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변칙의 대결에서 결국 변칙을 허용했지만 원칙이 아니면 변칙의 수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던 시간이었다. 또한 원칙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도 연초에 깨달았다. 이 균형은 다른 말로 공의이고 공의가 결국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밑둥 잘린 나무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다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오매불망 열매를 바라고 망부석이 되서 굳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라나고 시작할 수 있는 그루터기에 감사하고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산만해서 살만하다는 자조섞인 만족감은 나는 산만해서 살만한 그래서 감사하다 라는 ‘바를/만족할 정’의 의미로 깎였다. 나에게 동방문자(한자)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이 계기를 만들어줬고 그루터기가 있다는 깨달음부터 그 글자공부가 술술 풀리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21년 전에는 전혀 그 의미를 알 수 없던 음양오행에 대한 감각까지. 이 모든 것은 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인지하는 것이 그 첫번째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부족하나 감사하다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는 놀라움으로 바뀌는 기적의 순간이라는 것을 이렇게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이 주1회 연재라는 약속도 못지키는 글을 보는 여러분들께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일일히 찾아뵙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