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couver, Canada
세상의 모든 일몰을 사랑했다. 한국의 도시들은 구조상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 어려웠는데, 나는 굳이 일몰을 보러 도시의 높은 지대로 오르곤 했다. 유럽의 도시들은 일몰과 가까운 곳이 많았다. 리스본의 전망대들, 프라하의 강변과 리에그로비 사디, 프라이부르크의 허물어진 성, 사람들은 각기 들고 온 주전부리를 꺼내놓고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즐겼다. 일몰에 인사를 건네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하루에 대한 예의였다. 캐나다에서도 매일의 하루를 일몰로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잉글리시 베이 English Bay의 일몰은 그 어느 일몰보다도 사적이었다.
사실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향한 곳이 잉글리시 베이였다. 다운타운에서 오 분, 조그만 해변은 언제 발걸음해도 평화로웠다. 나는 종일 잉글리시 베이를 놀곤 했지만, 역시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느지막한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여름날의 황혼이 감싸 안은 바닷가 너머로 해가 치달을 때면, 잉글리시 베이는 평소보다 더욱 활기를 띠곤 했다. 조그만 모래사장엔 다양한 군상들이 얼굴을 비추었다. 수영하는 사람, 살갗을 태우며 엎드려 있는 사람, 끌고 온 개와 놀아주는 이들과,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는 커플.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 조그만 바닷가를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밴쿠버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또다시 베이의 일몰을 보러 홀로 길을 나섰는데, 늦은 태양 너머로 노래를 부르는 그가 문득 보였더란다. 그는 해 질 녘의 황혼을 뒤로한 채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느릿함 음은 점멸하는 빛들을 머금었고, 재빠른 음은 그의 진득한 미소에 달라붙어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음악 너머에서 멈출 수 없는 방랑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세상의 길목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년의 장래 희망이야 다 거기서 거기였고, 공부를 잘하면 갈 수 있는 학과들도 정해져 있었다. 삶은 예측 가능한 직선이었고, 그 길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사회는 낙오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길목의 삶들은 달랐다. 그들은 좋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 나는 길 위에서 수많은 삶의 모습을 엿봤다.
그의 길은 건축과 음악이었다. 그가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 것은 열한 살 무렵이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가족 행사의 일원이 되는 걸 싫어했다. 일가친척이 모이면 그는 가족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것이 어린 그에겐 고역이었다. 스물한 살, 런던의 건축 사무소를 떠나 밴쿠버로 향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캐나다를 떠돌며 그는 음악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음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친구를 만들고, 음악 앞에서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는 거였다.
한여름의 해는 느지막하게 졌다. 중천에 걸려있던 해가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데에는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의 연주가 근처에서 들려올 때면, 부러 그의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아이리시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으로 시작한 노래가 비치 보이스 The Beach Boys의 커버 음악으로 넘어갈 때면 해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황금빛 풍경이 어두운 파랑으로 물들곤 했다. 잉글리시 베이는 가장 훌륭한 뒷마당이야 It’s like the best backyard in the world, 라는 그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삶의 마지막에서 앞날을 뒤돌아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에 전념했기를 바랄까.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서라도 생각해봐. 그게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야. 여전히 밴쿠버의 일몰을 떠올릴 때면 그의 곱슬머리와 천진난만한 눈, 밝은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지는 해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까닭엔 아마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그의 음악이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