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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an 19. 2024

정신과, 첫 상담

- 저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급히 예약한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흔히들 말하는 정신과,라고 생각하니 방문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요즘은 많이들 간다는데, 이상한 곳도 아닌데, 첫 진료라서 인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심장이 쫄깃~한 기분.

원래부터 나란 사람은 낯선 곳에 가는 것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긴장되는 걸 거다.


병원은 카페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고, 친절고, 쾌적했다.

의사 선생님과 만나기 전, 20여분 동안 설문을 작성했는데 평소 나의 행동이나 생각의 패턴에 대해 묻는 것들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불안이 많고 우울증도 있다고 하셨다.



"불안이 많이 높으시네요. 잠도 못 주무시는 것 같고. 약을 먹으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실 거예요. "


"정신과 약은 처음 먹어보는데, 부작용은 없나요?"


"처방해 드리는 약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약입니다. 처음 드시니까 하루 권장량의 1/2로 시작해 보죠."


"잠을 잘 자고 싶어요. 잠을 못 자고 피곤한 상태가 계속되니 자꾸 멍하고, 실수를 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마음이 힘들어요."




요즘, 밤이 되면 더욱 마음이 복잡하고 오만가지 걱정이 밀려온다.


'오늘 잊은 건 없겠지? 실수한 건? 그때 말을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나..?'


'내일 해야 할 일은?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좀 정리하고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면 좋을 텐데.. 그러려면 빨리 자야 하는데.. 벌써 너무 늦었는데... 내일 못 일어나면 어쩌지?'


'오늘은 왜 하루가 여유로웠을까? 내가 뭔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잘 챙겨야 하는데...'


잠 못 들고 뒤척이다가 겨우 3~4시간만 눈을 붙이고 출근하다 보니 당연히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

회의 시간을 체크하는 등의 정말 단순한 일도 챙기지 못해서 몇 번이나 당황했던 지난주를 떠올리며, 의사 선생님께 잠에 잘 들 수 있는 약 처방을 부탁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입력하셨다.

가늘게 떨리는 내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키보드의 딸각거리는 소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 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질감.


"제 주변 사람들은 저에 대해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말해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요즘은 힘도 나지 않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요. "


"스스로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것 같네요.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은 가면일 수 있어요. 환자분은 지나치게 걱정이 많고, 완벽주의자적인 성향도 있으시네요. 아마 환자분께서는 본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것 같아요. 좀 더 정밀한 성격검사를 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 선생님은 저에 대해 얼마나 아신다고 초면에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20여분의 간이 검사와 짧은 대화로 저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떠오르는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낯선 이에게 내가 함부로 정의되어 버린 것 같아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내 눈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에 머무른 의사 선생님의 시선이 어쩐지 야속했다. 마치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께서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나'라는 사람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고 생각해 온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닌가.




병원을 나서는 나의 손에는 2주 분량의 약과, 다음 상담 때까지 작성해 오라고 안내받은 두툼한 설문지 두 뭉치가 쥐어졌다.


'이게 맞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꺼림칙한 의문도 한 아름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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