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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Jan 19. 2024

[르무통 X 동해안] 바다부채길, 천연기념물 따라 걷다



가끔 바다를 끼고 하염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닷길이라고 해도 숲이나 집, 도로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강원도 강릉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에 가면 이야기는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파도 소리를 BGM 삼아 바다와 친구하며 산책할 수 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이 길을 걸으면 약이 따로 필요 없다. 일단 걸어보면 안다. 투명한 공기를 맡으며 자연 속 길을 걷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국내 유일 해안단구 관광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특별하다. 천연기념물을 따라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동진의 해안단구는 국내 최대 규모로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됐다. 해안단구 끝 동해바다와 접하는 해안에는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가파른 해식절벽이 만들어졌는데, 바다부채길은 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다.

해안단구란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평편한 땅에 융기 작용이 일어나 땅이 솟아올라 형성된 지형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서해와 남해, 동해의 지형이 다르다. 해안단구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먼 이야기지만, 이곳의 해안단구는 200~250만 년 전 지각변동을 통해 이루어진 신비로운 길이다. 


하늘에서 본 맑고 푸른 바다부채길


정동진에서 시작한 바다부채길

하늘에서 보면 땅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이라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동진과 심곡항을 잇는 길로, 약 2.86km에 이르는 탐방로다. 해안경비를 위해 오랜 세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만큼 신비로움까지 느껴진다. 2016년 개방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2020년 태풍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22년 10월 전면 다시 개장했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동진과 심곡항 양쪽에 입구가 있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같은 길이지만, 정동진 쪽에서 출발하면 가파른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산책길 시작은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이다. 매표소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입구로 들어가니, 바로 내리막 계단이 등장한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골짜기 사이로 출렁이는 바다가 보인다. 마음은 이미 바다로 달려가고 있지만, 조심조심 계단을 밟으며 내려간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소원을 비는 돌이 여럿 쌓여 있다. 경이로운 자연은 누구나 고개 숙이게 만든다. 옆에 자그마한 돌탑 하나 쌓는다. 돌탑 무더기 앞에는 포토존으로 인기인 하늘을 향한 철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계단이 높진 않지만, 인생 샷을 담기에는 충분하다. 


바다부채길에서의 고요한 산책  with 르무통 페이브 울 골지 플랫 비니(그레이), 르무통 클래식2(그레이)

 

기기묘묘한 바위의 향연

기기묘묘한 바위의 향연

본격적으로 바다부채길 탐험에 나설 차례다. 왼쪽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사이를 철망 길을 따라 걷는다. 위험하진 않지만, 바닥이 뚫린 구간이 많아 아슬아슬 스릴 넘친다. 바다와 절벽 사이에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줄줄이 이어진다. 마치 야외 수석 전시관에 온 듯,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바위다. 바다부채길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투구바위다. 정동진에서 가는 길에서 보면, 이집트의 스핑크스처럼 보인다. 앞으로 뻗은 다리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바위를 지나 돌아보면, 투구바위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고개가 끄덕여 진다. 완벽하게 투구를 쓴 장수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육발호랑이의 전설이 내려온다. 발가락이 여섯인 무서운 호랑이가 있었는데, 사람을 수시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강릉에 부임한 강감찬 장군이 이 소식을 듣고 육발호랑이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호랑이가 강감찬 장군의 용맹스러움을 알고 백두산으로 도망갔다는 내용이다. 전설을 새기며 투구바위를 보니, 비장한 장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투구바위에 이어 부채바위, 거북바위

독특한 바위의 향연은 투구바위를 지난 후 본격 시작이다. 쌍둥이 바위, 거북바위 등 동물의 이름이 붙은 바위가 줄줄이 나타난다. 바위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바위, 폭포처럼 물을 뿜어내는 바위, 마치 발가락처럼 생긴 바위 등 제각각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걷는다면, 바위 생김을 보고 이름 지어주기 놀이를 하며 걸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곳곳에 파고라도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쉴 수 있다. 

탐방로는 해안선에 따라 나왔다 들어갔다 반복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져, 길이 끝날 때까지 기대감이 줄지 않는다. 투구바위에서 800미터 정도 걸으면 바다부채길의 두 번째 스타바위인 부채바위가 등장한다. 이곳에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빠지기 좋다. 


독특한 모양새가 돋보이는 투구바위 / 부채 바위, 여행 인증샷 with 르무통 클래식2(그레이, 블랙아웃솔)


심곡항 빨간 등대를 바라보며 찰칵

부채바위를 지나면, 심곡항까지 오르락내리락 계단이 이어진다. 바위뿐만 아니라 몽돌 해변도 나타난다. 우락부락한 바위를 지나다가 몽돌을 보니, 앙증맞고 귀엽다. 몽돌이 만들어내는 음악에도 귀를 기울인다. 심곡전망타워가 나오면, 편도 2.86km 탐방로도 끝나간다. 전망타워에 올라 네모난 액자 테두리 안에서 사진도 찍고 심곡항의 빨간 등대도 바라본다. 


금진항을 지나 옥계해수욕장까지 

바다부채길은 끝났지만, 헌화로가 이어진다. 심곡항에서 바다를 따라 금진항 방향으로 걷는다. 헌화로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로 알려진 길이다.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하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도 좋다. 이곳 역시 해안 단구 지역으로, 절벽을 따라 도로와 인도가 이어진다. 안전을 위해 바다 쪽에는 펜스가 설치된 구간이 있지만, 바다를 느끼기에 불편함은 없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금진항과 옥계해수욕장이 차례로 나온다. 기암괴석을 따라 걷다가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만나니, 마음이 더없이 부드러워진다. 보드가 도열해 있는 옥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거닐며,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바다 가까이에 위치한 헌화로에서의 산책


info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안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정동진과 심곡항 매표소 옆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는 게 좋다. 반려동물 동반은 어려우며, 탐방로 안에서는 취식이 금지되어 있다.  






[르무통 x 동해] 시리즈 작가 소개

채지형 여행작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시장 구경과 인형 모으기를 특별한 낙으로 삼고 있다.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안녕 여행』 『여행의 힘』 『지구별 워커홀릭』 등 10여 권의 여행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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