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Jan 26. 2024

보이지 않는 상처는 내색하면 안 될 것 같다.

- 불안과 우울에 빠진 단상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수요일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차분한 음악을 들으며 집을 나섰다.

음악 소리에 섞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빗소리. 비 내리는 차창 밖 풍경과 어우러져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한층 가미시켜 준다.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운전하다 보면 거의 매일 지나치는 시립 공설묘지 앞.

신호 대기 중에 멍하니 바라본 신호등에 커다란 검은 새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무심코 바라본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한 차례 아래로 내리락, 다시 오르락 거리는 새의 날갯짓뿐.

공설묘지 앞 길. 그리고 커다란 검은 새. 내리는 비까지...


잠이 덜 깬 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감각 속에서 불현듯 불길한 기분이 올라온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다.

이번엔 심장이 제 자리를 잃고 툭 튀어나와 목구멍 밖까지 올라온 것 같다.


비 오는 수요일, 불안하다.

오늘은 그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무탈하기만을 소원하며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눌러본다.

손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이 감각이 불안이 아니라 기대로 바뀌는 날이 오면 좋겠다.  




불안과 우울.

그걸 의식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불현듯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코 끝에서부터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는데도 콧잔등에 주름이 생기는듯한 느낌이다.

이어서 심장이 또 한 번 쫄깃, 오그라든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에서부터 펌프질 한 눈물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목울대가 물에 잠긴다.

목이 메고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 요즘은 익숙하다.


약을 먹으면 세상에서 한 걸음 멀어진 듯, 땅 위에서 떨어져 허공에 한 발쯤 둥둥 떠 있는 듯,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다.

더 이상 힘든 가시밭길을 걷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힘들게 두 다리를 내딛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날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과 알 수 없는 자신감...

그리고 나른하게 잠에 빠진다.


'이게 맞는 걸까, 올바른 방법일까?'


의문이 멈추지 않는다.


불안하고, 아프다. 내 힘으로 이겨내고 싶은데 약에 의존하는 내 모습이 더 아프다.

자기 연민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빠지는 거라고 헛된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약 없이는 잠들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안쓰럽고 슬프다.


두통이 있을 때 두통약을 먹고 상처가 있을 때 밴드를 붙이듯이 그냥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것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내 의지로 어찌하지 못하고 약에 의존하는 내가 바보 같다.


마음의 병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데도, 의지로 극복해야만 할 것 같은. 아이러니.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나만 나약한 걸까? 내 마음은 단단하다고, 내 의지는 굳건하여 쉽게 쓰러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 갔을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숨겨왔던 또 다른 내가 있었던 걸까?'


'그냥 지친 걸까? 아니면 내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상황이 날 이렇게 만드는 걸까?'


'언제쯤, 나는 이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고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자꾸만 많아진다. 하지만 또 약을 먹으면 모든 상념이 흐려지고 지금 고민하는 것들 중에 반 이상은 떠오르지 않게 될 거다.

그래서, 잠들기 전엔 또 약을 찾는다.

깊이 잠들어서 푹 자고 나면 적어도 낮 동안에 지쳤던 체력은 회복되니까.

불면증에 시달리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멍한 상태로 실수를 연발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 편안함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더 쫄깃해진다.

지금 내 심장은 수분이 쭉 빠진 건포도처럼 주름지고 검게 변해있을 것만 같다.


'내가 아프고 힘든 건 진짜 내가 아픈 걸까? 아니면 그냥 착각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아픔도 내색하면 안 될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데 믿을 수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마음의 병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따지고 보면 처음 겪는 일도 아닐 텐데... 내 마음의 재부팅 버튼이 고장 났나 보다. 이번엔 다시 일어서고 싶지가 않다.

'오늘도 힘내자!'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제... 제발, 그만 힘내고 싶다.


깊은 잠을 위해 약을 털어 넣으며, 오늘은 아주 오래 잠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전 04화 약에 취해 깊이 잠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