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Jan 12. 2024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 하지만, 도망칠 용기도 없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장이 제 위치를 벗어나 목구멍 근처까지 올라와 있는 것처럼 심장의 꿈틀거림이 과장되게 느껴진다.

기분 나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속이 울렁거린다.


인터넷 뉴스에서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한 선생님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 기분 나쁜 두근거림을 멈추고 싶어서, 그래서 모든 걸 끝내는 선택을 하신 걸까..

두려운 마음으로 나의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 내 삶의 마지막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죽고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사춘기 시절,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적인 존재나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 알 수도 없는 답을 하염없이 궁금해했다.

멈출 줄 모르는 호기심에 치기 어린 생각이 더해져 죽음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곤 했었다. 참 쓸데없이.


대학교 신입생 시절, 설사병에 걸려서 이제 막 가까워지기 시작한 이성 친구 앞에서 바지에 똥을 지리고 냄새가 진동했을 때, 그때도 정말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수치스러운 기억이다.     


10년쯤 전에는 돌쟁이였던 아이가 다쳐서 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었는데, 엄마로서 숙명적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죽음을 생각했었다.

치료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가슴이 찢어진다'는 상투적인 말을 절절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 모든 고통이 끝나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몇 번이고 상상했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베개로 얼굴을 덮어 질식사한다지,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지, 한강 다리 위를 달리다 핸들을 꺾어 난간 아래로 추락하는 상상을 했었다. 참 위험하게도.


삶에서 몇 번쯤, 난 정말로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했었다.

그때도 내 심장이 이렇게 기분 나쁘게 두근거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렴풋한 기억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뿐.




돌아가신 선생님의 유서를 다시 떠올려 본다.

너무 많은 업무와 갈등으로 자존감이 '0'이 되는 것 같았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렇다. 자신이 없다.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도 흐려졌고 다시 힘을 내고 싶은 의지도 꺾였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죽은 듯이.


그래도 '죽음'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찌릿해지는 통증을 느끼는 것은 내가 여전히 살고 싶은 까닭이겠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울컥 목이 메는 건 내가 지키고 싶은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 기분 나쁜 두근거림과 답답한 마음은...

내가 이 삶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기 때문지도 모른다.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 나갈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과 안쓰러움.

그렇게 또 살아낼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애잔함.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하지만, 도망칠 용기도 없다.

사실, '죽음'이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이만큼이나 힘들다는 투정일 뿐.  


여전히 삶은 우울하고, 자신이 없다.

기분 나쁜 두근거림은 도무지 멈추지 않고, 심장 꿈틀거림에 속이 울렁거린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이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담아. 한 글자씩. 꾹꾹 눌러써 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