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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Oct 27. 2024

"새빨간 립스틱 바르고 면접갑니다."

사소한 게 사소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kjsvna;oirgalfkkjdsfjdksd?"

뭔말이야? 




망했다.








정말 오랜만의 면접. 

2시간 넘게 단장하고, 3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맞이한 첫 질문. 



역시 모두의 꿈. 다들 '중동 3사. 중동3사' 하는 이유가 있었다. 중동항공사 면접은 빡셌다. 대체 어떤지나 보자. 준비 하나도 없이 분위기만 느끼러 갔다. 나는 되겠다 안되겠다 판단이 좀 빠른 편이다. 


"내 능력 밖이다."



사실 면접도 보기 전에 자신이 없었다. 준비됐을 때 안됐을 때의 마음가짐이 이렇게나 다르다. 그렇게 처음 맞이한 나의 면접관. 무지막지하게 세보이는, 마치 센언니같아 보이는 그녀의 기에 제대로 눌렸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소의 "미"도 못한 채. 



이런 분위기, 센언니같은 면접관. 그리고 지원자들이 얼마나 왔는지 마치 시장통같이 시끄러운 분위기. 처음 들어보는 악센트. 미드를 보는 것 같은 속도감. 항공사마다 면접 분위기가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뭐 딱히 아쉽다거나 좌절감이라던가 타격감은 1도 없었다.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이건 준비해도 안되겠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동 3사"

외국항공사 승무원 지망생이라면 모두의 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위말하는 간지. 생각만 해도 간지난다. 뽕에 차올라 힘든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타이틀의 힘이었나. 포기할래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치만 내가 준비됐을 때, 내가 원할 때 딱 맞춰 나오는 채용은 없다.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고, 내가 어떤 항공사에 합격할 지 모르는 일이라 모든 항공사에 도전했어야 했다.


어느 항공사든지 가리지않고 지원했다. 지원할 때마다 난 생각했다. 언젠가 된다. 포기만 하지말자. 나와 인연이 닿는 곳이 있다. 그리고 매순간 외쳤다. "You never know." 




그렇게 돌고 돌아 또다시 큰 장벽처럼 느껴졌던 중동 3사 면접. 결과부터 말하면, 

'탈락'

그때의 센언니 악몽이 되살아나면 어쩌나 했지만 미소에 "미ㅅ" 까지는 보여줬고, 그래도 이번엔 알아들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적응도 좀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어렵게 느껴지긴 했다. 워낙 탈락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회복탄력성도 좋았다. 하지만 너무 막연했다. 지원자 자체가 너무 많았고 쟁쟁했다. 호텔의 대강당을 가득 채울만큼의 수많은 지원자들.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미소에 비슷한 복장에.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수많은 지원들 사이에서 빛이 날까. 역시 쉽지 않다. 또 해보자. 막연했지만 이 생각뿐이었다. 




이 생활이 거의 삶의 일부가 된 나는 이번에 마음가짐을 좀 달리해서 준비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미소 하나만큼은 탑티어를 찍어보자 싶었다. 미소연습은 오랫동안 해와서 몸에 베여있었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기록까지하며 연습에 들어갔다. 영어공부는 기본이었다. 그리고 100명의 합격자들을 분석했다. 하나씩 다 기록했다. 사소한 것도 다 기록했다. 간절한 만큼 사소한 게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일 수도 있었다.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추려졌다. 그 중에 하나. 내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게 있었다. 






"빨간 매니큐어...?"

"빨간 립스틱..?"


거의 국내항공사만 준비했던 나는 빨간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발라 본 역사가 없다. 평소에도 이런 쪽 컬러는 선호하지 않았고, 나와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사실 빨간 립스틱과 매니큐어의 역할이 크지는 않다. 모든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큰 상징 같은 것이었다. 마음을 달리 먹은 새로운 내 모습 말이다. 





유튜브 검색창에 검색한다. 

"스모키 메이크업" 


유튜브 영상을 보며 매일을 연습했다. 여기 면접관들은 유독 한국인 지원자들에게 화장을 좀 진하게 할 것을 당부했다. 한듯 안한듯, 꾸민듯 안꾸민듯, 꾸안꾸 스타일하면 한국인! 아닌가? 딱 나같은 스타일의 한국인. 

진한 헤어, 메이크업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나마 결과물이 평균이상인 샵의 도움을 받아 면접장에 갔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내 몫이었다. 메이크업 제품도 싹 다 바꾸고 새로 장만했다. 내 마음가짐까지도. 






그렇게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또 지원했다. 몇몇 친구들은 서류합격 메일을 받았다는데 나는 아직이다. 

"나 이제는 서류부터 안되나...?" 



혹시나 스팸메일함을 본다. 








"왔다."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일상이니까. 그리고 완벽한 준비는 없다. 이번에도 늘 그랬듯. 그래 또 한번 가보자. 지금의 내 모습으로.

"You never know."


 


5시간 반을 달려갔다. 형형색색 개성을 가진 지원자들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흑발 머리에 신비로운 눈을 가진 외국인 면접관이 마이크를 들고 인사한다. 


심장이 쿵쿵.


"후... 떨린다."


"아그래 뭐. 여태 떨어졌잖아. 어차피 또 떨어질거 내 마음대로 해보자."




면접 시작.



면접보는 곳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 4개의 테이블이 일렬로 있다. 그 뒤에는 커다란 조명이 있다. 지원자들의 피부 상태를 보기 위함이다. 이제 면접관들이 자리로 가 앉아서 준비한다. 지원자들은 이력서를 들고 밖에서 일렬로 길게 줄지어선다. 이름을 호명하는 것도 정해진 순서도 없다. 줄지어 선대로 들어간다. 면접관도 랜덤이다. 면접관 앞에 지원자가 없으면 그 면접관에게로 간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합불이 결정난다. 합격하면 종이 한장을 준다. 종이엔 다음 면접의 날짜와 시간대가 적혀있다. 떨어지면 빈손으로 퇴장. 



센언니의 후유증으로 센언니처럼 보이는 저 분에게만 안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본능이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그냥 저 사람한테 간다. 아니. 어떤 사람한테 가도 상관없다."



줄이 길어 2시간이 넘게 서있었다. 기가 점점 빨리는 느낌이었다. 텐션도 점점 떨어져갔다. 몇몇 지원자들은 영어로 입을 풀고 있었다. 나는 텐션을 높이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신나는 노래를 들었다. 몸까지 들썩였다. 즐기고 있는 모습을 가장한 떨림과 처절함이었다. 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내내 쓰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마스크 속 내 모습은 입이 째져라 웃고 있었다. 그동안 연습해온게 있어서 경련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내내 웃고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다른건 몰라도 여기서 스마일 1등 먹자. 

아무리 떨려도 내 미소가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그동안 연습했던 미소가 빛을 발해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이제 곧 내 차례. 

내 앞에 아무도 없다. 뒤로는 길게 줄지어있다. 면접관 앞에 지원자들이 모두 면접을 보고 있다. 다들 간절하다.




"나는 어떤 면접관한테 갈까?"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럼에도 미소 유지. 





그때 금발 머리 면접관이 손짓한다.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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