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Congratulation!
이메일이 왔다.
드디어 합격.
나는.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됐다.
그토록 꿈꾸던 승무원.
"아, 이제 됐다. 승무원 일 안 해도 좋다. 그냥 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해냈다. 내가."
내 기분은 정말 이랬다. 이 합격 문구를 보기 위한 지난 시간이 눈앞에 지나간다. 10년 묵은 한이 한방에 시원하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주위에서 묻는다. 기분이 어땠냐고? 엉엉 울지 않았냐고?
난 합격 메일을 받고도 무덤덤했다. 왜냐하면 예상했기 때문이다. 난 사활을 걸었다. 지금까지 본 면접 중에 이것보다 잘 볼 수 없었다 싶었을 만큼 내 온 에너지와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최종 면접을 치르고 나와 주저앉았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결과는 아직이었지만, 난 생각했다. 합격이다.
<확신의 눈물>이었다.
설사 합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 정말 이제 그만해도 될 만큼 여기서 떨어져도 여한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그 뒤로 합격 메일을 받았다. 내 예상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태연했다. 왜냐면 언젠가 나는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언젠가가 지금 왔구나! 라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아빠와 동생에게 말할 수 있었다. 정말 뜨겁게... 축하해주셨다.
동생은 전화기 너머로 잠시 말이 없었다.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 없는 동생이었다. 그냥 말이 없어도 동생의 진심이 느껴졌다.
"누나... 그렇게 되고 싶어 하더니 드디어 됐네."
이때 내 감정이 터져버렸다. 동생의 흔들리는 음성을 듣고 뻥- 하고 터져버렸다.
그동안 동생에게 빚진 마음이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내가 가서 멋지게 해낼 일만 남았다. 뒷일은 모르겠고 그렇게 합격의 순간을 즐겼다. 정말 이때가 제일 행복했다. 우리 회사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팔로우하고, 회사에서 올린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울었다.
"딸 왜 울어? 왜?"
"엄마... 우리회사 너무 멋있어."
엄마도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래. 이런 날이 왔다.
합격을 만끽했다.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들, 본인들은 티 안난다고 생각했겠지만 배 아파하는 사람들까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눈치주던 사람들까지. 두고보라고 칼을 갈았던 나는 통쾌했다. 인맥이 쫙 갈리는 순간이었다.
하루하루 그 순간을 즐기면서도 마음 한켠에 또 다른 새로운 감정이 싹 텄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너무 막막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야 할 곳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동이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사막의 나라. 난 해외 경험이라곤 근처 몇 군데 여행을 간 게 다였고, 남들 다 간 흔한 워킹홀리데이 경험도 없었다. 순수국내파였던 나는 날고 기는 애들이 올 텐데 영어도 해외 생활도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1시간 반, 너무나 먼 거리, 사막이라 모래가 들어온다는 숙소, 물이 더러워 필터는 필수라는 그 곳, 40도가 넘는 온도, 외출할 때마다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 세계 수많은 항공사 중에 규정이 제일 엄격하다는 그 곳, 트레이닝 또한 제일 힘들다는 그 곳, 돼지고기도 술도 반입금지인 그 곳, 몇시간마다 들려오는 기도 소리, 노출 심한 옷 금지.
"후~ 내 인생 평탄하지 않네."
나는 정말 자유롭게 살아왔다. 카페와 꽃집을 운영하며 자아실현을 해왔었고, 모든 것은 내 자유였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가 중동으로 갈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나는 왜 이래? 뭐 하나 쉽게 쉽게 가는 게 없네. 왜 하필 사막이야. 나 한국으로 올 수는 있는 걸까? 엄마, 아빠가 편찮으시거나 무슨 일 생기면 그땐 어떡하지, 차로 달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 가 있을 때 비행하면서 연락 안 될 때, 큰일 생기면 어떡하지?"
정말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몰려왔다. 앞만 보고 달렸기에 이런 감정들이 너무 낯설었다. 온갖 두려움과 걱정, 생각들이 나를 휘감았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매일 매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떠는 날을 보냈다. 나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가야만 하는 것을. 그리고 나는 꼭 가야한다는 것을. 나는 분명 갈 것 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말 모든 것이 두려웠다. 상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런 곳을 가야 한다니.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는 매일 밤새 잠을 못자는 지경까지 갔다. 눈물이 계속 났다. 가면 언제 오나. 기약이 없었다. 내가 좀 일찍 됐어야했는데... 점점 나이 들어가실 부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지? 새벽 3시에 깨서 몰래 부모님 방을 열고 주무시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마음이 짠했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부딪히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루하루 초조하고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계속 났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뛰어보고 산책도 했다. 뭘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정도 였냐면,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부럽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한국에 계속 사실거니까. 한국의 모든 것과 이별하는게 쉽지 않았다. 그새 살도 빠지고 기력이 쏙- 빠져서 나도 내 자신이 걱정됐다. 침이라도 맞자싶어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님이 내 손목에 손을 대고 진맥을 짚으셨다.
"지금 침을 놔드릴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 나을게 아니예요. 이러다가 공황장애 올 수 있어요. 그냥 바로 눈 앞에 것만 생각하세요. 의사들도 똑같아요. 처음 수술 앞두고 잠이 안와요. 처음이니까요. 근데 점점 익숙해지면 수술 전에 잠도 잘 자고 이제는 일상처럼 수술해요 다들.
밥 먹을 때 밥 먹는 것만 생각하고, 공부할 때 공부하는 것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면 좀 더러울 수 있는데,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볼일 보는 것만 생각하세요.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준비하면서 당장 앞에 것만 생각하도록 노력해보세요."
나는 살기위해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는 이것만이 내가 살 길이었다.
"선생님, 저 가기 싫어졌어요. 너무 무서워요."
"현진아, 나 너 '승무원 김현진'으로 다시 저장했어. 유니폼 입은 네 모습이 너무 기대되는데, 그 모습에 사로잡혀서 갈 수는 없는 거니?"
"엄마, 나 너무 무서워."
"현진아, 10년 준비했잖아.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데, 네 꿈에 배신하는 일이야."
"아빠, 나 너무 무서워요."
"하하~ 우리 딸내미. 시원하게 갔다 와 봐. 아닌 것 같으면 바로 와. 언제든지."
"친구야, 나 너무 무서워."
"왜 안 좋은 것만 생각해?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어. 좋은 것도 분명히 있을 거야."
처음 알게 됐다.
항상 도전적이고 씩씩할 줄 알았던 내가 이런 모습이 있다니.
겁쟁이.
나는 너무나 겁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