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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to erase Dec 04. 2023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 존 버거

책을 읽고



깨어있음에 관하여


“종이 한 장에 나무 전체와 가까이에서 본 나뭇잎 한 장을 함께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풍나무의 유전자 코드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고, …… 그건 일종의 사탕단풍나무의 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이젠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



망각에 저항하는 법

나는 자연의 형태들 - 나무, 구름, 강, 돌멩이, 꽃 같은 것들 - 이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로 보이고, 그렇게 인식될 수는 있을지 궁금했다. 그건 - 당연한 이야기지만 -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 딱히 우리를 향해 던져진 것도 아닌 메시지였다. 자연의 외양들을 텍스트로 ‘읽어내는’ 일이 가능할까?



<소감>

존 버거의 전시에서 구매한 책.

그의 에세이을 읽고 있자니 무언가 알수없는 평온함(?) 고요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시간이 느리게 가는 느낌이었다. 하루에 한 챕터씩 여럿일 동안 읽어나갔다. 매일 읽지는 않았다. 매일 읽고자 계획하기는 하였지만. 계획은 늘 수정되고 변화하는 법이다.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늘.


그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 내려갔고 그 글을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천천히 요리를 하듯, 혹은 그림을 보듯이 글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마지막 챕터에 나온 내가 메모한 글이다.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엔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들이 많다. 느낌이나 묘한 감정. 혹은 우리가 보는 것들. 자연의 꽃을 텍스트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질문했던 버거처럼, 그리고 그것이 어떤 메시지로 보일지에 관한 생각. 사실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도 아닐것이라는 것.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쩌면 우리에게 던져진 메시지가 아닌것을 읽으려고 하는 태도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태도가 예술을 읽기에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그래서 칸트가 말한것처럼 어떤 관심을(목적이나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무관심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것이 예술의 태도의 하나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읽은 기간, 2017040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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