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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Jun 27. 2021

나는 그가 길을 떠난 사이 그의 강변을 홀로 걸었다

Frankfurt am Main, Germany

Oh, this rain, it will continue through the morning as I'm listening to the bells of the cathedral. I am thinking of your voice and of the midnight picnic once upon a time before the rain began. And I finish up my coffee and it's time to catch the train.


이른 아침의 도시는 서늘했고, 황량한 늦가을의 날씨가 몸을 에워쌌다. 도시 외곽 그의 집에서 나와 낡은 골목과 굴다리와 공원과 철길을 건너 강으로 향했다. 강으로 향하는 길은 오직 회색빛이었고, 잿빛 물기를 머금은 건물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친절한 미소로 서로를 응시했고, 가끔가다 열려 있는 케밥 가게에서 알 수 없는 터키어와 독일어가 들려왔다. 케밥 가게와 베트남 포 가게, 터키 미용실을 지나면 트램 정거장이 나왔다. 트램 길을 옆에 두고 천천히 도시의 중앙부로 향했다. 드높이 늘어선 건물들이 두 눈에 들어올 때쯤이면 마인(Main)강의 물 내음 또한 나는 듯했다.


그를 만나러 프랑크푸르트에 온 것은 어느 가을날의 늦은 저녁이었다. 도시의 중앙역은 추레했고, 번잡했으며,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다. 도시는 전구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아래의 어두운 구석구석에선 왁자지껄한 관광객의 소리가 들려왔다. 중앙역 초입에는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민자 무리와 술에 취한 독일인들이 조그만 영역을 설정해놓곤 다툼을 하듯 오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그 무리를 뺑 돌아 강가로 향했다. 강에 닿아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인구 칠십 만의 도시는 낮에도 밤에도 지치지 않았다. 도시는 강변에 가득 들어찬 마천루에 하늘을 내줬는데, 역시 헤센주의 중심 도시다웠다. 관광객들은 주로 중앙역 근처의 구시가지로 향하곤 했다. 마천루의 풍경 옆으로 젊은 괴테가 슬픔을 숨죽였던 집과 오래된 시가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는 복합적인 풍경으로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 은행과 보험의 자금으로 싸인 드높은 건물들과 그 사이의 구시가, 푸릇한 마인강변의 공원과 골목들에 자리 잡은 조그만 중국인 식당들, 늦은 밤의 도시를 거닐었다, 녹음이 어둠에 자리를 내줬지만, 그 자리는 인파의 소란스러움이 꿰차고 있었다.


그는 마인강을 좋아했다. 강은 값비싼 집값 때문에 외곽 지역만을 전전했던 그가 소유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 짐을 싸고 외곽에서 또 다른 외곽으로 일을 나서면, 그는 더욱더 강에서 멀어졌다. 그의 목적지는 강과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외곽의 상업 지구, 부박한 삶이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을 끝내고 항상 마인강으로 향했다. 강변은 그의 삶을 축소한 듯했다. 성공을 향한 갈망, 낡은 것들에 둘러싸인 삶, 한국에선 가질 수 없었던 녹색의 여유와 그 가운데 문득문득 신경을 거스르는 인종차별. 이민자로서 그는 도시를 사랑했고 동시에 증오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익명으로 무장한 도시였다. 


그는 종종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며 수잔 베가의 탐스 다이너를 들었다. 'There's a woman on the outside looking inside, does she see me? No, she does not really see me cause she sees her own reflection.' 이민자로서 마주한 마천루의 도시에서 그는 여전히 혼자였고, 그가 바라보는 대상들은 관광객이길 포기한 그를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들이 바라보는 건 자기 자신 혹은 또 다른 관광객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온전할 수 있었다. 그에겐 버텨내야 할 삶이 있었다. 


삶은 지난했지만, 그는 도시를 사랑했다. 강변에 내려앉은 버드나무를 사랑했고, 구시가지의 슈니첼 가게와 늦은 밤의 맥주들을 사랑했다. 중앙역 옆의 중국 식당의 중국식 냉면을 사랑했고, 초라한 버스 정류장에서 떠나는 25유로짜리 파리행 버스를 사랑했다. 그는 전구색의 밤 도시 풍경을 사랑했고, 익명의 사람들을 뒤로한 채 걷는 강을 사랑했다. 그는 종종 비 오는 날 아침에 길을 나서며 성당의 벨 소리를 들었고, 그가 사랑했던 누군가의 목소리와 어느 밤의 피크닉에 대해 생각했다, 이른 커피를 내려놓고, 트램을 탈 시간이었다. 


나는 그가 길을 떠난 사이 그의 강변을 홀로 걸었다. 마인강의 풍경에서 그의 젊은 날의 슬픔을 가늠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뒷모습, 내가 만났던 도시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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