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무통 LeMouton Jan 12. 2024

[르무통 X 동해안] 묵호로 떠나는 나 홀로 첫 여행



“여행 오셨어요?”

“네. 혼자 하는 첫 여행이에요.” 

묵호의 작은 서점에서 만난 H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다. 우연히 한 블로그를 보고 이곳이면 혼자 떠나 봐도 괜찮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새해 꼭 도전하고 싶었던 ‘나 홀로’ 여행. 두려움을 안고 기차에 올랐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따스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는 어디든 혼자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등대에서 바라 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뚜벅이 여행도 당일여행도 OK

묵호는 강원도 동해시에 자리한 아담한 마을이다. 과거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북적이는 사람 대신 햇살을 받으며 조는 고양이가 골목을 지키는 고즈넉한 동네다. 한적한 어촌마을에 ‘나 홀로’ 뚜벅이 여행자가 늘고 있다.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는 법. 첫 번째는 동해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KTX 묵호역에서 걸어서 5분이면, 투명한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아침 7시 기차로 가서, 여행을 즐긴 후 저녁 7시10분 기차로 돌아오면 완벽한 당일 바다여행이 된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논골담길, 흥미진진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처럼 전망 좋은 곳이 많은데다, 귀여운 소품가게와 싱싱한 재료로 음식을 내는 맛집까지 여행지가 갖춰야할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 분위기와 어느 가게에 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친절함은 덤이다. 


발한삼거리 주변의 소소한 재미

여행의 출발은 묵호역이다. KTX가 서는 역이지만, 소박하다. 묵호역을 뒤로 하고 묵호항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5분 정도 지나면, 등대 조형물이 가운데 서 있는 라운드어바웃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잠시 서서 주위를 살핀다. 30여 년 전 번화했던 발한삼거리다.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들어 선 강원은행을 비롯해 백화점과 영화관이 있던 자리로, 북적북적했을 과거를 상상한다. 

큰 길에서 안으로 골목으로 들어가면, 30년 쯤 뒤로 시계를 돌린 듯한 풍경도 나타난다. 과거의 영화로움을 찾기는 힘들지만, 발한삼거리를 중심으로 여행책방 잔잔하게와 소품가게 끼룩상점, 111호 프로젝트, 묘한, 샌드위치 맛집인 라운드어바웃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여행자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여행의 출발, 묵호역


생기 넘치는 묵호항 경매 시장

금강산도 식후경.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장칼국수 식당으로 향한다. 장칼국수는 강원도에서 흔히 먹는 칼국수로, 고추장을 풀어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냉이나 김, 홍합 등 식당마다 들어가는 재료도 각양각색이다. 강원도 어디에 가나 장칼국수를 맛볼 수 있지만, 묵호의 장칼국수는 조금 다르다. 새벽에 고기잡이를 마치고 들어온 어부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으로,  지역의 오랜 음식문화를 담고 있다. 그래서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도 여럿이다. 장칼국수를 맛본 후에는 가던 방향으로 걸으면, 얼마 가지 않아 묵호항이 등장한다. 묵호항은 1941년 개항한 항구로, 오랫동안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였다. 명태와 오징어를 실은 고깃배들이 분주하게 드나들던 항구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묵호항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곰치와 가자미, 오징어와 양미리를 실은 배가 수시로 들어온다. 배가 들어오면, 경매를 시작한다. 알듯 모를 듯한 암호가 몇 번 오간 후, 누군가 가스통을 매단 리어카를 가져와 신나게 물고기를 싣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항구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생기 넘치는 묵호항의 풍경


마음에 틈이 필요하다면, 논골담길

묵호항 다음 코스는 논골담길이다. 논골담길은 묵호항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는 길이다.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히던 30여년 전, 어부들은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에 지고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 오징어를 말리는 덕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징어에서 흐른 물이 흙에 떨어져, 길은 논처럼 질퍽하게 변했고 동네에는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논골담길의 ‘담’은 벽이라는 뜻과 함께 ‘이야기’라는 뜻도 있다. 논골 마을의 벽에 옛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동해문화원과 주민들이 그들의 삶을 담은 벽화를 그린 게 시작이다. 이후 벽화는 더 많아지고 새로워져, 대표 벽화마을로 자리 잡았다. 

논골담길 산책길은 등대오름길을 비롯해, 논골1길부터 3길까지 모두 네 갈래 길이 있다. 길 마다 다른 벽화와 이야기가 기다린다. 시원한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등대오름길을 먼저 오른다. 골목 초입부터 머리에 오징어를 이고 가는 아주머니, 연탄 배달하는 어저씨, 논골주막 풍경 등 정겨운 벽화가 발길을 붙잡는다. 계단에 오를 때는 운동이 되는 칼로리를 알려주고, 벽에 쓰인 글은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바람 앞에 내어준 삶.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을 살려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바람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매력적인 논골담길의 벽화 / 산책길에 함께한 르무통 메이트(라이트블루)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괜찮아’

등대오름길이 끝날 즈음에는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바람이 세게 불어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었던 자리에, 전망을 볼 수 있는 데크를 만들어 놨다. 이곳에 서면, 짙은 동해 바다가 한 품에 안겨,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왼쪽에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묵호항과 형형색색의 집이 펼쳐진다. 네모반듯한 빌딩만 보다가, 개성 넘치는 지붕을 보니 마음에 틈이 하나 생기는 기분이 든다. 각양각색의 지붕은 ‘네 맘대로 살아도 괜찮아’라며 어깨를 다독여 주는 듯 하다. 

여유가 있다면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걸음 수가 늘수록 마음도 더 촉촉해진다. 정겨운 벽화 앞에서 셀카도 남기고 동네 할머니에게 말도 걸어본다. 한 마디 여쭈면, 정겨운 열 마디가 돌아온다. 논골담길에서는 길을 잃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길이 등대로 향하기 때문에, 오르막길만 따라 가면 된다.


마음속 틈을 내어주는 바람의 언덕


해랑전망대에서 만난 ‘나의 빛’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묵호등대는 묵호의 아이콘이다. 1963년 불을 밝히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어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늠름하게 서 있는 하얀 등대도 멋지지만, 주변에 볼거리도 많다. 묵호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과 전국의 특색 있는 등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등대 앞 빨간 부스 안에는 엽서와 안내책자가 있는데, 여기에서 엽서를 쓰면 1년 후에 보내준다. 1년 후 모습을 상상하며 스스로에게 직접 엽서를 써보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다. 동해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묵호등대 앞에 있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사투리로, 도째비골은 이곳을 부르던 이름이다. 과거 이 부근을 밤에 지나면 도깨비불처럼 보이는 푸른빛이 보였다는 데 유래했다. 먼저 스카이워크를 걷는다. 해발 59m로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바닥이 유리로 된 구간이 있어 스릴 만점이다. 높은 곳에서 보는 바다는 더 광활하고 웅장하게 다가온다.  

스카이워크를 걸은 후에는 계단을 통해 내려온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언덕 중간에 흥미로운 조형물이 있다. 귀여운 도깨비부터 무시무시하게 생긴 도깨비까지 여러 얼굴의 도깨비가 있어, 놓치기 아깝다.   

여행의 마무리는 해랑전망대다. 해랑전망대는 바다 위에 세워진 교량으로, 발 아래로 파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도깨비방망이 모양이다. 해랑전망대에서 바라 본 최고의 바다 모습은 윤슬이다. 햇살이 떨어지는 지점마다 은빛 물결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윤슬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내 인생도 반짝이기를 기원한다. 


고요한 해랑전망대에서의 물멍타임 with 르무통 메이트(라이트블루)


Info.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는 특별한 액티비티가 있다. 와이어를 따라 상공을 달리는 스카이 사이클과 긴 원통을 타고 빠르게 내려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다.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놀이기구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센 날은 운영하지 않으며,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르무통 x 동해] 시리즈 작가 소개

채지형 여행작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시장 구경과 인형 모으기를 특별한 낙으로 삼고 있다.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안녕 여행』 『여행의 힘』 『지구별 워커홀릭』 등 10여 권의 여행 책을 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