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가 꾸는 꿈

꿈꾸는 카멜레온을 읽고

by 옥희


꿈꾸는 카멜레온 - 현정원 수필집. 연임서가. 2024.

현정원 그림 그리는 수필가,

2009년 『현대수필』로 등단, 2012년 문학나무에서 주관하는 '젊은 수필'에 선정되었고, 2012년, 2013년, 2016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 첫 수필집 『엄마의 날개옷』으로 2013년 제6회 '정경문학상'을 수상했고, 단편소설 「유리산 누에나방」으로 2014년 제12회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동상에 당선 되었다. 2020년 『아버지의 비밀정원』과 『제주 2년, 그림일기』를 출간했고, 2023년 제19회 '구름카페문학상'을 받으며 선집 『새꿈』을 펴냈다.

2015년 다리 골절을 겪으며 그리기 시작한 아크릴화로 2018년, 2022년, 2024년 〈대한민국 수채화 공모대전〉에서 특선 및 입선하고, 2020년 서울 57th 갤러리에서 개인전 〈나나-너나- 나〉를 개최했다. 2023년 인사아트 센터 〈송파 유화 창작회 정기전〉에 합류하는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현대수필문인회, 에세이스트문학회, 이화여대동창문인회, 북촌시사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읽게 된 동기 앞서 출판된 수필집을 읽고 나서 새 책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접하여 읽게 되었다. 현정원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일상을 섬세하게 수놓듯 그리며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내용


1부 사람은, 이렇게 자꾸 사람이 되는 걸까

2부 빛 면에 발 넣기

3부 우리가 선택한 기억

4부 서사에 대한 서사

5부 말의 씨

나가며 꿈꾸는 카멜레온

의 묶음으로 빛이 움직이는 순간을 잡고 일상을 표현했다.


"햇살이 버티컬과 창틀을 도구 삼아 그린 그림이라면 그림자일 텐데 왜 어둡지 않고 빛이 나는 걸까요?

빛을 뿜고 있는 네모 면들, 뭔가에 가로막힌 햇살의 부재 상태, 그림자기가 아니거든요"라고 한 작가의 글과 함께 내 눈동자도 같이 움직인다.


p59 제주에 내려온 첫해 집 마당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다. 상추와 고추와 대파 등등을 내 손으로 길러 먹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서였다. 하지만 그 소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당의 주인을 자처했던 남편이 텃밭 포기를 선언한 때문이었다. 솔직히, 때맞춰 곁가지를 따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때맞춰 수확하는 건, 수시로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p110 정말이지 아닌 밤에 홍두깨였다. 나더러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라는 말이니 말이니 말이다. 그것도 그 누구도 아닌, 금순이가! 금순은, 언니 인순이나 친구 은순과는 또 달랐다. 일찌감치 '굳세어라 금순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름인데다 내 성씨인 현玄과 어울리면 현금이 되지 않는가! 그것도 100% 순정한.


p291 여행 떠나기 전날 아버님이 용돈을 주셨다. 아버님은 대회만 있다면 따놓은 당상일, 당신 스스로도 인정하시는 세계 챔피언급 구도 쇠 시다. 오죽하면 함께 살아온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버님께 받은 게 달랑 스카프 한 장이랴. 그것도 우리 부부가 보내드린 관광지에서 사 오신 중국제.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도 생생히 느껴진다는 거다. 봉투 받아 여는 순간 마음속 뭔가가 봄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던 그 이상한 뭉클함이.


P317 "초록세계에 뛰어들어 여전히 파란 몸으로, 주변색에 물들지 못한 채 혼자 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텃밭을 만들어 보다가 포기했다. 배추 모종을 심으면 벌레가 먹어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무농약이라는 야채는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손바닥만 한 터에 야채 심기를 포기하고 잔디를 깔아버렸다. 상추와 고추 등을 심어 우리 먹거리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원대한 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종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생육하기를 포기했다. 아무튼 잔디를 깔고 틈나면 잔디 사이에 돋아난 뿔을 뽑느라 다리가 저리도록 쪼그려 앉았다.


작가의 본명이 금순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생각해도 고상한 작가의 이름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놀림을 많이 받았을 어린 금순이가 보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같은 반에 '명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남자 선생님만 들어오면 '명월아, 술상 봐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명월이가 생각난다.


여행 갈 때 아버님이 주시는 봉투로 인해 마음속 뭔가가 사라지며 뭉클함을 얘기했다. 아마도 기대하지 않았던 분의 깜짝 선물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섭섭함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은 해마다 설이 되면 며느리들이 세배를 드려도 세뱃돈이라고 돈 만 원을 꺼내본 적이 없었다. 재미로라도 할 법한데 받을 줄만 알고 100세를 넘기면서 치매가 왔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소리 없는 사이에 놓쳐버린다. 시아버님은 지혜롭다. 때를 놓치지 않아서. 며느리는 수고롭다. 홀로된 시아버님을 모시느라.


본문의 글귀로 제목을 적어보았다. 작가는 일상의 일들을 놓치지 않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이 생각하게 한다. 들고양이에게 지어준 이름들인 노랑이 깜장이이고 보면 다음번에는 초록이가 파랑이가 등장하겠구나 넘겨 생각한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가 필요하신 분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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