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위해 지불해야 할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by 옥희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2025.


클레러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5년간 활동하면서 단 5권만의 책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0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 를 출간해 영국제도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힐 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뉴욕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정치소설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부커상과 래스본즈 폴리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최근작 『너무 늦은 시간에』는 《뉴요커》에 게재되었고 영국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2년 아일랜드 올해의 여성 문학상, 2023년 올해의 작가상, 2024년 지크프리트렌츠상과 셰이머스 히니 문학상을 수상한 키건의 작품들은 국제적인 호평을 받으며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동명의 영화로 제작했다.


홍한별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클라라와 태양』 『밀크맨』 『신경 좀 꺼줄래』 『도시를 걷는 여자들』 『깨어있는 숲속의 공주』 『달빛마신 소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이 있다. 『밀크맨』으로 제 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 등이 있다.


내용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윌슨 부인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윌슨 부인은 개신 교도였다. 윌슨 부인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그 집에서 계속 지내며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펄롱이 자라자 자식이 없는 윌슨 부인이 펄롱을 돌보며 잔심부름도 시키고 글도 가르쳐 주었다. 일요일이 되면 네드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윌슨 부인은 교회로, 네드는 엄마와 아이를 태우고 성당으로 갔다. 학교에서 펄롱은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지만 큰집에서 자란 덕에 애들이 조금 봐주기도 했다. 펄롱이 열두 살 때 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죽고 말았는데 펄롱은 끝내 아버지가 누군지 듣지 못했다. 몇 해 뒤에 펄롱이 출생증명서를 떼러 등기소에 갔는데 아버지 이름을 적는 난에는 '미상'이라고 적혀있었다.

펄롱은 학교를 졸업하고 석탄 야적장에서 일했다. 펄롱은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웠으며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이 시내에서 살고 있다. 가끔 펄롱은 딸들이 성당에서 무릎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자기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기쁨을 느끼곤 했다. 1985년이었고 젊은이들이 런던, 보스턴, 뉴욕 등으로 이민을 떠나가고 실업수당을 받는 줄이 길어지는 혹독한 시기였다.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펄롱은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가게 된다. 수녀원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으며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수녀원은 직업학교를 운영한다고도 했고 세탁소를 운영했다. 세탁소는 타락한 여자들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세탁물의 얼룩을 씻어내며 속죄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펄롱은 성당에 석탄을 배달 갔다가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이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바닥에 엎드려 걸레로 광택제 통을 놓고 죽어라 바닥을 닦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머리를 엉망으로 깎인 여자애가 도와달라고 펄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집에 딸 다섯과 아내가 있다고 대답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 아일린에게 펄롱이 본 것을 들려준다. 펄롱의 얘기를 들은 아일린은 그런 일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설교처럼 길게 듣는다. 다시 성당에 석탄을 배달하려고 찾아간 펄롱은 성당의 석탄 창고에서 하룻밤 이상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추위에 걸친 옷도 없이 배설물과 함께 쪼그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펄롱은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맞닥뜨릴 두려움을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걸어간다.


p119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펄롱은 윌슨 부인이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통해 무얼 알았을지 생각했다. 펄롱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지금까지 이와 견줄 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으며 또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펄롱은 이 아이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펄롱이 겪어야 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 나가리라 기대했고 그렇게 믿었다.


감상


소설 속 배경으로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에서 자원하면서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했던 시설이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 여성, 고아, 학대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수용하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가 이루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은 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와 착취를 외면한다.

막달레나 세탁소의 실상이 20세기 말까지 존재했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종교와 신앙을 빙자해 이뤄지는 비 인간적 횡포와 폭력, 착취 등이 높은 담장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녀들의 권력 앞에 누구라도 나설 용기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당시의 수녀원처럼 거대하지도 않은 권력과 힘 앞에서 무력하게 외면하며 부당함에 동조했던 일이 없었던가 생각했다. 용기란 크든 작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할 것이 두렵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사소한 것들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움츠러들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펄롱을 통해 우리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사소한 것들을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일상에 사소한 것들이 모여 흐뭇해하고 행복해한다.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고개 돌려 지나버리는 일이 많다.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외면하지 않으면서 소소한 일상의 작은 것들을 같이 누리는 용기를 갖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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