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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Sep 13. 2024

두 발로 타박타박, 영원히 아름다울 피렌체에 스며들다




매분 매초 사람들이 뚜껑이 열린 채 떨어지는 후추통 속 후추처럼 쏟아지며 흩어졌다. 떠나는 사람과 찾아온 사람들의 온갖 언어와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뒤엉켜 들리는 사이사이 기차 스케줄을 알리는 이탈리아어 방송이 들려왔다.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축과 예술, 그것들을 둘러싼 풍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 피렌체. 세계 문화유산이자 누구나 한 번쯤 당도하길 꿈꾸는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꽃이 만발하는 땅, 피렌체 

피렌체를 사랑하게 된 건 <냉정과 열정사이> 때문이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을 위한 성지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지.” 주인공 아오이의 속삭임으로 시작되는 영화. 막 피어날 꽃잎을 숨긴 듯한 두오모의 둥근 지붕 아래 잎맥처럼 퍼져 있는 골목골목이 영화 속 배경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언젠가 여행해야 할 곳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뒀었다. 그러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알게 되고,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다빈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반드시 가봐야만 하는 곳으로 별표를 달았다. 


피렌체 중앙 역사를 나오면 만나게 되는 풍경


꿈을 이뤄 한껏 들뜬 여행자의 모습으로 역에 당도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가방을 꽉 움켜쥐는 것이었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나는 피렌체에 소매치기라는 아름답지 못한 것들도 공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까지 여행이 즐거우려면 절대로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될 일. 가방을 꼭 쥐고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피렌체에서의 첫걸음을 뗐다. 중앙역사를 빠져나오니 트램의 철로가 놓인 도로가 보이고 오래된 건물과 붉은 지붕을 얹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인파에 떠밀려 길을 건넜다. 낡은 건물의 끝 모퉁이를 돌자 흰색과 녹색의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성당이 나타났다. 역에서 길을 건널 때까지만 해도 눈앞에 화려한 대리석 건물이 펼쳐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은 13세기에 지어지고, 15세기에 대리석으로 전면을 리모델링했다는데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날카롭고 차가운 현대성이 아니라 세련된 아름다움이 묻어났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어마어마한 도시, 꽃이 만발하다는 뜻의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 영원히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는 첫 시작부터 강렬했다. 


강렬한 첫 시작을 선사한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앞에서 with 르무통 스위트(블랙(블랙아웃솔))


르네상스의 상징이자 낭만의 장소,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앞 광장에서 사람들은 한 방향을 향해 길을 건넜다. 그들이 빨려드는 건물과 건물 사잇길을 따라갔다. 가방을 꼭 쥐고 무수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에 넋을 잃고 걷다 보니 눈앞에, 마법처럼 부루넬레스키의 돔이라 불리는 두오모의 둥근 지붕이 나타났다. 

커져가는 피렌체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당대 세계에서 가장 큰 42m로 설계했던 바로 그 돔이었다. 14세기의 기술로 실현할 수 없었던 커다란 돔은 금 세공인이자 조각가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방법으로 15세기 초, 1420년에야 착공에 들어갔다. 마침내 세워진 106m의 돔. 이 돔은 그 자체로 피렌체의 상징이자 중심이 됐다. 어렵게 완성된 돔은 피렌체를 찾은 나그네들에게 낯선 곳의 이정표 같은 존재이자,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한 번쯤 오르고 싶은 낭만의 장소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르무통 스위트(블랙(블랙아웃솔))를 신고 지오토의 종탑에 오르는 길


몇백 년 전이 어제의 일인 듯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 두오모와 지오토의 종탑 그리고 기베르티의 청동문이 장식된 산 조반니 세례당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광장은 다른 유적지와 달랐다.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과거였다. 그곳은 생동하고 있었다. 거리의 맥박은 젊은이의 것처럼 빠르게 뛰었고 그 속에 서 있는 나도 덩달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펄떡이는 피렌체를 한눈에 담고 싶어서 지오토의 종탑에 오르기로 했다. 종탑 앞에는 줄어들 줄 모르는 긴 줄이 서 있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피렌체에 도착해 두오모의 돔을 발견하고, 마침내 그 속에 들어왔을 때의 환희에 못 이겨 이곳의 전부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 

긴 줄을 기다려 편안한 신발이 아니면 오르기 쉽지 않은 숨 막히게 좁고 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며 마침내 마지막 종루에 다다랐을 때 아, 다시 한번 탄성이 쏟아졌다. 그곳엔 땅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피렌체가 있었다. 막 피어날 꽃잎을 숨긴 듯한 두오모의 둥근 지붕과 잎맥처럼 퍼져 있는 골목골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오토의 종탑 종루에서 바라본 두오모의 둥근 지붕


단테처럼 미켈란젤로처럼 부르넬레스키처럼 걸을 것 

종탑 위에서 본 피렌체는 평화로웠다. 광장의 사람들은 작은 꽃송이처럼 나부꼈고, 피렌체의 붉은 지붕은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제 색깔을 뽐냈다. 꿈꾸던 피렌체의 한가운데, 붉은 지붕 아래 피렌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매 순간 뜨겁게 피어오르는 이곳은 그 열기를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나는 서둘러 종탑을 내려가고 싶어졌다. 저 아래 펼쳐진 골목을 전부 다 걸어보고 싶어졌다. 메디치가의 예배당이었던 산 로렌초 성당이나 우피치 미술관을 비롯한 미술관의 작품들, 기념이 될 만한 장소들을 꼼꼼히 보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일단 걸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테가 되어, 미켈란젤로가 되어, 부르넬레스키가 되어, 아니 그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던 그 시절의 이름 모를 누군가가 되어 걷는 일. 걷다가 오토바이가 지나는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슈퍼마켓에 들러 물을 사서 마시고, 산뜻하고 달콤한 젤라또를 먹는 일. 매일 그곳을 걷는 사람들처럼 좁은 길가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 보는 일. 그렇게 피렌체에 스며들어 보는 것. 피렌체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피렌체에 스며들며 걷던 한적한 골목길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만든 풍경

피렌체 대성당에서 베키오궁과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까지는 멀지 않았다. 단단한 돌길 양옆에 늘어선 상점을 흘끔대며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지나쳤다. 얼마 되지 않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보였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진품을 똑같이 복제해 놓은 작품이었다. 피렌체의 독립과 자유, 민권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다비드상은 풋내기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절대로 늙지 않는 소년 다비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향한 인류의 날갯짓이 진공 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 양식의 조각상이 모여 있는 야외미술관을 지나 우피치 미술관을 따라 걸으니 연둣빛 아르노 강이 등장했다. 건물이 놓인 아치형의 베키오 다리가 강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다리를 배경으로 공통점이라고는 꿈꾸던 장소에 왔다는 것뿐인 얼굴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나도 부탁해 사진을 한 장 찍고, 나 역시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줬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었고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한때 푸줏간이었으나 지금은 반짝이는 보석으로 채워진 베키오 다리에 닿는 길, 그 다리 너머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가는 길, 다시 두오모로 돌아가는 길, 피렌체의 명물인 티본스테이크 맛집을 향해 가는 길, 명품샵이 늘어선 거리로 가는 길, 갤러리들이 가득한 골목으로 가는 길, 저마다 꿈꿔온 피렌체를 수놓고 있는 수많은 길을 향해 씩씩하게. 


르무통 스위트(블랙(블랙아웃솔))를 신고 마주친 베키오 다리의 풍경


피렌체를 만나야 할 진짜 이유 

피렌체는 걸어야만 하는 곳이다. 걷지 않고는 어떤 것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피렌체를 걷다 보면 그 안에서 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길을 지났을 수많은 사랑들이 느껴진다. 피렌체를 걸으면 그 길의 어디쯤에서 9년 만에 베이트리체와 마주친 단테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베아트리체가 결혼하고, 세상을 뜬 후까지 단테는 사는 내내 베아트리체를 연모했다. 9살에 만나 첫눈에 반하고 18에 다시 만나 가슴이 뜨거워졌던 경험. 당파 싸움에 휘말려 추방된 단테는 끝내 다시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길 위에서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레푸블리카 광장의 화려한 회전목마

피렌체를 다시 걸으면 사랑하는 여인과 <냉정과 열정사이> 준세이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재회한 아오이가 떠나버린 아침,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산타마리아노벨라역으로 달려가던 준세이의 오토바이. 사랑을 확인한 준세이와 아오이가 여전히 그 길 어디쯤 발자국을 남기고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피렌체를 한 번 더 걸으면 두오모 광장에서 우피치로 가는 길목에 있는 레푸블리카 광장에 화려한 조명을 켜고 도는 회전목마를 만난다. 돌아가는 말 위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가족을 보며 활짝 웃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손 흔드는 가족들이 보인다. 서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 


피렌체의 골목들을 탐험하면서 수백 년의 시간 남은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또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희망, 아름다운 꿈, 아름다운 사랑… 피렌체를 걷고 또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지켜야 할 생의 목록들이 만들어졌다. 피렌체를 생각하며 피렌체에 머물며 메모장에 적어둔 아름다움으로 시작되는 말들을 다시 읽어본다. 그렇게 피렌체를 만난 후 나의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해가 진 뒤의 아름다운 피렌체 골목 풍경






<걸음 속의 유럽> 피렌체 산책은 르무통 스위트(블랙(블랙아웃솔))와 함께했습니다.

원고 내 여행 코스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aps.app.goo.gl/CBfiwT1JAKyNi1BN9


피렌체를 거닐은 '르무통 스위트' 만나보기↓

벗고 싶지 않은 편안함, 르무통 (lemout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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