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리워하며...
2023년 5월 12일 오전 9시 30분
오래도록 마음 한켠에 접어 두었던 그 여행길에 올랐다
혼자가 아니라 사춘기 접어드는 6학년 아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작가 김남희 씨의 여행에세이를 읽고 한눈에 반해서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언젠가 가야지 꼭 가야지 하다가 결국 20년이 지나갔다
일해야 하니까 결혼해야 하니까 아이 낳고 키워야 하니까 부모님 아프시니까..
언제나 합당한 이유들은 차고 넘쳤다
2023년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중학교 가기 전에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잊고 있던 순례길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던 일이었는데 아들 핑계로 가보지 뭐 ~
이래서 해보고 저래서 해볼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인데 20년 만에 하게 되다니..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데 결과는 이렇게나 다르다
12시간이 넘는 이코노미석 비행은 고문이 따로 없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엉덩이가 짓무르는 것 같고 답답하고 갑갑하고...
어서 탈출하고픈 생각밖에 없는데 옆에 있는 13살 아들은 앞 좌석에 붙어있는 모니터와 게임도 했다가 영화도 봤다가 잠깐 잠도 잤다가 잘도 버틴다 기특해라
하루 보통 7시간에서 8시간씩 걷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잠자리가 불편한데도 아들은 몸살도 안 나고 아프지도 않고 크게 짜증도 안 내고 잘도 걷는다 기특해라
학교에 안 갈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엄청난 여정을 함께 하는 멋진(?) 아들 기특해라
순례길 다녀온 사람들이 까미노블루(까미노는 스페인어로 '길', 순례길을 그리워하는 일종의 향수병)에 시달린다고 하던데 나는 사실 1달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안에서의 고문(?)이 너무 힘들어서 장시간 비행이 수반되는 여행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런데 딱 1년이 지나 5월 6월이 되니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아래 땀을 줄줄 흘리며 걷던 그 길이, 갑자기 불어오던 그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지쳐서 들어갔던 타파스 가게에서 먹던 그 맥주 한 모금이, 그 불편하기만 했던 순례자용 숙소의 침대마저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몽글몽글 또 가고 싶어 진다.
한나절을 걷고 나서 샤워하고 그늘에 앉아 마시던 그 맥주와 감자칩
절대로 한국에서는 그 맛을 재현할 수가 없다
그 공기와 그 피로와 그 여유로움이 같지 않으니...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