사람은 울산에 사는 학원장이었어. 그녀는 몇 년 후 암으로 죽었지만 그가 학원에서 일할 것을 적극 밀어주었어. 그가 가까이 살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학원에서 일하도록 주선했을 거야. 어떻게 해서 그녀를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길어질 거야.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어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말이야.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서점에서였어. 바닷가에서 자란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서점을 하고 있었거든. 그는 그 서점의 단골손님이었고.


  아무튼 그는 절박했어. 학원에서 일을 하지 못하면 그는 중국집 배달이라도 해야 할 처지였어. 이른바 배달의 기수라고 불리는 위대한 사람들 말이지. 그들은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이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까지 그 직업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주유원처럼 별다른 자격 없이 덤빌 수 있는 직업이었어. 그는 하루나 이틀 정도를 망설인 것은 아니었어. 오토바이가 씽하고 지나갈 때마다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울적하게 바라보았어. 그 일이 허접하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서 팔다리 하나쯤은 갈아 없앨 각오를 해야 했거든.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청년기 백수였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어. 그때와 다른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식구들이 있었어. 그리고 같이 일하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정식 자격이 없었어. 그는 60년대에 태어난 대부분 사람처럼 가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어. 그가 학원에 취업한 것은 순전히 학원장의 호의에 의한 것이었어. 

  “선생님은 표정이 너무 어두워, 인정하지요?”

  같이 일하던 부원장이 말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위풍당당한 부원장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어. 단지 약자답게 속으로 말할 뿐이었어. 네가 내 처지가 돼 봐. 그러면 표정이 어두워지지. 


  그는 배달의 기수가 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학원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작가이기 때문에 채용해 주는 학원은 없었어. 그들은 경험과 자격이 되지 않는 그를 굳이 채용하지 않았어. 하긴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능력을 보기 위해 힘들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며칠 후에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다른 일을 찾았을 거야. 

  며칠 후, 키 작은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어. 

  “선생님에게는 작은 학원이 맞을 것 같아요.”

  “어디에 있는 학원입니까?”

  “가까워요. 전화번호를 알려줄게요.”

  “네.”

  “참 좋은 분입니다. 당장 전화를 해 보세요. 강사를 구하고 있다니까.”


  키 작은 원장은 한창 학원을 키우는 중이었어. 유명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명문학원 경력도 가진 부원장이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고. 적어도 이백 명이나 삼백 명을 더 늘릴 수 있다는 부원장의 말에 기분이 들떠 있었어. 그는 전화번호를 받아 적은 후 전화를 끊었어. 이제 그 학원과는 끝이었어. 강사들 간에 벌어지는 피 말리는 경쟁도 끝이었고. 이제 새로운 전쟁터로 가면 그만이었지. 새로운 지휘관과 전술이 벌어지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였어. 동료 강사들 앞에서 매일 강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었어. 이건 말만 연구수업이지 고문이나 다를 바 없었지. 아니 생존경쟁인가. 아무튼 난 그럴 수 없어. 도저히. 그는 중얼거렸어.

  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어. 상대는 50대 후반으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굵직하지만 친절한 말투를 구사하는 남자였어. 

  “연락받았습니다. 지금 만나봅시다.”


  얼마 후 그는 과거에 산이었지만 주택가로 변한 언덕으로 차를 몰고 올라갔어. 그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가까이 보이는 도롯가에 차를 세웠어. 건물 2층이 학원이었거든. 천성산을 향해 곧장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상가와 아파트가 모여 있었지. 이들이 토박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어. 대부분이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토박이는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어. 도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중년의 여자나 노인들이었어. 어디에도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때 차가 한 대 휙 하고 지나갔어. 인도가 없는 찻길로 인해 사람이 걷기에는 힘들고 위험해 보였어. 그는 미선이와 효선이가 죽었던 그 길에도 인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고통에 잠시 고개를 저었어. 그는 인터넷에 국도변은 위험하다는 글을 올렸지만, 순진한 생각이었지. 화난 민중들은 미군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었어. 

  “안녕하세요?”

  “아, 좀 전에 전화하신.”


  머리가 벗겨지고, 이빨이 드러나게 크게 웃는 오십 대 후반의 남자는 굵직한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어. 어쩌면 그는 그 목소리에서 금속성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좋았을 거야. 그랬다면 좀 더 마음 아픈 일이 없었겠지. 그가 이력서를 내밀자, 원장은 둥근 탁자 앞에 앉도록 한 후 자세히 이력서를 보았어. 그러다가 그의 얼굴이나 표정, 옷차림을 주의해서 보았고. 원장은 까다롭게 이것저것 물어볼 태세는 아니었어. 그는 원장이 묻는 말에 한 번씩 예, 예하고 대답했지. 

  “그 원장님하고 저하고 친합니다. 그 학원이 요새 잘 되고 있어요. 새로 들어온 부원장이 능력이 있어요.”

  원장은 그가 할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했어.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원이 더 나았는데.”

  그는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없었어. 학원 초년생인 그가 부원장처럼 능력을 보여줄 수도 없었고. 


  “제가 전에 학원에 다녀보니까 편한 학원에 있으니 오래 있게 됩디다. 월요일부터 나오십시오.”

  그는 이 학원에서 오래 있게 될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지만 오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래, 오래 있는 것이 앞에 있던 학원에 대한 복수도 되겠지. 그는 한참 주눅이 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어. 어떻게 거기서 3개월을 보냈을까. 그런데 이 원장은 왜 나를 고용하기로 했을까.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아 고용했다면 좀 그렇지 않나. 궁금증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졌어. 

  “네, 알겠습니다.”

  “초봉은 90만 원인데 3개월에 한 번씩 올려드리겠습니다.”


  액수가 너무 적었지만 하는 수 없었어. 대부분 남자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떠드는 말은 거짓이었어. 보여주기 위해 말하는 거였어. 보여주기 위해 차를 사는 것처럼 말이지. 그는 마음을 다져 먹었어. 이제 시작이지 않은가. 학원은 경력이야, 경력. 학원 교사가 되었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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