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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22. 2024

저만치 혼자서


김 훈

1948년 서울 출생. 자전거 레이서. 장편소설 『칼의 노래』, 『달너머로 달리는 말』,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등이 있다.


요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김훈 글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한동안 소설을 뒤로하고 에세이만 읽다가 소설이 읽고 싶어져 문체가 간결하고 힘 있는 작가인 김훈의 작품을 손에 들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라고 말하는 마음을 알고 싶었다.


1. 명태와 고래 


  이춘갑의 배인 '어에 호'는 새벽에 달빛과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어 북쪽 경계인 어래 진으로 흘러간다. 북쪽 경비정 압박에 의해 익숙한 향일포 마을을 그려주고 송환되었다. 십삼 년 만에 출감한 이춘개는 수협 회관에 '바다와 마을'이른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 전시했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 향일포에 온 지 두 달 뒤에 선착장에 묶인 배와 배 사이에 빠져 죽는데….

  1948년생이라고 밝힌 작가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절을 거치면서 정치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폭력과 행정권력, 경제권력에 의한 폭력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저 명태를 잡아 가족들과 소소하게 살고자 했던 이춘갑은 본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 시간에 의해 국가의 폭력에 의해 가정이 무너지고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며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사연은 아픔이라고 말하기에도, 고통이라고 말하기에도 적합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다.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제도화된 폭력은 당연하며 정당한 것처럼 한 인간의 삶을 소리 없이 찢어 놓았으면서도 누구도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작가는 야만행위를 자행하는 자와 피해자, 방관자들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동시대의 고통과 절망을, 희망을 말하기에 힘들어한다.  


2. 손 


 아들인 철호가 열 살 되던 해 이혼해서 지내던 중 어린 철호가 찾아와 지내게 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철호는 '연옥'이라는 여학생을 강간하고, 연옥은 한강 다리 밑에서 투신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자살로 처리한다. 철호는 군사재판에서 십 년 형을 선고받고 육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목수 일을 하는 연옥의 아버지는 딸이 죽어가면서 구조 대원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고 주장하며 자살이 아니라고 여러 번 말해보지만 경찰은 듣지 않는다. 작업복 한 세트와 방한용 점퍼를 준비하여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연옥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작가는 신출내기인 오영환 소방관이 거친 파도에 휩쓸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구조했을 때, 강력하고 간절하게 붙든 손의 느낌을 전해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손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평생 살면서 희생적인 어머니의 손은 나무껍질처럼 두껍다. 일하는 손은 거칠지만 아름답다. 어린 연옥이 강력하게 붙들었다는 손의 힘은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말하지만 경찰은 무시한다. 

  나는 투신하여 목숨을 잃은 연옥과 십 년형을 받고 복역하게 된 철호를 생각할 때, 피어보지도 못한 채 꺾어져 버린 어린 꽃을 떠올린다. 딸을 잃은 아버지, 십 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하여 차가운 철장 안에서 보내야 할 아들을 둔 어머니는 평생 가슴에 박힌 못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린 꽃잎 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게 된 부모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곤혹스러운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해 간 방한용 점퍼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감싸주기야 하겠는가 마는 철호의 어머니는 어떤 동작이든 간절한 마음을 준비한다. 


3. 저녁 내기 장기 


  이춘갑과 오개남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님에도 일이 없는 날에는 공원에서 저녁 내기 장기를 둔다. 보통은 국물 있는 짬뽕으로 한다. 이춘갑은 외환위기 때 이혼했다. 회생한 뒤에도 오피스텔 일층 상가에 점포를 얻어 구두수선 일을 계속했다. 어느 날 어학연수 중인 아들이 문자로 보낸 전처의 사망 소식을 보게 된다. 재혼한 전처의 문상을 가야 하는 일이 곤혹스러웠다. 

  오개남은 산비탈 동네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한다. 겨울에 연탄재를 싣고 내려오다 미끄러지면서 수레가 뒤집히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적재정량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비닐하우스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옥탑방으로 이사를 해야 할 형편에 개까지 키울 수가 없다. 늘 데리고 다니던 흰 개는 유기견 센터에 맡기기로 했다. 짬뽕 열 그릇 값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개 목줄을 바꿔 유기견 센터에 맡겨진다.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던 개에게 주는 마지막 호사(豪奢)인 셈이다.

  각자는 머무를 곳이 변변치 않거나,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거나  아무튼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고단한 사람들이 만나 장기 두는 모습을 그렸다. 장기를 두고 있는 상대방과 긴밀한 대화를 나눔도 아니고, 깊은 정이 오가는 것도 아닌 일회용 만남일 수 있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람끼리 함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이 되는, 외롭고 고단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구청에 가면 지문에 의해 신원 조회를 할 수가 있다. 사람은 체취에 의해 상대방의 신원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장기 두는 사람은 서로 묻지 않는다. 사실 궁금하지 않다. 벌써 상대방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통해 말은 없지만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대장 내시경 검사


  주인공은 퇴직 후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있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고등학교 후배이며 간호사였던 나은희는 연봉이 좋다는 미국으로 떠난 후 사십 년 만에 소식을 보내왔다.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사십 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다. 전 처는 삼십 년을 함께 살며 자주 다투다기 이혼했다. 이혼한 전처는 S 교수의 빈소에서 알듯 모를 듯 앉아있어도 인사 없이 자리를 뜬다.

  과거의 사십 년과 현재의 삼십 년을 비교할 수는 없다. 어쨌든 과거의 여자도 떠나갔고 현재의 여자도 못 살겠다고 떠났다. 보호자가 필요한 대장내시경 검사는 일하는 아줌마에게 일당을 계산하여 부탁했지만 여전히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다. 사람의 일생에 결혼도 쉽지 않고 이혼도 쉽지 않다. 주인공은 여전히 혼자다.   


5. 영자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주인공은 노량진 고시텔에서 관리비만 내는 조건으로 영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구 준 생들은 원룸에서 자고, 슬리퍼를 끌면서 내려와 강의 듣고 일층 식당이나 노점에서 밥을 먹었다. 

자라면서 나는 경각심을 느끼는 장면을 본 기회가 별로 없었다. 고일 때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었는데, 진학지도 선생님이 우리에게 위기를 느끼게 하려고 대형 학원가에 숙소를 잡고 새벽에 학원에 몰린 학생들을 보게 했던 일이 있었다. 또는 도서관에 가방 들고 끝없이 줄 서있던 장면을 보게 해서 긴장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서울의 방세가 살인적이라 동거하는 하생들이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영자와 주인공은 큰 약속 없이 단지 동거하는데 필요한 조건부로 지냈더라도 외로운 사람끼리의 가벼운 온기를 느끼게 한다. 사랑이라 말할 수도 없지만 그러나 애틋하게 사람이 그리웠을 수 있다. 헤어지고 나서 주인공이 갑자기 영자가 생각났다.  


6. 48GOP


  GOP는 General Out Post의 약자로 일반 전초를 의미한다.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하여 적과 마주하고 있는 전방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소규모 전초기지다. 민간인 출입은 제한되며 DMZ와 같이 북한군과 인접한 지역의 철책에서 24시간 교대 보초를 서게 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보초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군 생활을 하는 지역으로, 이곳에 임 하사가 근무했다.

  육군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감식 사업을 시작했다.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들의 DNA가 일치해서 신원이 확인되면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임 하사의 할아버지 임종석 이등중사가 소속된 대대가 51년 양성지구 전투에서 궤멸되었다고 당시 사단 전황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할아버지 유해를 애써 찾지 말라고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아버지에게서 받는다. 

  아버지를 잃은 지 오십 년이 흐르는 동안 기억도 퇴색되었다. 매스컴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되는 내용도 각자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조용히 지나가고 싶기도 할 것이다. 젊은 날 나라에 바쳐진 아버지, 그러나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 팍팍한 삶의 무게를 떠올리게 하는 또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7. 저만치 혼자서


  도라지 수녀원의 정식 명칭은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다. 수녀들의 노후를 위하여 교구청에서는 충청남도 바닷가에 호스피스 수녀원을 설립하여 늙은 수녀들을 모셨다. 이 수녀원에 여든 살 되는 손안나수녀가 걸어들어왔다. 손안나수녀는 서른 살에 종신서원하고 미군 기지촌 성당과 시립병원, 보건소, 탁아소에서 일했다. 성당을 청소했고, 고아원과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다. 김루시아 수녀는 삼십 대 초부터 남해의 먼 섬에 격리된 나환자촌에서 일했다. 골반뼈에 구멍이 뚫려서 걸음이 어려웠고 심장이 메말라서 숨 쉬는 것을 힘들어했다.

  손안나 수녀와 김루시아 수녀는 룸메이트였다 손안나 수녀와 김루시아수녀는 쇠약해져갔다. 손안나수녀는 혀가 안으로 말려 말하기 힘들어했음에도 자주 고해성사를 하기를 원했다. 걸어 들어왔던 두 수녀는 걷기도 어려웠다. 김루시아 수녀는 손안나수녀로인한 괴로움을 토로하여 독방을 원하여 옮겨졌다. 독방을 쓴 지 두 달 만에 죽었다. 

  손안나수녀와 김루시아수녀는 평생을 사회에서 외면하는 곳을 찾아 일했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창조주를 의지하며 기도하는 삶으로 위로받는 삶을 살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년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고상하지도 않고 어쩌면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누리며 살았던 범인들의 말년도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어진 것, 각자의 작은 침대 하나이다. 무슨 욕심을 더 부리며 살까. 평생을 헌신하며 살다가는 수녀님들도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 자기 육신의 모습이 두려웠을 것이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고단한 삶의 냄새가 난다. 각자의 삶에 있어 때로 부당한 해를 입는다 해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 잃어버린 내 삶을 돌려받고 싶다. 이런 구차한 삶의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밝은 햇빛 아래 환한 웃음을 짓고 싶다. 단 하루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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