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나 혼자다. 정신차리자."
출국장으로 나서는 순간 아빠의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건강해라."
눈물이 핑- 돌았다.
기약없는 헤어짐이었다.
걱정을 잔뜩 안고 중동으로 향했다. 그렇게도 되고 싶었던 승무원인데 설렘이라곤 없었다. 두려웠다. 회사에서 지정해 준 130kg 짐을 부쳤다. 밥솥, 전기장판, 한국 음식들, 옷들, 드라이기 등등 살림의 모든 것을 넣고 넣었다. 마치 그 짐이 내가 짊어진 무게같이 느껴졌다.
출국장으로 나서는 순간, 아빠의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건강해라."
묵직하지만 모든 것이 느껴졌던 아빠의 한마디였다. 그렇다. 나는 언제 올지 몰랐다. 기약이 없었다. 처음 하는 생이별이었다. 엄마, 아빠께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서 계셨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눈물이 난다. 기약 없는 이별은 그랬다.
나는 뒤돌아서 씩씩하게 걸었다. "이제 진짜 혼자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 울보에 겁쟁이는 울 것 같았는데 막상 부딪히니 울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을 체념했다. "트레이닝 받고 비행 딱 1번만 하고 오자." 최대한 나 스스로가 부담 느끼지 않게.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고 응원했다. 그땐 이 방법만이 내가 발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일하는 승무원이 눈에 먼저 보였다. 하... 내가 이제 저 일을 해야 하는구나. 정말 힘들어 보였다. 키가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던 승무원이었는데, 까치발을 하고 짐을 오버헤드 빈에 힘겹게 넣어 짐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저걸 한다고? 언제, 어느 세월에 트레이닝 받고 비행할까? 신기하기도 했고 또다시 두려웠다.
비행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이게 꿈을 이룬 기분인가?"
미리 다운받아 갔던 유태우 박사님의 영상을 보며 마음을 잡고 다 잡았다. 그렇게 11시간 반을 날아 히말라야산맥을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짐 찾고 꺼내고 카트에 싣고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큰 이사 박스만 7개, 캐리어 2개. 총 9개였다. 카트 2개에 짐을 힘겹게 쌓아올렸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카트 1개를 쪼르르 끌고, 나머지 카트 1개를 쪼르르 번갈아 끌었다. 끌면서 다 넘어뜨리기도 하고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한국 분들이 제법 있었고, 모두 짐이 만만치 않았기에 서로 도와가며 그렇게 짐을 나르고 날랐다. 드디어 입국장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왔다.
"헙..."
숨이 막혔다. 내가 처음 느껴보는 온도, 바람, 냄새였다. 큰 드라이기를 갑자기 한 번에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아... 이게 중동이구나. 나 어떻게 살지? 내가 생각했던 막막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첫 순간이었다.
회사에서 보낸 버스에 타서 다 같이 숙소로 이동했다. 나는 여행할 때마다 차로 이동하며 그 나라의 분위기를 보고 느끼는 걸 좋아했는데 확실히 여행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쌩쌩 달리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뭐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허허벌판이었다. 굉장히 건조해 보였다. 건물은 누런 상앗빛이었다. 모래바람이 불어 색이 다 변한 것 같았다. 낮은 건물만이 있었고 굉장히 딱딱하고 무미건조해 보였다. 간판은 온통 알 수 없는 아랍어로 꼬부랑꼬부랑 문자였다. 복잡한 내 마음처럼 구불구불 꼬불꼬불.
그렇게 50분 가까이 달리고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로비에 모두 모여 안내 사항을 듣고, 서류를 냈다. 방 열쇠를 받기까지 차례대로 기다렸다. 시끌시끌~ 태국, 인도, 케냐, 카자흐스탄 등 전 세계 각국에서 피부색도 언어도 모두 다른 친구들이 모였다. 와... 나 이제 시작이구나. 영어도 그동안 내가 들었던 영어와는 아주 달랐다. 나라마다 고유한 악센트가 있는데, 나는 이렇게 다양한 악센트를 처음 접해봤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니 대체 뭐라는 거야? 뭔 발음이 저래? 내 리스닝 어쩔 거야.
어벙벙하게 겁 먹은 아이처럼 멍하게 있었다. 하필 내 방 열쇠만 없어서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로비에 있었다. 모두 방에 올라갔고 나만 혼자 우두커니 남아있었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고 두려웠는데 내 열쇠만 또 없다. 누구 하나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왜 또 내 것만 없어? 너무너무 서러웠다.
알고 보니 내 태국 룸메이트가 내 열쇠를 들고 갔던 거였다. 내가 이 친구 때문에 혼자 남아 마지막까지 고생을 했다. 그렇게 태국, 키르기스스탄 친구와 룸메이트가 됐고, 나는 자랑스럽게 코리안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키르기스스탄 친구는 흰 피부에 키가 커서 모델처럼 보였다. 무언가 이 친구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쉽게 다가가기는 힘들겠다 싶었다. 태국 친구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컸고 붙임성이 좋아 보였다. 한가지 공통점은 우리 모두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맞아! 우리는 승무원이지! 다 뽑힌 이유가 있구만.' 모두 서로의 방을 둘러보며 네 방이 크니~ 내 방이 작니~ 하며 룸메이트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방을 둘러보는데, 또 내 방이 제일 작았다. 화장실도 밖에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친구 방은 축구해도 될 만큼 제일 큰 방 크기였다. 화장실도 안에 있었다. 태국 친구 방은 아담했지만, 화장실이 안에 있어 편해 보였다.
왜? 왜? 왜? 왜 또 나만? 내 방은 코딱지만 해서 수트케이스는 펼칠 수 있을까 싶었다. 빨래를 널면 건조대를 펼칠 수나 있을까? 나는 요가 매트 깔아놓고 스트레칭하는거 좋아하는데, 절대 할 수 없는 방 크기였다. 화장실은 또 왜 밖에 있어? 방 크기를 떠나서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게 제일 불편할 것 같았다. 하... 이거 너무 불공평해. 후~ 그 좁은 방에 높게 쌓인 내 짐을 보니 한숨이 더 나왔다. 이 좁은 방에 이걸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이며, 내가 여기 마음 붙이고 잘 살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 공간과의 첫 만남. 이 순간 내가 느낄 감정에 대한 걱정을 참 많이 했다. 왜냐면 먼저 합격해서 간 후기들에는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대부분이 이때가 제일 막막하고 힘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별반 다른게 없었다. 그 감정이었다. 너무 막막했다. 엄두가 안났다. 아무것도 없는 까끌까끌한 침대 매트리스에 털썩 누워버렸다.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