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산호 May 30. 2024

3. 매를 들다

 3. 매를 들다          


  그가 처음부터 매를 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야. 그는 매를 드는 것에 그때까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그것은 그가 청소년기에 형에게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어서인지도 몰라. 형은 부모님에게 화가 나면 동생인 그에게 풀려고 했어. 대들지 바보처럼 당했느냐고 물으면 그로서도 할 말이 없어. 네 살 차이가 나는 형은 그와는 성장 속도가 달랐어. 그가 아직 꼬마였을 때부터 형은 아주 커 보여서 감히 대적해 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어. 형이 하는 말을 거역하고 친구 집으로 도망을 다니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잡혀 들어갔어. 부모님들이 있었지 않았냐고? 있었지. 그러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어. 그는 애타게 부모님을 불렀지만 돌아봐 주지 않았어. 형의 말에 동생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만 생각했거든. 형이 동생을 학대하는 이유도 그럴듯했어. 동생의 공부를 위해서라고 했으니까. 아무튼 그는 많이 맞았어. 문제지를 풀지 않았다고 해서 맞았고, 심지어는 친구 앞에서도 손이 더럽다고 창피를 당했어. 


  처음에 그는 죽비처럼 생긴 대나무를 들고 다녔어. 때리면 소리만 요란하지 전혀 아프지 않은 죽비. 이것을 보고 원장이 몇 번이나 그랬어. 아주 가당찮은 짓을 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 가지고 애들이 꿈쩍이나 하겠어요?”

  그 말을 들은 체했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어. 그도 때로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 어려움이 있어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여겼거든. 어디서 누군가에게 이런 가르침을 얻어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자신의 신념이라고 할 만한 것을 스스로 버려야 했어. 다시 말해 원장의 말처럼 매를 들어야 하는 때가 온 거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몇 안 되는 학생들 중 ‘연’이라는 여자아이가 가르쳐 주었을 거야. 수업이 소란스러워지자, 그는 죽비를 한 대씩 때렸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라는 여자아이가 먼저 입을 열고 다른 아이들이 웃으며 다시 떠들었어. 그것을 보자 그는 슬며시 약이 올랐어. 아니 이런 방식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 그는 광대뼈가 튀어나왔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연이의 사나운 눈을 보았어. 연이는 두 살 위 언니와 함께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왈패처럼 입이 말할 수 없이 거칠었어. 어떻게 예쁘장하게 생긴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입에서 저런 욕이 나올까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지. 그래서 연이에게는 차마 묻지 못하고 사람들은 순하고 말이 없는 언니에게 물었어. 어디서 저런 희한한 욕을 배운 거야. 언니는 할머니에게 배운 거라고 그랬어. 


  “할머니가 집에서 욕을 잘하시거든요.”

  “너한테도 그래?”

  “아무한테나 그래요.”

  그 뒤로 그는 자매를 눈여겨보았어. 둘은 자매라고 했지만 조금도 닮은 데가 없었어. 싸우기도 자주 싸웠고. 그런데 소리 지르고 욕을 하는 것은 연이였고, 앉아서 우는 것은 늘 언니였어. 그것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어. 연이가 화가 나서 눈물을 쏟으며 언니에게 욕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때도 언니는 연이에게 소리치거나 욕을 하지 못했지. 드러나지 않는 슬픔을 작은 눈에 가득 담고 있었지.


  “야 임마, 언니한테 그러면 안 돼.” 

  한 번씩 원장이 참견을 했어. 언니가 늘 당하는 게 보기 안스러웠겠지.

  “연이 아버지를 안 지 오래됐어요. 형님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아, 그저께도 왔잖아요. 오뎅 가지고 오잖아요. 선생님들 가져가 드시라고. 연이 아버지가 새장가 들었어요.”

  “아, 그래요. 잘 아시는군요.”

  그의 말에 원장은 묻지도 않는 말을 한 번씩 했어. 

  “연이네 동네서 학원 차가 첫출발하니까. 한 번씩 그 집에 가서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안 그러면 두 애 보고 그 먼 곳까지 내가 가겠어요?”               


이전 02화 2. 혁이와 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