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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Nov 27. 2023

아프니까 군인이다.

건빵이 좋았던 이유가 있었다.(2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한다. 

만 19세가 되면 지방병무청장이 송달하는 병역판정검사통지서를 보고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통지서가 우편으로 오고, 병무청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고, 입영날짜가 정해지면 입영을 한다. 

20년 간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다가 18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씩 떨어져 병영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잘 먹어 보지 못한 건빵이라는 놈과 친하게 된다. 

내가 처음 군용 건빵을 먹어본 기억이 중학교 1학년 때다.

우리 동네에서 걸어서 2킬로 정도 가면 고리원자력 발전소 사택이 나오는데 그 단지를 지나면 위병소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이 있다.

처음에는 군인 아저씨들이 무서웠지만 몇 번 지나치면서 인사도 하고 위문편지를 썼던 터라 친근감이 있었다. 하루는 도로를 지나가는데 군인아저씨가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때 기억도 아버지 사진과 비슷하게 철모를 비스듬하게 쓰고 m16 소총을 들고 있었다. 

솔직히 당시 총을 한번 만져 보는 게 소원이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총을 만져봤다고 자랑하면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총을 한번 만져 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 군인아저씨 한분이 바지 건빵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건빵 봉지를 꺼내는 것이다. 순간 총보다는 건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이게 건빵인데 전쟁 나면 이걸 식량으로 먹는다." 우리 군인에게는 엄청 중요한 거니 내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손바닥을 넓게 펴고 한주먹 가득 받는가 했더니 달랑 건빵 1개만 주었다. 

직사각형 모양에 가운데 작은 구명이 6개가 두 줄로 나란히 나있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입으로 쏙 넣었다.

이건 맛도 없고, 향도 없고, 식감도 별로였다. 근데 고소한 맛이 씹을수록 나의 미각을 깨웠다. 

하나만 더 달라고 하니 다음에 라면 한 봉지를 사 오면 건빵 한 봉지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뒤 라면 한 봉지를 사가서 건빵 한 봉지랑 교환했다.

친구랑 나누어 먹으면서 걸어오는데 봉지 안에 몰랐던 조금 한 비닐 봉지에 별사탕이 들어 있었다. 

그 친구랑 건빵에 별사탕이 왜 들어있지?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가 우리끼리 결론을 내었다. 

"불량품이네"

달달한 불량품 별사탕을 나누어 먹으며 걸어왔던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도시 아이처럼 깔끔하게 생겼는데 아버지가 군인이라고 했다. 

그 아이가 전학을 오면서 무성한 소문들이 많았다. 

등하교는 지프차로 하고, 점심 도시락은 군인들이 먹는 짬밥이고, 부산이나 울산 나갈 때는 헬기 타고 간다. 장군의 아들이다 등 소문만 무성할 뿐 검증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 친구를 알게 되었다. 당시 울산은 53사단 1개 연대가 해안방어를 하고 있었다. 전학 온 친구는 우리 동네 해안방어 대대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서 이사를 하게 되어 우리 중학교에 전학을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점심 먹을 때 짬밥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이들이 보려고 모여들었는데 그 친구는 끝내 도시락을 열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 때문에 건빵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도시락과 같이 가지고 온 건빵이었는데 내가 처음 보았던 건빵이랑 달랐다. 

색깔은 더 짙은 갈색에 설탕이 뿌려 저 있는 것이다. 

그때는 이런 건빵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훗날 군생활을 하다 보니 식용유에 튀겨 건빵에 설탕을 무쳐서 만든 군인아저씨용 간식이었다. 

별사탕 없이도 달콤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건빵이었다. 

요즘은 충성클럽이 잘 되어 있어 건빵의 인지도는 떨어졌지만, 논산훈련소와 같은 신병교육을 받고 있는 훈련병들에게는 최고의 간식이다. 

나도 처음 입대해 훈련받을 때 건빵을 주면 숨겨놓고 배고플 때 옆자리 동기와 꺼내서 아껴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형님들 세대는 건빵을 ‘눈물 젖은 건빵’이라 표현하는 것 같다. 

건빵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다. 

희(喜). 아무것도 먹을 게 없는 환경에서 건빵 한 봉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삶에 대한 열정이 막 샘솟지 않을까. 아무리 충성클럽이 잘 되어 있어도 생활관 사물함 한편에 건빵이 없다면 2% 부족한 것이다.

로(怒) 군에서 건빵 때문에 전우와 다투는 병사를 본 적 있다. 이유는 별사탕만 먹는다는 것이다. 병장은 건빵을 안 먹는다. 하지만 김병장님! 건빵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지 않으면 화를 낸다. 우유에 건빵을 넣어서 불려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재미가 있는데 고참꺼 안 만들고 후임끼리 먹으면 고참이 화를 낸다.    

애(哀) 훈련이나 행군을 많이 하면 배가 빨리 고파진다. 그만큼 많은 칼로리 소모가 크다.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친구들은 건빵을 꼭 챙긴다. 도로에 군장을 풀고 아픈 다리를 만지며 건빵을 먹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짠한 전우애가 생긴다. 근데 비가 오는 날 비와 건빵을 같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 짠하다. 비 오는 날에는 아무것도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락(樂). 건빵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레시피가 있다. 그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 먹으면 재미가 있다. 재미만으로 끝나면 건빵이 섭섭해 할 수 있다. 건빵 푸딩은 500m 우유를 반정도 마시고 건빵을 깨거나 그대로 넣는다. 그리고 별사탕을 잘게 부수어서 넣은 다음 조금의 기다림 뒤에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너무 맛있는 맛에 웃음이 막 나온다. 그리고 식용유보다 버터로 구우면 그 고소함이 더 환상적이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간에 건빵은 많은 사람에게 희로애락을 준다. 그래서 그 존재감이 대대손손에게 전달되며 잊히지지 않는 국민 과자가 되었다. 

입대 이후 많은 분들이 건빵을 구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 몫을 먹지 않고 가져다주었다. 그 후 더 많은 건빵을 요청해서 건빵을 만드는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서 주었던 기억이 있다.  

충성클럽에 다양한 과자류가 진열되면서 건빵의 위상이 조금 떨어졌지만, 다양한 레시피를 만들어 전파하다면 건빵도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건빵에 별사탕이 들어 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중학교 때 불량품으로 처리해 버린 기억을 되살려 건빵 봉지 속 별사탕의 진짜 실체는

첫 번째는 육체적 노동을 하는 군인에게 건빵의 모체인 탄수화물과 당분이 더해지면 피로와 허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고, 둘째는 배고픔에 허겁지겁 건빵을 먹으면 목이 굉장히 메는데 별사탕과 함께 먹으면 입안에 침이 고여 목이 메는 현상을  줄여준다는 설이 있다. 

저 보다 더 과학적인 설명을 하실 분들도 계시고, 건빵에 별사탕을 넣게 된 이유를 아시는 사장님도 계시겠지만, 군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다. 

건빵은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군대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남자라면 누구나 건빵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군에 두 번간 남자로 두 번째 군에 갔을 때도 어김없이 건빵의 추억이 있다. 

특전사에서 전역 전 나의 꿈이었던 장교가 되기 위해 육군 3 사관학교에 지원했고, 전역 1개월 전에 입학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나의 꿈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관생도가 되기 위해서는 약 6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무사히 마쳐야 입학과 동시에 3학년이 되면서 사관생도라는 계급이 생긴다. 

6주간 선배들은 나약한 후배들을 골라내어 다시 사회로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동기는 한 몸이다. 너희들 같이 나약한 사람을 후배로 둘 생각이 없다 등 얼차려와 정신교육으로 동기들의 넋을 빼놓는다. 

나도 특전사에서 나름 힘들게 군 생활을 했지만, 이곳에서 나의 체력과 정신적 한계를 한 번 더 시험받는 계기가 되었다. 

동기들이 힘들고 지쳐 기초군사훈련을 그만두고 나가고 싶은 시기가 온다. 그때를 선배들은 귀신같이 알고 밤에 생활관에 들어와서 입속에 건빵을 하나씩을 넣어 주고 나갔다. 

건빵의 표면이 살살 녹으면서 말초신경을 타고 전두엽을 자극하여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기초군사훈련을 그만두고 싶었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게 바로 신비의 힘. 건빵의 힘이다. 

전역 후에 먹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도 눈을 감고 그때를 생각하면 기억 저편에서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이렇게 건빵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직업군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복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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