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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열심이야?

영화 <비밀의 언덕>

by 싱긋


영화를 보는 동안 하나의 질문이 내내 떠올랐다. "명은이는 왜 저렇게 모든 일에 열심일까?" 선물을 고르고 편지 한 통을 쓰는 것도, 반장 활동에 가짜 가족을 만들어 거짓말을 증명하는 일까지도 명은이는 불도저처럼 지칠 줄 모른다.



내가 찾은 명은이의 힘의 원천은 이것이다. "명은이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강하다."




1인당 명품 소비액, 세계 1위 한국.

멋들어진 일상을 끊임없이 sns로 공유하고 '좋아요'에 집착하는 사람들. 훌륭한 부모로 평가받기 위해 자녀의 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 부모들. 어쩌면 우리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내 인생의 최우선에 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인정욕구라는 안경을 쓰니 등장인물들이 새롭게 보인다. 선생님 애란은 훌륭한 교사로 인정받기 위해 명은이의 아이디어를 자기의 공으로 가로챈다. 또, 가족의 비밀을 소재로 글을 써서 받은 대상을 명은이가 스스로 거부하자, 학교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명은을 설득하기도 한다.



명은이의 아빠는 능력 있는 가장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체념한 듯 나태함으로 현실을 회피한다.




반면, 명은이의 엄마는 여자로서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를 뒤에 둔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급스러운 집에서 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일하기 편한 옷차림을 창피해하지 않고 부단히 살아간다. 억세고 이기적으로 보였던 명은의 엄마가 오히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뒤바껴 보이는 순간이었다.




사회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가 아쉬웠던 탓일까? 명은이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인 것 같다. 이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 평화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을 하러 명은이가 단상에 올라갔을 때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명은이는 혼자서만 상장을 남들 눈에 맞춰 바깥쪽으로 돌려 안고 있다.




그런 명은이는 인정욕구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며 성장한다. 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가족들의 비밀을 소재로 글을 쓰고 대상을 받지만, 글이 공개됐을 때 가족들이 상처받는 것을 막으려 자신의 왕관을 스스로 내려놓는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성장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내게 없는 무엇을 억지로 더하면서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 안에 어두운 것들을 덜어가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가진 것을 버리면 퇴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되려 더 껑충껑충 전진한 셈이 되는 아이러니. 편견, 아집, 집착과 같이 나를 옭아매는 차가운 사슬을 푸는 시도 속에서, 이미 내 안에 있던 더없이 소중한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 진짜 성장이라는 것을 명은이를 통해 배운다.




영화 후반부에서 명은이는 글쓰기 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자랑하러 부모님에게 달려간다. 나는 상장을 유심히 살폈다. 전처럼 상장을 바깥쪽으로 보이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보게 반대 방향으로 돌렸을까?



감독님은 예리했다. 상장? 그런 것쯤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상장은 앞뒷면을 오락가락하며 구깃해진 채로 명은이와 달린다.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자기존중으로 나아가는 명은이를 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인정욕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바깥이 아닌 안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내 인생의 주체로서, 내 삶의 주인공이자 감독으로서 인정욕구를 자기존중의 힘으로 쓴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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