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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1. 2021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속해서 쓰는 사람 이한규입니다. 여행책 두 권, ‘하루여행’과 ‘프라하’를 썼던 여행 작가였으나, 현재는 아시아의 정치 폭력과 시위를 분석하는 연구자로서 살고 있습니다. 오 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으나, 내년 봄에 또 스리슬쩍 한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말마따나, 제 고독의 글쓰기가 세상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글을 문토의 문지기님에게 보냈다. 문토 셀렉티드 호스트 선정은, 기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두 가지 다 내가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것, 나는 세상을 구원하는 글쓰기를 함께 하고 싶었다.  


어제는 오 년 전에 내 삶에 난입했던 그녀를 만났다. 콜롬비아의 적막한 봄을 기록하던 내게 그녀는 불현듯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꾸준히, 내지 않은 책들과 겨우 세상에 나온 졸저들 사이에서 나의 글을 읽어줬다. 그녀는 다양한 삶의 길목의 기억들에서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오지 않았던 리스본, 새빨간 드레스를 입었던 프라하, 늦은 밤의 광안리와 어느 봄의 현대미술관. 한규, 뭐가 되었든 써보는 건 어때요. 내가 읽을게요. 여전히 그녀가 나의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사실 되돌아보건대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나의 글이 누군가를 구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그 말을 딱 두 번 들었다. 내 글이 힘들고 지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면, 사실 세상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아시아의 정치 폭력을 분석하는 글을 쓰는 요즘에도 글로 세상을 구할 생각을 하고 있다.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나의 명사와 동사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라는 고래마저 달아나게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여전히 부산에서 다친 발목은 시큰거리고, 일상은 오후 아홉 시와 오후 열 시 회의의 연속이다. 미얀마에선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군부를 타도하며 생을 잃고 있고, 태국의 절대 왕정 앞에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태국과 런던 미얀마와 싱가포르 뉴욕과 인도를 오가며 회의를 진행하지만 크게 나아지는 건 없다. 우리는 그저 꾸준히 쓸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책 두 권을 함께 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책을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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