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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Apr 18. 2024

07. 이 생은 온전히 우리가 써 나갈 이야기니까

서로의 눈에 담긴 아이를 바라보는 일

07


반짝반짝 빛나는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면 2023년 9월의 한가운데라고 하겠다.

포르투갈에서 스위스로 옮겨가며 지냈던 2주간의 여행은 내 삶에 생명을 주는 마르지 않는 바다가 되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잊지 못하는 탓에 인생 참 고달프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빛나는 기억들을 잘 담아도라는 신의 축복이라는 것을 이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을 아주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그에 따른 지명이기에 당장 딱 기억은 안 나지만, 스위스의 어느 산에 올랐던 날이 있었다. 청계산, 대모산 그런 산이 아니라 웅장하고 거대한 산이었다. 케이블카도 탔는데 그 아래로 짜랑짜랑 울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려다보니 소들이었다. 목에 단 종이 울리는 소리. 곳곳에서 아주 자주 들려왔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반드시 소들이 있었다. 초록색의 맑은 들판에, 시리도록 파란 하늘, 티끌 하나 없는 흰 구름. 왜 죽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이 스위스 여행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정말 작은 존재이고 그 존재를 둘러싼 커다란 세상은 거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이런 곳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억울하겠다 싶었다. 그렇다 '세상은 살 만하다'.


사실 무서워서 덜덜 떨며 올라갔고, 오빠는 깔깔..



이런 생각이 들면 갑자기 내 인생이 제삼자의 것처럼 느껴지면서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게 된다. 내가 살아온 나날들이 영화 보듯 조금은 낯설게 쭉 지나간다. 혼자 그렇게 살다가, 또 그렇게 혼자 살아온 오빠를 만나고 그렇게 각각의 하나가 둘이 되고 그 둘이된 사람들이 여차저차한 흐름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는 여정.

스위스는 내 인생을 그렇게 돌아보도록 했다.





가운데 보이는 사진으로 사람이 떨어진다.. 저 콩알만한 케이블카에 타 있는 오빠.



역시나 조식에서 가져온 서양 배 하나와 병맥주 하나를 전망대에서 만끽하고, 오빠의 번지점프를 위해 베이스로 향했다. 거기서 함께 번지점프를 할 동지들을 만났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그러나 우리 빼곤 다 서양인) 사람들과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저러다 줄 끊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래서 각서도 쓰고 가는데 '오빠를 저리 떨어뜨리는 게 진짜 맞나'하는 생각을 하며 있었고, 그 사이에 오빠는 내 이름을 부르며 번지점프에 성공했다. 여행 가면 한 번씩 꼭 해왔다니 오빠는 굉장히 즐기는 눈치였다. 번지점프를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되게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 같은데 막상 내가 되니 좋긴 좋더라. 그렇게 '생사'를 함께 한 동료들과 인스타그램 정보를 주고받고, 핸드폰을 떨어뜨린 친구와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생긴 인연들도 있다.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다들 유쾌하고 열려있는 사람들이었다. 보고 싶네.




산에도 오르고, 번지점프를 하고 (나는 물론 기다리고), 수다를 한창 떨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허기가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간절해지는 것은? 바로 신라면. 편의점에서 봉지로 된 신라면을 두 개 사고, 김밥도 샀다. 오빠가 '뽀글이'라는 것을 해준다고 했다. 신기하고 맛있는 방법이었다. 집에서도 해 먹어야지.


분명 그리워질게 뻔해서 이리 있는 그대로 찍어놓는다.





그다음 날은 또 조식에서 소중한 빵을 챙겨 왔다. 왜냐? 수영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 그리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넓은 통창으로 푸른 호수가 다 보이는 멋진 기차였다. 기차 안에서도 오빠는 잘 붓는 내 다리를 내내 걱정하며 주물러주기 여념이 없었다. 내 발을 남에게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페디큐어도 잘 못 받던 나였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수고를 맡기다니. 불편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그게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때문에 수고하는 본인이 편해졌으면 좋겠고 그냥 당연하다는 듯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더 사랑해 줘야지. 될 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조식털이식품으로 수영 후 허기진 배를 달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마켓도 갔다. 오빠의 선물 같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전에 스위스 도착하자마자 고민을 거듭하다 내려놓은 인형 대신에 아주 귀여운 여우인형을 샀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그것도 이렇게나 귀여운 여우 인형을 사다니! 꿈만 같았다. 잘 때도 옆에 베개 베어주고 잤다. 아주 행복했다.





그다음은 나의 선물 같은 선택지! 음악을 좋아해서 DJ로도 활동하는 오빠를 위해 그 지역의 레코드샵을 찾아두었고, 그곳으로 오빠를 인도했다. 다행히도 오빠가 정말 좋아했고, 거기서... 레코드에만 200만원을 썼다. 물론 오빠 개인 돈으로 산거였지만 우리의 공금으로 샀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다 사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 숟가락이라도 얹게. 하지만 자기의 취미생활에 쓰는 돈인데 자기가 사는 게 맞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은 제안이었다. 고맙고 서운해. 아이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것저것 들어보고, 다가오는 기차시간에 황급히 챙기는 레코드 한 장 한 장을 쌓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정말 아이 같았다.



이름도 지어줬다. 카페 ! 안녕 카페야-






우리의 철부지 같은 모습을 서로가 잘 지켜줄 수 있기를.
훗날 흰머리 가득한 노인이 되어도 서로의 눈에는,
서로가 복숭아빛 생기 넘치는 아이로 비치기를.



남들이 여태 철부지라고 해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우리!

결국 이 생은 우리가 온전히 써 나갈 우리만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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