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 1948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하얼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등이 있다.
글 쓰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후부터 독서에 몰입하게 되었다. 김훈 작가의 책을 통해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과 고령의 나이가 주는 풍성한 혜안을 배우고 싶다.
작가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임을 담담히 얘기한다. 핸드폰의 액정에 찍히는 부고가 남의 일처럼 객관화 시켜 말할 때는 죽음에 초연해 보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과 사후의 경험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뚜렷해 보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말을 이어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떠난 적막이기를 바라며 애착 가는 것들이 멀어져 가는 마음을 전한다. 등산을 좋아했던 작가는 애용하던 등산 장비를 후배에게 넘겨주며 세월이 주는 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접는 대신 집 근처의 가벼운 둘레길을 걸으며 층 낮은 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을 얘기한다.
'나무들은 꽃 피고 잎 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의 빛과 냄새는 수시로 바뀐다. 바람이 불면 여러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숲 전체가 수런거리는데, 이 소리는 인간의 악기로는 흉내 낼 수 없다.'라고 적는다.
산에서 특별히 편애했던 나무와 바위를 통해 언어와 개념으로부터 풀려나고 자유롭고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자족하며 의지했던 '젊었을 때'를 얘기한다.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 나는 세상 속으로 내려가고 싶었고, 산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때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는 닿지 않은 곳을 바라보며 닿고 싶어 하는 우리의 바람도 같이 말하고 있다. 전과 달라진 몸과 마음이 과한 암벽등반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유추한다. 나도 또한 한 해 한 해 보낼 때마다 뛰었던 곳을 걷게 되고 쪼그려 앉는 것을 조심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손에 쥐어 볼 수 없는 아쉬운 시간을 공감한다.
'햇볕을 쪼일 때, 나는 햇볕을 만지고 마시고 햇볕에 내 몸을 비빈다. 햇볕을 쪼일 때, 내 몸의 관능은 우주 공간으로 확산되어서 나는 옷을 모두 벗고 발가숭이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햇볕을 쪼일 때, 나는 내 생명이 천왕성, 명왕성 같은 먼 별들과도 존재를 마주 대하고 있음을 안다. 햇볕을 쪼일 때, 나와 해 사이의 직접성을 훼손하는 장애물은 없고, 내 그림자가 그 직접성의 증거로 내 밑에 깔린다.
햇볕은 …'
머지않은 때에 햇볕이 내리비추는 따뜻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나도 햇빛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책은 1부. 새를 기다리며, 2부. 글과 밥, 3부. 푸르른 날들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길과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을 예찬하고 '새가 왔다'에서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생명의 안타까움을 얘기하고 있다. 2부. 글과 밥에서는 조사 '에'와 '형용사', '부사'의 쓰임을 보여주며 한국어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3부에서는 인문주의의 토대 위에 말본새를 얘기하며 작금의 소통불가한 언어를 남발하고 있는 현상을 애통해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일방적이며, 거칠고, 욕설이 섞인 말들을 들으며 자라는 자녀들을 염려하고, 가슴을 졸이는 부모들의 마음을 얘기한다. 경건함, 말을 검소히 사용하는 망설임, 혓바닥을 너무 빠르게 놀리지 않는 진중함, 동네를 걸어 다닐 때 거들먹거리지 않는 걸음걸이는 포즈가 아니라 외양이 지닌 본질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말하기, 듣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을 안 하고 듣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말을 오염시키고 있는 정치 사회적 조건들을 생각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로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르쳐 주는 어른을 볼 수가 없다는 이 시대에, 나도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배우며 나이 들어가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