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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Nov 14. 2024

"유니폼은 입고 내려!"

승무원 때려치우고 한국에 갈거라 다짐했다.

"그만둘거야! 엉엉.. 엉엉..흐어엉어..."

누가 잡아가도 모를 인도의 호텔 방에서 혼자 서럽게 울었다.

정장만을 입고 달달 떨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인도의 캘리컷 턴비행(데스티네이션을 찍고 바로 돌아오는 비행)을 준비했다. 그런데 무언가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다. 미열인듯 아닌듯 감기기운이 살짝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내 컨디션을 잘 아니까. 한국에서 해왔듯 그렇게 약 한알을 먹고 비타민을 몇개씩 꼴딱꼴딱 물과 함께 삼켰다. 턴비행이라도 충전기와 태블릿을 늘 캐리어에 넣어다녔는데, 그동안 단 한번도 꺼내어 써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으로 그냥 집에 두고 출발했다.


앞으로 어떤 엄청난 일이 생길지도 모른채.



브리핑 시작. CSD(사무장) 또는 CS(부사무장)는 항상 브리핑 룸에서 묻는다.


"Guyz, mentally and physically fit to fly?"
(대충 '정신적, 신체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냐?" 정도의 뜻)

"Yessss!!"

(엄지척!! 두 손으로 엄지를 번쩍 든다. 나 예쓰 맞냐??? 항상 자신감 하나는 최고다.)


이날 브리핑 분위기는 진지했다. 왜냐면 CS(부사무장)로 진급하는 시니어 크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체커(종종 비행에 출몰하는 체커. 말 그대로 비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절차에 맞게 하는지,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감시자")가 와서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 체커가 있는 비행이면 괜히 떨린다. 그 시니어 크루는 누가 봐도 달달달 떨고 있었다.



모두 체커가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출발. 그리고 비행 시작.

320 비행기는 작은 비행기다. 아일(통로)이 하나다. 이코노미의 화장실도 갤리도 모두 뒷쪽에 하나뿐이라 크루도 승객도 복작복작 거린다. 아일에 카트 하나만 있어도 크루든 승객이든 길이 막혀버려 꼼짝달싹 못하는 그런 상황에 내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서비스를 하는데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마디 마디에 고통이 느껴졌다.



'하.. 이거 잘못됐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괜찮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일한다는 것, 그라운드보다 체력이 몇 배는 더 소모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에. 결국 머리가 핑핑 돌고 서있기 힘든 지경까지 됐다. 어떻게 손님을 상대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러다 쓰러지겠다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열이 나고 손 마디마디를 살짝 살짝 움직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손에서 팔, 팔에서 등, 등에서 온 몸으로 퍼지면서 살짝만 건드려도 온 몸이 아려왔다.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허리를 숙여 몸과 입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와중에 3-4명이 서있기도 비좁은 갤리(비행기 내 주방)에 제 자리를 찾지 못해 널부러진 카트들과 식음료들, 화장실을 가겠다고 줄을 선 승객들까지. 그냥 복작복작 전쟁통이었다. 그 와중에 고군분투하는 동료 크루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냥 내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죄인이 된 것 같아 미안하다고 연신 말했다. 이런 내 자신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시니어크루에게, 체커에게 보고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달달 떨고 있던 그 시니어크루는 CS로 진급함과 동시에 나 때문에 첫 비행 신고식을 제대로 치뤘을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가져온 약도 먹었고 그냥 드러눕고 싶었다.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갤리에 찬 바람이 나와 너무 너무 추워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식음료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기 때문에 찬 바람을 직격탄으로 맞을 수 있다. 항상 320 비행기를 타면 감기 기운이 있곤 했는데, 이날 제대로 만난 것이다.


승무원들도 정해주는 포지션이 있다. 내 자리가 바람을 한번에 맞을 수 있는 딱 그 자리였다. 손과 발이 꽁꽁 얼고 팔에 닭살이 다 돋았다. 한 여름에도 전기 장판을 살짝 데워놓고 자는 나인데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너무 너무 추워서 온 몸이 덜덜 떨려 견디기 힘들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그냥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다.


회사 규칙 상 유니폼 이외에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지만, 살기 위해 담요를 챙겼다. 랜딩할 때만 살짝 두르고 싶었다. 살아야하니까. 랜딩하는 중에는 승객이 우리를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잠시 담요를 둘렀다. 옆에 있는 크루도 내가 너무 덜덜 떠니 담요를 덮어주며 챙겨줬다. 그걸 본 체커는 말했다.


"담요는 벗어."

단호했다. 정말.. 서러웠다. 이때 덜 걸릴 감기가 더 걸린 것 같다.


랜딩하자마자 그 곳 닥터가 와서 이것저것 묻고 열을 재고 진찰하기 시작했다.

"너 fit to fly 하지 못해. 내려야 돼."



"????????"



최악이었다.

턴비행에 혼자 내린다고? 그것도 인도에? 여자 혼자? 나 혼자?



나는 아파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도하로 가서 쉬고 싶다고 했다. 이때 난 처음으로 그 각박했던 사막의 도시 도하가 나의 안식처이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닥터는 단호했다. 시니어크루도 자신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닥터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앞이 캄캄했다. 이때 너무 아프고 추워서 담요 대신 걸치고 있었던 다이닝재킷(서비스 할 때 입는 유니폼)도 유니폼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있던 찰나, 체커는 나에게 또 말했다.



"유니폼은 입고 내려."



나도 안다고. 나도 갈아입으려고 했다.

다만 체커의 태도에 너무나 속이 상했다. 무언가 저 말투, 속시원해하는 것 같았다. 버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다시 잡았다. 그래. 여기는 회사지. 내가 그들에게 지금은 짐덩어리지. 내 몸 내가 간수해야지. 도움은 주지도 못할망정 내가 피해만 줬으니 오히려 그들에게 이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 온몸을 부르르 떨며 구부정한 자세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모자까지 썼다. 매무새를 정돈할 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곧장 내렸고, 비행기 문 앞에는 나를 위한 휠체어까지 와있었다.



??????



나 다친 게 아니라 아프다고,

걸을 수 있다며 말했지만 그것 또한 단호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휠체어에 실려갔다. 그리고 병원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식겁했다. 인도에서 병원이라니.. 어느 날 약물 알러지가 생겨버린 나는 그게 더 불안했다. 내가 한국에서 들고 온 약만이 비상약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한국이 너무나 그리웠다. 병원가서 링거 한방 맞고 좀 쉬면 바로 나을 것 같은데. 여기 저기 다니며 적응해야 하는 외국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냥 누워서 자고 싶었다. 한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만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인도 이 곳에 휠체어에 실려 어딘가로 가고 있다니. 승무원이 되서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비행 전,

왜 난 내 컨디션에 자신만만 했을까?

왜 병가를 내지 않았을까?

왜 굳이 약을 먹고 비행하겠노라 나왔을까?



비행 전, 그 순간으로 돌리고 싶었다.



파일럿들과 같이 호텔로 이동했다. 그들은 앞자리도 나에게 선뜻 내어줬다.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에 고마웠다. 회사에서는 5성급 호텔을 제공하는데 여기는 인도. 큰 기대도 없었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데 꽤나 걸릴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캘리컷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이었다. 대체 여기는 어떤 곳인가? 턴비행이라 알아본 것도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이 곳에서 어두운 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시골길을 40분을 내리 달렸다. 시골길에서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온 몸이 아려왔다. 집에 가고 싶었다.



드디어 호텔 도착. 적막한 공간. 호텔 방은 인도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 진짜 내가 여길 이렇게 오다니..'



혼자 캐리어를 열었다. 아차 싶었다. 아무것도 챙겨온 게 없다. 먹을 것도, 충전기도, 테블릿도, 여분의 옷도, 잠옷도, 샴푸린스도, 폼클렌징도, 스킨로션도. 추위를 잘타는 내가 레이오버때마다 들고다니는 1인용 전기장판도.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도하에서 출발하기 전, 충전기를 빼버린 그 순간이 너무도 후회가 됐다. 늘 넣고 다니다 왜 하필..



망했다. 정신이 나간 듯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충전기가 없다는 게 너무 불안했다. 호텔에도 충전기가 없어서 빌릴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사러갈 곳도 없었고, 갈 수 있다고 해도 여기는 인도라 너무 위험했다. 회사 규정 상, 늘 들고다녀야만 하는 정장만이 있었다. 온 몸을 바들 바들 떨면서 유니폼을 벗고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인도는 더운 나라여서 그럴까? 히터가 작동이 되질 않는다. 그냥 바람이 숭숭 나올 뿐이다. 너무너무 추워서 화장실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방안에 온기가 퍼지길 기다렸다. 화장도 깨끗하게 지우지를 못해 찝찝했다.



엄마, 아빠께 이걸 말씀드려야하나 망설이다가, 항상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내가 여기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연락을 드렸다.



영통을 걸었는데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그냥 바로 눈물이 터졌다. 서러웠다. 어린 애 마냥 울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엄마, 아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기에 너무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때 좀 진정하고 연락드릴 걸 싶었지만, 그때는 또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 서러웠고 그리웠고 보고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아빠는 너무 너무 속상한 나머지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당장 그만두고 한국 와."


그때 아빠의 한마디가 너무도 든든했다. 이 말 한마디는 그뒤로 내 비행생활에서의 큰 힘이 됐다.



그만하고 싶었던 이 생활,

북받치는 서러움에 그만두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인도에서의 강제 레이오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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