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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an 30. 2024

생각의 방향을 '나'로 바꾸다.

- 내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정신건강의학과에의 첫 번째 상담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생각이 많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살아가지만, 이번에는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

안쪽으로.


'환자분은 본인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이 한 마디가 마치 유턴 신호처럼, 내 생각의 방향을 바꿔버렸다.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왜 지금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걸까?


사실, 첫 상담이 못 미더웠던 원인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긴장했고, 경직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드러낸다는 게, 더구나 무너지고 상처 입은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상담에서는 '나의 문제'에 대해서 잘 전달하고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생각의 방향을 '나'로 집중해 보기로 한다.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며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하고, 감정적으로 그리 공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누가 울면 나도 모르게 따라서 울게 된다.

게다가 정말 생뚱맞은 상황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서 주변을 당황하게 할 때도 많았다. 대화 중에 눈가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피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말 잘 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뭔가 힘든 게 있으니까 자꾸 눈물이 나는 게 아니겠어?"


또 깜빡이 없이 끼어든 눈물 덕분에 한 차례 민망한 상황을 수습하고,


"제가 안구건조증이 심한데 그래서 눈물이 통제가 안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라고, 시답잖은 핑계로 부끄러움을 덮어보려 시도하는 나에게, 직장 선배가 넌지시 건넨 말이다.


"적당히 해도 돼. 늘 너무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 마음부터 챙겨야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면, 흔하디 흔한 넋두리가 될 것이다.

두어 번쯤은 인간관계에서 진한 상처를 받았었고, 진로 선택에서도 시행착오와 좌절 끝에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지금의 길을 선택했으며, 운명이라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4년의 주말부부 생활 끝에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아이의 엄마였고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살림에는 원체 재능도 관심도 없었고 육아 또한 처음이라 서툰 것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늘 그렇듯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직장 생활은 나에게 일종의 탈출구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되돌아보면 나는 일에 지나친 애정을 갖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워라밸'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곤 했는데, 나의 워라밸은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다.

일 80 : 가정 20.

치우친 삶의 균형 속에 '나'의 자리는 조금도 없었다.

'역할'로만 가득 채운 일상. 그마저 불균형한 삶.

아내와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는 만큼 가족들에게 배려와 이해를 구해야 했고, 날마다 하루 미안함을 차곡차곡 쌓으며.. 그렇게 바쁘게 9년을 보냈다.

내가 눈물이 많아지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이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남아 있는 불편함과 부채감.


그럼에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힘은 일에서 얻는 보람과 성취감과, 동료들의 인정이었던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노력의 결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대 이상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일에 애정을 갖고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지나치리만큼.


그리고, 유난히 뜨겁고 시끄러웠던 2023년 여름. 나를 지탱하고 있던 그 힘이 와르르 무너졌다.  

여느 직장에나 있을법한 불편한 사건들이 나에게 연이어 터졌고,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일에 애정을 쏟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 직업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고 느꼈으며, 깊은 회의감과 함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했다.

여기서부터였다. 내 마음이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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