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기어코 세상을 구경하고
사람을 겪어내며
최대치로 느낀
'살아 있다는 감각'
이 한 줄에 책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삶을 단단히 붙잡고자 기어이 길을 나선 사람의, 가장 뜨겁고 솔직한 기록.
좋은 여행이란 뭘까.
SNS에 올릴 만한 풍경? 맛집 리스트?
삶의 전환점이 되는 어떤 깨달음?
꼭 어떤 의미를 넘겨야만 좋은 여행일까?
우리는 여행에서조차 특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이든 배움이든 뭔가 건져 올려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시간과 에너지, 돈까지 들였으니
여행이라는 고생 끝엔
응당 낙이 와야 한다.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다.
그런데 조승리 작가의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그 익숙한 틀을 당연하다는 듯 깨뜨린다.
작가님은 십 대 시절 발병한 질환으로 빛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다. 20년간 안마사로 살아내는 동시에 글을 쓴다.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받고, 2024년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첫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이병률 시인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 이름들을 보고 마음이 살짝 들뜬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작가님의 차기작 소식이 반가워하며 책을 펼쳤다.
수평선을 흔들듯 바다에 풍덩 빠지는 익살스러운 해가 표지를 장식했다. 물끄러미 그 해를 바라보다, 문득 작가님은 자신이 직접 쓴 책의 표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작가님은 글을 쓰셨을지 상상한다.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은 음성으로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와 일반 키보드로 글을 쓴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듣고 두드리며 모든 걸 쏟아냈을 작가님의 작품이 내 앞에 당도했다.
이 책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그린 불꽃 같은 에세이였다.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여행기로 시작한다. 말레이시아, 일본, 백두산, 필리핀, 마카오, 베트남... 좋은 여행에 대한 질문이 먼저 떠오른 이유도 그래서다. 예상한 대로 평범한 여행기는 아니다.
저자는 엉망진창이었던 여정까지도, 불편했던 기분과 실패로 가득 찬 경험들마저도, 굳이 미화하지 않는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끝난다고?
이쯤에서 뭔가 감동적인 반전이나
근사한 성찰이 나와야 하지 않나?
......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촉감, 냄새, 소리, 감정 같은 것들로 쌓인
기억의 기록은 엉망이라면 엉망인 채로 남는다.
엉망이라는 건 어떤 기준에서는 불편함이겠지만, 또 다른 기준에서는 감각적으로 가장 풍부한 순간일 수 있다.
그렇게 풍성한 감각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은 솔직해서 정이 갔다.
그렇게 이야기는 무심히 흐르다
난데없는 곳에서 독특한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서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매력적이야!
"예상대로 여행은 엉망이 됐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앙헬레스는 치안 문제 때문에 데려갈 수 없다며 가이드에게 거절당했다. 해안가인 수비크에서 노을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는데, 가이드가 곧 차 막힐 시간이라고 다그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툴툴대는 가이드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쨌든 며칠간은 그의 안내를 받아야 했기에 팁을 챙겨주었다. 다음 날 그는 약속 시간을 두 시간 넘겨 출근했다. 전날 내가 준 돈으로 밤새 술을 마셨다 했다."
-70면
저자는 삶이나 여행을 포장하지 않는다. 삶이란 게 꼭 어떤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버거웠으면 버거운 대로, 망했으면 망한 대로 둔다.
어쩌면 그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려고 애쓰는 순간, 진짜 경험은 오히려 묻혀버릴 수 있다. 불편한 기억도 그대로 놓아둘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어떤 사람에게는 더 깊은 통찰이 될 수 있다.
책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타인에게 읽히기 위한 매체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이해받기 위해 문장은 끝없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작가는 어떻게 보일까에 묶인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의미를 만들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압정처럼 집필이라는 길에 뿌려진다.
저자는 그 가시들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부족하고 보이기 싫은 모습조차도 그대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선언 같다.
그것은 글쓰기를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도구, 자기 회복이나 존재 확인의 수단으로 삼은 자의 당당함이다.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나는 그 경험을 구겨진 채로 두지 못했을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추출하고 싶었다. 내가 부족해서 놓쳤을 뿐, 그 모든 시간에 반짝반짝 귀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메시지를 찾아내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내 삶이 좋은 이야기로 남길 바랐다.
그리곤 솔직하게 실패를 드러내는 척하면서 어떻게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결국 그럴듯한 이야기로 엮었겠지.
그래서 좋았다.
멋진 글을 쓰기보다 정직하게 자기 존재를 남기는 자의 멋과 자유가 좋았다.
그 지점에서 글은 생명을 얻고 불꽃처럼 타오른다.
여행이든 일상이든, 꼭 교훈이 따라붙지는 못한다. 때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방향도 없고, 그저 힘들고 후회스러운 날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당연하다. 매 순간 의미로 충만하지 않아도 인생은 그대로 괜찮다.
결국 기록의 가치는 '완벽한 해석'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때 무엇을 느꼈고 어떻게 견뎠는가, 그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던 순간도 웃음이 되거나, 뜻밖의 깨달음이 되어 돌아온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글은 그것들이 돌아와 닿을 수 있는 투명한 연결고리로 남아줄 것이다.
쓰면서
무언가를
꼭 찾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조승리 작가님처럼 쓸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작가님의 통쾌한 용기를 닮고 싶다. 타인의 공감도 좋지만 내 방식대로의 결도 지키고 싶다. 글이 꼭 의미를 끌어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부제처럼 이 책은 내게 낯선 글쓰기로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의미를 쥐어짜던 내 글쓰기에 바람 한 줄기처럼 불어왔다.
숨막히던 문장들 사이, 작은 숨구멍 하나가 열렸다.
당신도 검은 불꽃이라는 과거의 어둠을 연료 삼아,
빨간 폭스바겐을 타고 미래로 나아가는
조승리 작가님의 세계를 만나보길 추천한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낯설게 다가올지
기대하시라.
당신의 ‘검은 불꽃’은 무엇인가요?
당신도 조용히,
그러나 꺼지지 않고
이전부터 계속
타오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