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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Dec 04. 2021

결국은 꾸준히 쓰는 것

아침 일곱 시 반 아이폰 기본 벨 소리가 울린다. 무너지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오피스텔 사 층으로 향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신발 사진 하나, 신발 사진은 그만 보내라고 했으니 건물 밖의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톡을 열고 섬에게 사진 둘을 보낸다. #성남아오늘의사진. 장난스럽게 아침이면 보내던 운동 사진에 그녀는 성공한 남자의 아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공은커녕 졸려 죽겠고 여전히 발목은 시큰거린다. 하이플리와 버터플라이를 오가며 아침의 뉴스를 훑는다. 메일함에 가득한 뉴스레터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곤 한다. 이른 아침의 짐은 항상 한가하다. 매일 마주치지만,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남자들. 근육일과 근육이 사이에서 근육제로는 조용히 뉴스레터를 읽는다. '태국의 민주주의 시위는…'


터덜터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샤워를 한다. 아빠가 유튜브 삼 년 내공으로 챙겨주신 비타민들을 입에 털어 넣는 것 또한 일과의 일부다. 오전 아홉 시,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컴퓨터를 켠다. 맥은 왼쪽, 윈도우 랩톱은 가운데, 그리고 커다란 모니터는 오른쪽. 맥으로 사운드 클라우드에 들어가 노래를 틀고 윈도우로 업무용 이메일들을 확인한다. 밤새 쌓여있는 슬랙 메시지들. 퇴근 시간 후에 업무 메시지를 보내는 건 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발신자는 대개 유럽이나 미국에 있다. 그럼 너네도 자는 동안 슬랙 좀 쌓여봐라, 하고는 메시지를 왕창 보낸다. 이모티콘이 아닌 직접 답장을 해야 하는 메시지들로 보내는 건 딱히 내가 심술이 많아서는 아니다.


오전 열한 시 반 또 한 번 알람이 울린다. 종일 울리는 알람은 총 여섯 번. 기상과 출근, 점심시간과 퇴근, 그리고 취침 시간이다. 시간을 정언명령처럼 따르지 않는 나는 칸트가 될 수가 없었다. 하긴, 저 알람들도 자기 위안일 뿐 나의 일탈을 방해할 수는 없다. 재택근무 일 년 반째, 나는 정해진 시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나태하고, 자주 무너지고, 다음과 네이버의 뉴스 창을 오가며, 가끔은 웹툰과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하다가, 종종 낮잠에 빠진다. 자책하는 내게 남겨진 것들은 대게 야근이거나 주말 근무다. 기실 보는 이도 없고 시간을 재는 사람도 없으니 째면 그만인데, 그걸 또 알량한 책임감에 꾸준히 하고 있다. 못해도 중간은 하자가 최선을 다 하자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나의 나태함과 외로이 싸운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사랑해 마지않는 빵을 만났다. 얼마 만이야, 이년 만인가? 산호가 뱃속에 있었으니 이 년은 지난 거 같은데. 어른이 다 되었네. 일은 어때? 다 컸네! 다 컸어.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블로그, 스무 살 무렵에 그녀는 내게 첫 번째 출판을 선물했다. 요즘은 뭐해? 역시 일을 안 하고는 못 살겠더라고. 작업실을 구했지. 꾸준히 쓰고 있어. 뭐라도 쓰는 게 중요한 거 같아. 꾸준히 쓰고 쓰다 보면 그것들을 이어주는 뭔가가 보이지 않을까. 나는 출판을 하고 나선 출판되지 않는 활자에 애정이 생기지 않던데. 그래도 꾸준히 써.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아. 그녀는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반겨줬다. 난 한규가 나이 먹어 가는 게 기특하고 귀엽고 든든하네. 잘 하고 있어. 그녀만큼 꾸준히 나를 위해주는 이가 또 있을까.


꾸준함에 대해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반복되는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도 꾸준함. 뭐가 되었든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것도 꾸준함. 빵처럼, 나를 지근거리에서 지치지 않고 응원해주는 것도 꾸준함. 결국은 꾸준히 일하고 꾸준히 쓰고 꾸준히 사랑하는 게 정답인 것을,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제 없는 글들과 나태한 육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게 그녀는 또 한 번 삶의 힌트를 건넸다. 꾸준히 써, 그럼 뭐라도 나오겠지.


토요일 오후 한 시, 평일의 알람들은 울리지 않는다. 나는 금요일 밤 내내 날아온 슬랙 메시지들을 가뿐히 무시한 채 맥을 켠다.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린다. 노래가 중반부를 향해 치달을 때쯤 손가락들은 제멋대로 자판을 누르기 시작한다. '아침 일곱 시 반 아이폰 기본 벨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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