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퀸 Oct 27. 2024

주사위는 던져졌다.

"진인사대천명"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맡긴다.

최종면접에서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주르륵






"forty"

정확히 내 번호였다.


와... 이렇게 된다고? 중동항공사의 높디 높던 장벽을 뚫었다. 나는 면접 보기 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봤던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지원자들을 보고 부러워했었다. 내가 그 파이널리스트가 됐다.


내가. 내가. 내가 말이다.

탈락만 하던 내가.

내가?



느낌이 너무 좋아서 기대는 했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도 바라던 순간의 과정들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또 마지막 면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 12시가 다되가는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1명의 친구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아빠와 동생에게는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실망감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 기뻤다. 얼떨떨했다. 하지만 또 너무 두려웠다. 이걸 한번 더 해야하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정말 이번엔 합격하고 싶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기회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잡고 싶었다.



대기장소엔 몇 안되는 소수의 파이널리스트들만이 남았다. 내가 그 사이에 있었다.

"여기서 정말 승무원이 나오는 거구나.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또 몇명만이 <세계 1위 항공사 승무원>이 되서 세계를 누비겠구나."



파이널 면접을 앞두고 작성해야 할 모든 정보들을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치르게 될 면접의 진행사항을 들었다. 밤 12시가 넘어갔다. 너덜너덜 기진맥진이었다. 집으로 가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도 너무 어지러웠다. 집에 도착하니 아침 7시였다. 체력도 달리고 수면이 부족해서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이 마지막 면접이었다. 정말 마지막. 여기서 합격하면 나는 그토록 바라던 승무원이 되는 거였다.



합격해야겠다는 압박감, 비우고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까지. 몸이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1차면접부터 2차면접 그리고 3차면접까지 장거리를 연달아 달린 나는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삼촌은 어디 아프냐고까지 물어보셨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삼촌. 저 정말 죽을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요. 근데 저 이번에 정말 합격하고 싶어요..."



나는 정말 합격하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희한하게 간절할수록 움켜쥘수록 달아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제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찌질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냥 <합격>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이 생각뿐이었다. 최종면접인만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거 다 보여주고 나오자. 후회만 하지말자. 이 생각 하나로 늦은 새벽까지 뜬 눈으로 준비했다.



면접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합격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집중했다. 준비한 답변들을 미친듯이 읽고 또 읽었다. 누군가 툭- 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쌓아둔 내 감정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모든 걸 컨트롤하기에 내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10년을 고생했다. 이 긴 세월을 몽땅 날리게 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집중했다. 미친듯이 웃었다. 미소만이 살길이었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썰렁했다. 소수의 지원자들만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하필 이맘때쯤 강아지에게 물려 다리에 흉터가 생겼었다. 흉터, 문신, 피부상태를 아주 많이 보는 항공사였기 때문에 나는 정말 예민해있었다.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흉터를 가리기 바빴다. 하필 왜 이때 이런 흉터가 생겼을까? 내가 또 안 될 운명인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사실 면접 직전, 면접장에서 내 마음상태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도 자세히 기억이 안난다. 완전히 오롯이 몰두했다는 것 밖에.



드디어 내 차례. 여기서 운명이 갈린다.

"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내가 최고로 예쁘다 할 만큼 승무원으로써 보이는 외적인 모습, 대화할 때 나올 내 마인드와 태도, 그 과정에서 풍겨져 나올 나만의 아우라. 그냥 내가 그동안 승무원이 되려고 차곡차곡 쌓아 온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이상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나는 칼을 갈았다.

파이널 면접.

어쩌면 인생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에라이 모르겠다."





.

.

.





면접장 문을 열고 나왔다.

결과는 언제 나올지 모른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메일로 나중에 확인이 가능하다. 피 말리는 시간이 예상된다. 다른 지원자들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면접을 봤냐고 뭐했냐고 물었다. 나는 몰랐다. 그 상황에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멀리 보이는 의자로 혼자 터널터널 가서 털썩 앉았다. 완전히 긴장이 다 풀려버렸다. 눈물이 끝도 없이 났다. 주륵주륵.



"진아. 진아. 왜왜? 왜울어..."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떨어져도 여한이 없을만큼 너무 시원했다. 이것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없으리. 진심은 통하리. 결과는 몰랐지만 알 것 같았다. 확신이 들었다.



내가 한 노력은 확신의 노력이였다.







"나...

합격할 것 같아. 합격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