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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an 23. 2024

약에 취해 깊이 잠들다.

- 신경안정제 복용, 이게 맞는 걸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은 날, 복용법에 따라 저녁 식후에, 그리고 자기 전에 약을 먹었다.

약 기운일까. 아니면 기분 탓일까.

기분 나쁜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잠결에 알람을 끄고 그대로 다시 잠든 나를, 남편이 세 번이나 깨웠다고 한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얼마나 연신 하품을 해댔는지, 눈물이 찔끔찔끔 흘러 화장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어디 아파요? 얼굴 표정이 왜 그래요?"


출근 후 만난 직장 동료에게 인사와 함께 들은 말이었다.


"어?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저 좀 봐주세요! 어? 어? 눈빛이 이상하신데요? 아직 잠이 안 깨신 거예요?"


다정하지만 표현이 직설적인 후배는 나에게 다가와 연신 눈을 맞추려 노력하며 나의 눈빛을 지적했다.


사실, 그날 오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일을 처리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에 늦게 자는 바람에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약을 먹었으니, 약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출근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번 병원 상담에서 듣기를, 나는 신경안정제 종류의 약에 제법 예민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한다.




내내 편히 잠들지 못하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친 체력 회복하기 위해 주말에는 복용법대로 약을 먹고, 약에 취해서 원 없이 잠을 잤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하루 4번, 식후와 취침 전에 먹어야 했는데 취침 전 약이 가장 개수도 많고 효과가 강했다.

약을 먹고 나면 스르르 잠이 쏟아져서,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멀리 허공의 메아리처럼 느껴지고 나른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잠들기 전, 고요한 시간이 되면 늘 나를 찾아오던 상념, 걱정, 불안함, 자기 연민, 우울감...

그런 복잡한 생각에 빠질 겨를도 없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깊이 잠들었다.


하지만, 평일에는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정리하다 보면 1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그런 날은 약을 먹기가 겁났다.

다음 날 또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출근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정신이 또렷하지 않고 약간 멍~한 상태로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게 걱정스러웠고, 약에 취해 하루를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의 상태가 더욱 불안했다.


약 없이 눕는 날은 여전히 잠에 빠지는 시간보다 뒤척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지만, 두려운 마음이 더 컸기에 참고 버텨야 했다.  

기분 또한, 약을 먹으면 구름 위에 누운 듯 포근하다가도, 깨어나면 다시 비바람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듯 절망적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위태롭게 열흘을 버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불안하고 위태롭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두 번째 상담 날짜가 다가왔다.

처음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예약할 때,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두 곳에 예약을 했었다.

그중 두 번째 병원의 진료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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