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sum Jan 04. 2024

기네스북 도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솜털이 샥- 하고 일어난다 

'아 또 실랑이를 해야겠구만...'


"잠깐 이리 와봐. 너 세수 안 했지?"

"아 했어~."

"야 하긴 뭘 해. 딱 보면 아는데... 진짜 했어?" 

"아 했다고..." 

"너 어제도 세수 안 해서 벌금 천 원 주기로 했는데 아직 안 줬어. 이천 원 내놔 빨랑." 

"알았어 주면 되잖아 자 여기."

"야 세수 안할라고 벌금 내는 놈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야. 이러다 기네스북에 오르겠는데!" 


뒤돌아 학교에 가는 아들 얼굴에 낄낄거리는 웃음이 묻어있다 

최근에 기네스북 기록에 관심을 보이던 아들에게 이 조크가 먹혔나 보다 


유치원 시절에는 우리 아들도 정말 손을 꼼꼼하게 잘 씻었더랬다 

어느 날부터 아들은 손 씻는 걸 멈췄다 

그와 동시에 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한테 잔소리를 오지게 들어도 씻지 않았다 

잔소리가 통하지 않자 화를 내게 되었고 어느 날은 호되게 야단도 치게 되었다 

하지만 안 통했다 그날뿐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왔고 손소독제라는 게 일반화되었지만 아들은 그마저도 질색팔색하며 거부했다 


이도저도 안 통하니 아들의 위생이 심히 걱정되었던 나는 진짜 진지하게 궁금함을 가지고 물어봤다 

왜 그렇게 손 씻는 걸 싫어하는지 말해줄 수 있냐고.. 

"손 씻으면 손이 따갑고 아프단 말이야 손소독제는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들의 손에 오돌토돌 발갛게 올라오던 그것 

병원에선 그냥 습진이라고 해서 로션 잘 발라주라고만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아픈 건 줄은 몰랐었다 


손을 씻으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더 건조해지니 손을 씻을수록 증상이 심해졌을 테고 그러다 스스로 손을 씻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와중에 이걸 대견하다 칭찬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허허...  


손 안 씻기 대신 손을 잘 씻고 로션을 바르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자 했으나 로션을 바른 뒤 손이 미끌거리는 그 느낌을 싫어하는 아들과의 실랑이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클레이로 하루종일 뭔가를 조물딱조물딱 만드는 취미를 갖고 있는 아들은 로션 바르면 작품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너의 위생이 너의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걸 그냥 포기할 수가 없어. 적어도 하루에 두 번!! 학교 가기 전과 잠자리 들기 전 두 번은 엄마가 체크할게. 그때는 꼭 비누로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엄마한테 검사받아. 안 하면 벌금 내기!! 어때?"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만든 새로운 룰이었다. 

몇 번 벌금을 내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씻을 줄 알았다 

지금 열심히 돈을 모으는 중이었기에 더더욱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겠지 싶었다. 

처음 두 번 벌금을 내고 나서는 잘 씻더니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또다시 안 씻기 시작했다 

성실한 놈 같으니라구...  


하긴... 어른인 나도 좋은 습관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데... 

그냥 내버려 둘까? 크게 아픈 적도 없었던 걸 보면...  

코딱지 먹고 흙 퍼먹고 땅에 떨어진 거 훌훌 털어 먹고살던 옛날이 애들 면역력에 더 좋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들과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이러다 사이가 영영 틀어져서 원수 같은 사이가 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슬쩍 고개를 쳐든다. 아들이 며칠 후면 중학생이 될 만큼 훌쩍 커버렸기에 두려움은 현실적으로 더 무게감이 짙어졌다. 무작정 혼내는 건 관계만 망칠 뿐 그 어떤 효과도 거둘 수 없다는 것쯤 이미 터득했기에 되도록 아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돌려서 말할 수 있게 된 게 참 다행이다. 내 속상한 마음보다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아이가 어릴 때의 육아는 몸이 힘들지만 아이가 자라면서부터는 두뇌전과 심리전이 가미되어야 하므로 정신이 힘들어진다. 나의 경우 대부분 정신적 힘듦은 내 뜻대로 아이를 고치고 바꾸고 싶은 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을 때 발생했었다. 나 자신도 내 맘대로 고치고 바꾸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자식이라도 전혀 다른 인격체인데 그게 가능이나 할까. 그냥 아이를 믿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클 텐데... 노파심! 그놈의 걱정이 늘 모든 걸 망쳐버린다. 


"오늘 아침 손을 안 씻었다" 

이 사건 자체는 전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는 오늘 아침 손 안 씻은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손을 씻지 않았고 앞으로도 손 안 씻는 습관이 지속되다가 큰 전염병에라도 걸리게 되면 어쩌나 잘못된 위생관념이 아들 주변의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하여 사회생활하는데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나중에 여자친구가 얼마나 싫어할까 등등 순식간에 수만 가지 걱정이 되어 현실처럼 나타난다. 그러고 나면 갑자기 오늘 아침 손 안 씻었던 사건이 엄청 심각한 문제가 되어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과대망상 환자 같다. 머리를 흔들어 이 모든 것들을 털어낸다. 그냥 오늘 아침 손을 안 씻은 건 오늘 아침 손을 안 씻은 것뿐이다. 매일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을 그 순간 일어난 일 그 자체로만 바라보고 대처하면 된다.   

 

그래 아들아! 

손 안 씻어서 벌금 최고로 많이 낸 걸로 기네스북 기록 한번 올라보자 까짓 거! 

작가의 이전글 느리게 배우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