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가, 뭉클

by 옥희



기주. 그리다가, 뭉클. 터닝 페이지. 2024


작가의 글

그림과 글은 마음을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정신 건강에 딱 좋은 운동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의미를 찾게 되면서 마음을 뒤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건강만큼 정신 건강도 잘 챙기려면 더 그리고 더 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이나 글이나 무용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꽤나 유용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내용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

디테일은 피해야 할 악마 같은 거다. 악마는 잘 그리려는 욕심을 이용한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다. 밝은 것을 그릴 때는 주변을 아주 어둡게 그리면 된다.


그림 그리면서 알게 된 것들

어느 날 내가 나의 무던함을 보았을 때 마치 거울 치료처럼 그제야 알게 됐다. 무던함은 상처로 생긴 딱지에 가려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던하다고 괴로움을 모르지는 않더라. 내게 무심했다면 그건 내게 관심이 없었을 뿐 누구에게나 그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래저래 가려져 내게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 재주다

눈앞의 것보다는 멀리 있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 한숨을 쉬는 거야 사람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 와중에라도 멀리 있는 또 다른 나를 볼 줄 알아야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거니까.


어련히 그릴 수 있는 건 없어

손은 원래 '어련히'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주어지는 시간만큼 단련하고 연습을 해야 그때서야 어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참 모르겠다.

여름내 뜨거웠던 시간들은 금세 잊힐 거라고 생각했다. 가을은 그렇게 저렇게 또 금세 적을 될 것이었다. 적당히 때가 되면 바뀌고, 변하고, 없어지고, 잊히는 계절이라는 시간이 난,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아름답게 보는 재주

사실 나도 보여주고 싶은 거리와 방향이 따로 있다. 조금만 떨어져서 봐줄래? 한 다섯 걸음 정도면 좋겠고 살짝 왼쪽 방향에서 봤으면 좋겠다. 조금 멀리 두고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깊게 파인 주름이나 여드름 자국을 보여 주기도 싫지만 긴장해서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여주는 건 더 싫으니까.


소실점, 만날 수 없어서 사라진다 했을까?

생각이 많으면 용기는 점점 사라진다. …….

그러니까 지나간 것에 후회할 필요는 없다. 상처쯤은 있어야 사람 사는 것이고 멀리서 한눈에 보면 누구나 빈틈없이 행복한 거니까. 자꾸 헤집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는 굳이 없는 거니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러니 우리 인생도 좀 떨어져서 봐야 한다. 명화를 전시할 때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라인을 설치하는 것처럼 작품 같은 오리 인생도 좀 멀리 두고 보자. 우리 인생도 멀리서 보면 결국, 희극이다.


지우개의 쓸모

결핍은 어떤 새로운 힘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가난'이라는 결핍은 내게 '끈기'라는 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되돌리기의 단축키 'Crtl+Z'는 인생에 없다. 흠잡힌 기억을 지울 수는 더더욱 없다. 시간이 지나 꾸역꾸역 잊으며 사는 게 지혜다. 후회야 늘 있지만 덧칠하면 금세 또 잊히니까.


외워 그리는 그림, 외워 사는 인생

결국 오늘 겪은 모든 일이 다 소중해진다.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는 뜻. 난감할 때 사용할 치트키 몇 개는 갖고 살아야 한다는 뜻. 그래서 인생이라는 그림을 재미있게 잘 완성하지는 뜻.


오늘 같은 날씨는 '흐린 날'이 아니라 '구름 낀 날'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맑은 날'은 '널 보는 날'이라고 하면 꽤 로맨틱하겠지?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

햇빛이 밝은 날을 그리려면 그림자를 진하게 그린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드리워져 꽤 느낌 있는 카페를 그리고 싶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머릿속에 그림자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생각하는 거다. '밝음'을 그려야 할 때 '어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힘들고 지쳐있다면 이건 어둠을 칠하고 있는 중이며 아주 밝은 내가 동시에 그려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니까 오히려 설렌다.


그림은 시간으로 그린다

물의 마름 정도는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날의 온도나 습도, 날씨가 나에게만 특별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문제는 타이밍이 어긋나서 일어나는 경우가 참 많다.'기다림'은 인생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필수 자세'라고 생각했다.


물은 사라지더라도 추억은 스며든다

물은 사라졌지만 색은 스며들어 흔적을 남긴다. 지나온 시간이 만든 무늬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휘청거렸던 삶의 궤적마저 물과 색이 만든 이 그림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제 생각한다. 그땐 말라 없어지는 것조차 힘에 겨웠고 아쉬웠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게 그림이었다.

추억은 스며들어 이렇게 아름답다.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

실력을 떠나 그림 그리기 제일 좋을 때는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을 때다. 켜켜이 쌓아온 세월만큼 눈으로나 마음으로 많은 것을 봐왔으니까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것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늦지 않았다.

어느 날 불쑥 내가 아버지의 나이를 살아간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그때의 아버지는 이런 마음으로 그랬었구나. 나는 비로소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하곤 한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아버지의 시간으로 천천히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아들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감상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의 제목이 솔깃했다. 늘 스케치가 어렵다며 눈으로만 그렸는데 어련히 그려지는 것은 없다는 말로 나를 일깨웠다. 지금 다시 시작이 가능하다고 용기를 주었다.


아버지의 그림을 보니 또한 우리 아버지가 생각난다. 비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위험으로부터 피할 곳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었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을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너무 늦게 알게 된 셈이다. 홀로 싸워 내느라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사셨을 아버지의 시간이 실체가 없는 그림자가 되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엄하고 무서움으로 가려야 했던 아버지를 나도 늙어서야 이해한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 아버지의 아픔을 얼마나 더 알게 될까 생각해서이다.

커피를 많이 좋아하셨던 아버지,

이른 아침 테라스에서 찻잔을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꿈이라도 꾸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잠이 많은 딸년은 꿈도 꾸지 않고 단잠을 잘도 잤다.

나는 지금부터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그림을 시작할 생각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고 겪은 일이 꽤 많았고. 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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