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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Oct 27. 2024

산 넘어 산, 지옥같은 트레이닝.

죽을 것 같은데 죽지는 않는다.


"네가 아무리 날 꾸짖고 뭐라고 해도 난 포기 안할거야. 끝까지 할거야."







합격은 했고 사막에도 왔다. 그런데 아직 승무원은 아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나는 아직 블랙 정장을 입고 트레이닝을 받아야하는 삐약이다.



말로만 듣던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학교같았다. 수업시간이 정해져있고, 휴식시간 잠깐에, 밥 먹는 시간도 길지는 않았다. 앉아서 수업 들은 지가 언제인가. 게다가 전부 다 영어에 영어다. 앞이 캄캄했다. 제일 두려웠던 지옥 시작.



트레이닝 첫날. 우리 배치에는 한국 동기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예쁘고 실력좋은 친구들이였다. 외국인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해외경험이 없는 나는 이 분위기가 너무 낯설었다. 다들 어느새 같이 다니는 짝꿍들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만 없었다. 외로웠다. 첫날 각자 소개하면서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거기엔 가족 정보를 적는 칸도 있었다. 엄마, 아빠의 이름을 적으니 울컥했다. 당장 집으로 가고 싶었다.



몇일 뒤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전부 다 영어에 처음보는 생소한 용어들이 가득했다. 책으로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실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달달 외우기 급급했다. 나중에 직접 비행하고 부딪히며 '아~ 이게 이거였구나.' 했던 것들이 많았다.


전직 승무원이었던 태국 친구가 말하길, 본인은 경력이 있어 이해가 빠르지만 아무 경력 없이 이렇게 공부하는 건 이해하기엔 무리라고 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8시간 수업을 꼬박 듣고 그날 배운 모든 것을 외워야 했다. 당연히 외워야하는 건 맞지만 하루하루 외워야만 하는 강제성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음날 인스트럭터(강사)가 한명씩 차례대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답을 못한다?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고 엄청난 쪽팔림을 감수해야한다. 그냥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해야한다. 그리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집으로 간다. 한국 집으로.



매일이 파리 목숨 같았다. 하루에 2시간씩 자며 공부했다. 지옥같았다. 매일을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부했다. 마음 놓고 우는 시간 마저 없었다. 그날 배운 모든 것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벅찼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회사로 가기 전엔 너무 긴장을 해서 아팠던 다리가 더 아파오며, 다리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누워서 한 시간동안 혼자 다리를 주무르는 날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하혈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람이 스트레스가 최대치까지 올라가면 이렇게 되는구나. 몸소 경험했다.



처음 트레이닝 교재를 받자마자 영어로 빽빽한 두꺼운 책의 양에 압도당했다. 심리적 거부감이 확 들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고 낯설다 생각하며 말로 뱉으며 외웠다. 커다란 거울 앞에 혼자 서서 외운걸 확인하며 달달달 나올 때까지 외우고 공부했다. 계속해서 수면이 부족하니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이런 컨디션에 새로운 것들을 하루종일 머리에 넣고 외우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너무너무 괴로웠다. 눈물, 콧물 닦은 휴지도 함께 쌓아가며 공부했다.


수업 중에는 모든 것이 빨리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필기하랴 따라가랴 놓치는 부분도 많았다. 공부해야 하는 주제도 다양했다. 기내에서 카트끌며 우아하게 서비스하는 목습만 상상했다면 저리가라다.


안전, 서비스, 비행기기종, 응급처치, 이멀전시상황 등등 우리 회사는 기종이 제일 많아서 외워야 할 게 더 많았다. 나는 퍼스트에이드 시간이 힘들었다. 의학용어가 줄줄이 나와 생소했다. 그때마다 친해진 동기들끼리 모여 같이 공부했다. 거의 내 목숨을 살려 준 소중한 사람들이고, 트레이닝 기간 내내 힘을 준 사람들이다. 사실 나중엔 비행하며 퍼스트에이드 부분이 제일 자신있는 주제가 됐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한 날이면 그때마다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최악이었다. 옆에서 한국 말을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멘붕 상태였다. 무대 섰을 때도 그 많던 이태리어 가사를 줄줄 외워 실수 한번 한 적 없던 나였는데 이 곳은 다른 필드였다. 이것도 내 능력이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못나보였다. 그치만 방법이 없었다. 온몸으로 쪽팔림과 꾸지람을 멍하게 받아냈다. 억울했다. 나 매일 2시간 자면서 공부하는데 왜 이 모양일까. 온갖 감정이 들면서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이 악물고 참고 또 참았다. 나약한 모습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숙소로 가서 혼자 미친듯이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이것도 다 내 스토리야. 나에게는 참 특별한 일들이 많네. 다 지나간다.



그렇게 트레이닝 기간의 내 기억은 온통 눈물이었다. 하루만 살자는 생각으로 당장 앞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했다. 슬프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강제가 따로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오래 준비했든 말든 난 모르겠다. 지금 현재 행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짐 다 싸들고 갈까도 생각했다. 뭐 어쩌겠는가. 해야지. 내가 이러려고 여기에 왔나. 힘들게 이룬 꿈인데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시 잡고 또 잡았다.


이때 정말 많이 성장했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닥치는 대로 하면 어떻게든 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너무 억울해서 악에 받치는 감정으로 편지를 써서 인스트럭터에게 줬다.

"나 해외경험도 처음이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릴 수 있어. 그래서 하루 2시간만 자면서 공부해. 시간이 좀 더 걸려. 네가 나를 혼내도 좋아. 나는 절대 포기 안해. 끝까지 할거야. 그리고 혹시 나중에 너와 비행을 하게 된다면 지금 모습과는 다른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즐기면서 일 할거야. 지켜봐줘. 고마워.“



그뒤부터 이 인스트럭터의 나를 대하는 눈빛과 태도가 달라졌다. 내 진심. 통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보였는지 격려해주고 도와주려고 했다.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애기보듯 아빠 미소 지으며 기특해하기까지 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졸업하는 날, 나는 이 인스트럭터에게 수료증을 건네받고 싶었는데 내 희망대로 그렇게 됐다. 서로 말을 할 순 없었지만 그때 눈빛이 오고갔다. 뭉클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생각했다. 내가 될 때까지 해서 여기 온 만큼, 여기서도 <될 때까지 하면 되는구나.> 내가 나에게 정직하면 꿀릴 게 없구나. 그리고 국적도 언어도 다른 우리가 만났지만 <진심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딜가든 이런 마인드 하나로 당당하게 살아내자. 내가 꿈꿔왔던 여정은 이제서야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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