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일하면 다쳐요."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으면, 그렇게 열정이 넘치고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으시면 차라리 개인 사업을 하세요. 그렇게 몸 바쳐 일한다고 어디에 내 이름을 새겨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열심히 일하면 보람도 있고 누군가는 알아주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직장인은 돈 받은 만큼만 일해야 하는 게 맞아요."
"딱 적당히만 일하고 손해 보려 하지 않는 동료가 얄밉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환자분에게 필요한 건 딱 그런 자세입니다. 열심히 말고, 적당히요!"
내가 고민해 온 '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입을 다물자 폭풍처럼 설득의 말을 쏟아내셨다.
우울증으로 상담을 오는 환자들 중에는 열심히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무력감에 빠져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곁들이셨다.
열심히 사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너무 열심히 사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결국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보면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말씀도, 무척이나 진정성 있게 들렸다.
어제, 퇴근길.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기에 그렇게 가슴이 뛰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불현듯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가장 끝부터 시작한 작은 떨림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올라와 손바닥을 긁기 시작한다.
불쾌한 떨림은 손목을 지나 몸 안으로 타올라, 심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가끔씩 쇄골 언저리까지 올라와서 쿵쾅대던 내 심장이 오늘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 심장이 쿵쿵 펌프질 하고, 숨이 막힌다. 심장이 부풀 때마다 기도가 막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콜록콜록, 몇 번이나 기침을 해대고서야 내 숨을 막고 있는 그 덩어리를 뱉어낼 수 있었다.
내가 뱉어낸 그 덩어리는 뭘까? 진짜 심장은 아닌 게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정말 아픈 걸까? 또다시 손끝에서부터 전율이 올라온다.
나는 정말 아픈 걸까?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다친 내 마음을 제대로 위로해 주고 싶다.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다.
너는 강한 아이라고, 잘할 수 있다고, 모든 게 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누군가 어루만져 주면 좋겠다.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느끼며 빨리 깨어나고 싶다. 이 꿈에서...
"선생님, 그러니까... 저는 지금 우울증인 거죠?"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생님께 한 번 더 질문했다.
사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내 마음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병원을 찾아왔지만.
그래도. 우울증?
이런 질병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여전히 부인하게 된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들만 걸리는 거 아닌가...?'
여전히 마음 한편에선 편견과 오만이 점철된 갈등이 인다.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번아웃 상태로 보이네요. 물론, 이런 상태를 저희는 우울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반응은 여러 가지인데, 환자분은 분노를 표현하는 쪽은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뭐 하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걸 걱정하지 마세요. 내 건강도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것까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꼭 행동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열정적으로 사는 분들이 더 많이 아픕니다."
나약함이 나를 우울증에 빠뜨린 게 아니라, 나의 지나친 열정이 문제였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결국 책임감과 열정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건가?'
마음의 병이란, 참으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두 번째 상담을 마치고 병원을 나온 후 참 많이 울었다.
늘 뭐가 그리 슬픈지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던 나였지만 그날의 눈물은... 참 따뜻했다. 내 안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눈물이 된 것처럼.
사실은 그냥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다시 일어날 힘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나를, 그동안 나조차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괴롭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다시 일어나지 못하냐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고, 이제 그만 어리광 부리고 빨리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이렇게 주저앉아만 있으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겠냐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여 왔다.
나한테 진짜 필요했던 건,
그동안 많이 애썼으니 이번엔 조금 쉬어 가도 괜찮다는 위로였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인정이었다.
'괜찮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혼자서 모두 다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심장이 다시 꿈틀거림을 느낀다.
불쾌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두근거림이 조금은 차분하고 촉촉하게 변했음을 느끼며. 따뜻한 위로를 가슴 깊이 한가득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