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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Men Dec 22. 2024

1004와의 만남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사바~~


1004와의 만남

1004가 뭐예요?


-1004

한국말 발음으로 천사.

삐삐를 사용하던 어른들 시절에 유행하던 패션이나 트렌드들을 소개하던 잡지에서 보던 1004 천사는 말 그대로 천사, Angel이라는 의미였다.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를 지켜줄 천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삐삐로 전송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인 숫자로 1004를 전송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천사는 이 땅의 세계에서 육신을 거동하며 움직이는 육체를 가진 존재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존재이며 이 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그런 천사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랑표현 가운데서도 자신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를 동원해서라도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기타에 붙인 별명이 바로 1004, 천사다.




-10월 04일은 제 ‘전역일’ 입니다만,

Building Date 빌딩 데이트, 건조 일자라는 말이 있다. 기타는 목재로 만드는 악기인데 특히 쇠줄을 걸어 연주하는 통기타는 상판, 후판, 측판의 판재들과 그 판재들을 이어 붙일 수 있는 구조를 위한 목재들, Bracing(브레이싱)이라는 부챗살모양의 하중, 충격흡수 보강재들을 붙여서 제작자마다 가지고 있는 기타의 음색을 세우는 것이다. 그 과정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진 날이 바로 2016년 10월 04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10월 04일은 공교롭게도 내가 공군현역병으로 입대하여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신고를 마친 바로 그날이다.




-Lowden F35c TB/SRW

내 메인기타 소개를 잠깐 하자면, 북아일랜드 지방에 공방을 가지고 있는 Lowden(라우든, 로우든)이라고 하는 브랜드의 35번대 모델이다. 로우든 브랜드는 22, 23, 25, 32, 32+, 35, 50 번대 라인이 있으며 드물게 뒤에 X라는 알파벳을 붙여 그 번호대에서 나왔지만 다른 요소를 가미한 모델이 있다. 이 브랜드의 특징은 배음이 절제되어 있으며 연주자의 터치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연주자의 연주를 받아들이는 민감성이 높다. 무게도 가벼우며 가벼운 만큼 상판의 두께가 생각보다 얇기 때문에 연주자에 따라서 손바닥 부분으로 기타 상판을 두드리는 주법에 대해서 대비책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크기에 따라 F모델, S모델, O모델이 있으며 또 그 아래가격으로 W버전의 모델들 또 애드시런과 협업하여 만든 시런기타라는 라인업도 있다. 아무튼 내 기타는 F바디이고, 35번대 라인이며 컷어웨이(c) 된 기타로써 상판은 싱커 레드우드이고 측, 후판은 타즈매니언 블랙우드이다. 싱커 레드우드는 레드우드 혹은 세콰이어라고 부르는 나무인데 새크라멘토 강에서 100년 이상 잠겨있던 목재를 인양하여 음향목으로 사용하는 경우로 전통적인 기타 제작 관점에서 보면, 물에 가라앉았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통의 레드우드의 성질이 변형돼서 미네랄함유 및 기존 물성이 조금 달라져 오묘한 소리를 내준다는 것에 있다. 측, 후판으로 쓰는 타즈매니언 블랙우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타즈매니언 섬에서 자라나는 코아(Koa) 계열 나무의 사촌지간인 오스트레일리안 블랙우드가 코아와 비슷하지만 중저음 영역과 저음의 반응에서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목재라고 알고 있다. 뭐 어쨌거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이니 만큼 내가 자주 연주하면서 느끼는 특징들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자랑을 마쳐도 될 것 같다.




-1004를 만나려고 이렇게까지

참 여러 일이 있었다. 1004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갖게 된 것은 아닌데, 이 악기를 데려와야겠다고 결심이 서는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일련의 연관성을 갖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관계로 이렇게 두서없이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이 산멘주임 특기에 기타라고 썼던데, 이번에 찬조출연 한번 해 줄 수 있어?’


악기를 다시는 잡기 않겠다고 결심하고 살아간 지 무려 4년이 지나고 있던 차에 듣게 된 뜻밖의 황당한 말이었다. 4년 전의 나는 분당 야탑동에서 음악 관련 일을 하며 막내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운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 당시의 내가 마련할 수 있는 대출이란 대출은 모두 끌어 모았고 ㅇㅇ합동조합과 ㅇㅇ뭐니, ㅇㅇ코뿌 총 900여만 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무언가에 홀려서 계약서들을 작성했고 그렇게 마련한 돈을 모두 내가 일하고 있던 회사의 연합단체들을 이루는 회사의 임원들에 송금했다. 추가 재원을 마련하려고 알아보고 있던 차에 나의 개인정보를 알고 개인 신용등급과 금전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던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공사를 당하는데, 그 결과 피해자들의 신고로 인해 내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좌는 모두 동결, 경잘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출석요구서 및 담당 형사의 휴대전화 연락까지 받게 되자 이 모든 것이 그냥 일어난 것은 아니고 이게 다 내가 음악을 하지 말라는 신호 같다고 생각하던 나는 일하고 있던 장소에서 떠나 음악생활을 접고 다시 음악 없는 인생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면서 지내왔었다. 그러던 차에 기계설계를 배워야 아버지께서 하고 있는 일을 도와줄 수 있으니 배워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올라간 폴리텍 생활에서 기계설비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취업한 모 건축설비회사의 파견직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결국 저 말까지 듣게 된 것이었다. 한국보다 6시간 느린 이라크시간의 어중간한 시차를 적응하면서 참 힘든 점도 많았고 자재관리를 맡아서 하면서 겪는 업무자체의 어려움 등등, 향수병을 일으킬 요소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시차적응에 대한 대비책으로 매일 햇빛 보는 시간, 해 지는 시간에 일과 마무리하고 수면을 취하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기로 세우고 실행에 옮기니 점차 나아졌지만 정작 문제는 직무에 있었다. 내가 맡은 직무는 건축기계설비자재 담당이었는데, 건축공사에 필요한 기계설비 자재들을 발주하고 제작과정을 계속 추적하고 선적현황까지 조사하고 보고하고 또 제작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본사에 연락해서 협조를 구해야 하는 과정,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해당 업무를 잘 아는 분에게 연락을 취하고 문의를 구하는 등등의 세부적인 업무들이 끝없이 생성되었고 끝내 제작이 늦어져 선적이 미뤄지는 게 결정되는 날에는 원청에 ’즈어기 이러져러그러해서 선적이 늦어졌습니드아 뉘에뉘에 녜네…’하고 말을 해야 하는 현황보고자료들을 올려야 해서 압박감이 더욱 나를 조여왔었다. 물론 급여를 받았으면 그런 일들은 응당 해야 하는 직무가 아닌가 하고 혹자는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스펙도 그렇게 높지 않은 상태에서 곧 승진을 앞둔 과장급의 대리가 하고 있던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업무강도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 바로 문제였다. 아니 이제 입사 후 3개월이 된 시점에서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안되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퇴근 후에도 한국 본사에서의 업무시간을 생각하면서 자재 제작현황 선적현황을 추적해야 했는데 이게 말이 퇴근이지 실제 퇴근시간은 눈을 붙이기 전 1시간이었고 30분 전에 일이 끝난 경우도 있었고 자고 일어나니 마무리 이메일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는 트럼프가 99퍼센트 몰아냈다고 자신했던 이슬람 근본주의자 무장단체세력인 ISIS가 마치 한국 625 전쟁사에 나오는 빨치산처럼 민간인들 곳곳에 숨어서 암약하던 시기라서 그런지 민간인들의 집집마다 다들 가구처럼 총이 1정씩은 있었던 상황에서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폭동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전쟁이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 폭동이 건축자재들이 들어오는 항구에서 일어나는 기간에는 자재수급이 매우 어려워서 입항한 배의 컨테이너를 개봉해서 랜덤으로 가져오는 자재 수급에 의존하는 방법 외에는 건축기계설비 공사 진행이 매우 어려운 상황까지 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재관리를 담당했던 협력업체 직원 산멘의 무력감과 자책감이 고조되었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원청에서 감수해야 하는 손실도 증대돼서 협력업체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만만(?)했던 일들이 휴가를 갔다 다시 현장에 복귀할 때 개인수하물 무게를 파악하고 단체회식을 위한 쏘오주를 병으로 페트병으로 몇 킬로를 가져온다거나 원청의 그 저 높으신 분께서 홍어를 드시고 싶다는데 네가 전라도가 고향이니까 이런 때 현지생활비 다 못쓰는 거 아는데 현지생활을 위해서 회사에서 따로 현금으로 나눠주는 돈 좀 모아가서 좀 홍어 몇 킬로 구해서 오라던지 하는 그런 좀 인간사회에서 뇌물성격을 가진 그런 접대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첫 휴가 이후로 나를 향한 시선들이 곱지 않았기에 그런 일들을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두 번째 휴가를 갔다 와서 성공적으로 수하물들을 이용해 그간의 업무부진을 무마시키는데도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문제는 업무강도는 달라지지 않은데 있었다.




-가라? 응 네 건강도 가라

전임자가 해놓은 업무들 중에는 발주처에서 요청했지만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서류들이 있었다. 가령 해외구매를 통해서 조달해야 하는 건축자재들 중에 시험성적서에 들어가 줬으면 하는 시험항목들을 발주처가 사전통보도 없이 갑자기 이거 넣어 주세요 저거 빼주세요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게 발주처가 요청하는 것은 쉽지 정작 이것을 반영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원청의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니 발급할 수 없는 내용인데 발급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었고 또 해외의 자재업체들은 자기들이 발급한 서류에는 절차적 문제도 없고 내용상 하자도 없는데 무슨 사항을 더 추가하라는 거냐며, 이런 사항은 추가할 수 없다부터 그런 내용은 필요하지 않다까지 부정적인 응답을 보면서 전임자가 임시방편으로 처리한 방법이 바로 ‘가라’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일본어 음대로 뜻을 보면 ‘가짜’다. 날림으로 서류를 작성했던 것이다. 전임자는


‘산멘아 너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을 거야. 아니 많을 거야’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옆에서 두 손을 똑바로 모으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어도피 아크로뱃 프로 9.0 버전을 무려 크랙버전으로 설치하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며 성공적으로 설치완료된 어도비 아크로뱃 소프트웨어 크랙버전을 사용하여 그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반영한 문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특강을 나에게 해줬는데, 이미 한국으로 귀국하여 과장으로 승진까지 한 전임자가 예언한 일이 그대로 터져버리니 이 일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싶으면서 느꼈던 당혹감과 좌절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나 하면서 느낀 우울감은 말로 못할 정도였다. 그런 압박들을 느끼면서 입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매일매일 먹었던 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서 된장에 매운 고추 하나씩 먹으면서 얼얼한 맛으로 식사를 계속했던 터라 또 속이 쓰려오는 고통을 매일 느꼈던 나날들이었다.




-열병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그렇게 내 육체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꿈을 꾸는데 온몸에 뜨거워지면서 펄펄 끓는 열기가 가득한 곳에 내가 누워있는 꿈이었다. 눈을 뜬 나는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탈출을 시도했지만 주변에 있는 장애물들로 인해 더 이상의 탈출이 불가능했고 그렇게 쓰러져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눈을 떠 보니 바로 위엔 책상 아랫부분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침상이 아니라 바닥 위에서 자고 있었고 일어나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다행히 의자에 앉고 걸어 다닐 수 있었기에 현장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다시 저녁이 되고 잠을 청한 뒤에 다시 찾아오는 그 꿈은 더 이상 잠을 자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날을 위해서는 무조건 잠을 자야 하는데 피로를 풀기 위해서 잠을 자야 하는데 나에게 수면은 피로를 풀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어딘지 모를 위험한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는 출발지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들기 두려운 나날이 2일째 계속되었고 그 공포는 3일째 4일째 계속되었다. 거의 5일 이상을 그렇게 악몽을 꾸고 지쳐 쓰러져서 아침에 일어나고 헥헥대면서 폴더폰처럼 허리를 접고 다니며 일과를 마무리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 더 이상 국내 자재 선적현황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성과가 없는 무의미한 일이고, 내가 진행하고 있던 내가 맡았던 업무들은 하나같이 나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지표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더 이상 나는 빠릿빠릿한 신입에서 삐리 한 애송이가 되어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왜 여기 왔는지조차 불분명한, 사는 목적에 대해서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그저 생명의 지속을 재판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고를 해야 만한다는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태가 되어 공기만 낭비하고 있는 사막에 피어난 잡초였다. 광합성이라도 제대로 해서 시원한 물을 저장하는 선인장이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흐리멍텅해서’, ‘아둔해서’, ‘덜 떨어져서’, ‘같은 이야기 반복하고 또 반복하게 만들어서’, ‘네 엄마가 너를 낳고 미역국은 먹었냐’고 궁금하게 만들어서, 나는 그렇게 재판의 선고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고 이불처럼 열병이 내 육체를 덮었다. 이번에 오는 고열로 내가 전부 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더니 다시 어두워졌고 우주에 떠있는 별들이 보였다가 다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방은 불을 끈 상태였으나 내 눈엔 환한 빛이 비쳤다가 어두워졌다가 하면서 장소가 계속 바뀌며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한 와중에도 목이 말랐다. 늘 같은 자리에 있던 냉장고에 가려고 벌떡 일어나서 발을 디디는 순간에 넘어졌다.

바닥에 발을 디뎠는데 글쎄 바닥이 기울어져있던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바닥이 기울어진 것으로 느끼고 기울어진 정도만큼 발을 헛디뎌 바닥에 넘어졌다. 발이 말을 듣지 않아 기어서 안 보고도 열 수 있는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물이 담긴 페트병 주둥이를 열고 입에 들이부었다.


‘으아아아악 푸우우웁 푸훕’


손에 느껴지던 시원한 물의 온도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면서 갑자기 만져본 적 없는 용암처럼 뜨거워졌고 내 식도와 위장에 불을 붙이는 것 같았다. 이젠 물조차 마시면 안 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인가? 나는 다시 침상으로 기어갔다. 바닥에서 죽으면 얼마나 비극인가, 그나마 침대에서 눈을 감아야 좀 그림이 그럴 듯 하지. 하며 나는 그 상황에서 가오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냥 나 왜 사는지 모르겠다 아니 하나님, 나 왜 이렇게 살아야 돼요? 당신 없잖아요 당신은 나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으니까 내 인생에 없는 거잖아요. 아니 이 세상에 나 말고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 안 데려가고 왜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었요? 당신이 내 인생에 없으니까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내 맘대로 살아온 것밖에 없다고요 그게 잘못이에요? 그게 죄에요? 차라리 그냥 나 이대로 불에 타서 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해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전부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먹고 자고 똥만 싸는 기계가 하는 일이라고요. 제발 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이런 일 하고 싶지 않아요 제발 나 좀 제발’


어느새 고통이 극에 달하니 나는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했다. ‘신은 죽었다’ 따위의, 니체가 말한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뇌까리며 나름 문학소년에다 철학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열병이 도지니 드디어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는구나 이제 곧 세상과 하직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나는 분명히 누워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일어나 서있었다. 방인가? 아니 방이 아니었다. 공중에 서있었는데 서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발 밑에 감각은 없었지만 분명 나는 서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내 뒤에 누군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내 등을 딱 하니 기대고 있는 상태였다. 언제부터 기대고 있었지? 나는 생각하자마자 답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하는 순간 답이 머릿속으로 그냥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나는 처음부터 내 등 뒤의 존재에게 등을 딱 하고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태어났을 때부터 보았을 거 같은 풍경들,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던 시야, 여동생과 놀던 시야에서 보이는 것들, 등등의 여러 장면들이 여러 번 읽었던 책을 후루루루루룩 엄지손가락으로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훑어보듯이 내 눈에서 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인가? 하고 하고 생각하던 때에 갑자기 내 등 뒤에 있는 존재가 궁금했다.


‘… 누구세요?’


그 존재는 말이 없었다.


‘누구세요? 아니 누구야?? 그리고 언제부터 여기 내 등뒤에 있었어 아니 있었냐고요?’


나는 간절하다 못해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악에 받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무 고함을 쳐서 그런가, 갑자기 목이 막혔다. 아니 목이 막힌 게 아니라 목이 멘 것인가 목구멍이 숨을 쉴 수는 있는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힌 것이다. 목소리? 아니 이건 느낌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 바로 텔레파시(Telapathy)였다.


‘나는 처음부터 너와 있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서 볼을 타고 침대로 흘러내렸다. 아니 나는 왜 내 등뒤에 바로 있는 그 크기를 확인할 수도 없는 그 존재가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니? 난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째서 당신이 있는 거예요?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냐고요 난 당신 없이 살았는데 내 마음대로 살았는데 왜 내가 쓰러지지도 못하게 그렇게 등뒤에서 딱 버티고 있냐고요.


‘네가 아직 못한 게 있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어요 나는 지금껏 잘하려고 했지만 출생이 비천해서 배운 게 많이 없어서 하는 일마다 다른 사람처럼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눈치도 없고 재능도 없고 사회성도 부족해서 실패했는데 내가 더 못한 게 뭐가 있다고요 내가 하는 일 전부 잘 안되었는데?’


라고 내 마음속에서 외쳤지만 한가자 마음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재미를 느끼고 계속했던 것


그것은


기타 연주,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큰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세계가 확장되었고 우주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서 결국엔 내면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 언제든 소리가 들리도록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끔 흥얼거리는 멜로디들은 아직 내가 그 창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었다.


‘음악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 부족해요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제대로 만든 것도 없어요. 어떻게 해요? 나 영감 받으면 흥얼거리다가 그냥 날아가버리잖아요 어떡해요? 어떻게 계속해요’


그러자,


뭔가가 공중에서 큰 덩어리가 내려오면서 점차 먹기 좋은 형태로 줄어들어 내 주변에 떨어지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일용할 양식 같아 보였다.


그동안 내가 그 존재를 부인하고 살아온 <신>이 죽을 때가 되니 이렇게 모습을 보여주는 건가? 싶어서 놀라웠다. 그동안은 내 목소리는 못 듣고 무시하고 들은 척도 안 하고 뭐 하는 일도 없는데 하지 말라는 것만 더럽게 많은 잔소리하는 영감으로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 만난 존재는 영감도 아니고 나에게 했던 말은 잔소리도 아니고, 그저 내가 쓰러지지 않게 내 등 바로 뒤에서 내가 힘이 없어서 주저앉고 싶은데 주저앉지 못할 정도로 딱 기댈 수 있게 밀착된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열병의 시간이 지나,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고 나는 무사히 주말에 회복기를 거쳐 다음 주부터 업무일과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특기가 기타라는데


‘산멘 주임, 자네 맡은 업무가 우리 소장님에게 까지 보고가 들어갔어, 근데 이번에 소장님이 맡아서 진행하는 2018 송년음악의 밤에 협력업체에서 찬조출연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력서들을 보는데 자네 이력서에 딱 특기가 기타로 적혀있지 않겠나, 그래서 자네가 우리 기계팀을 대표해서 나가줬으면 해, 할 수 있겠지?’


‘아니 대리님 저는 기타 놓은 지 이미 5년이 되었고 연주할 악기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연습한다고 해도 바로 돌아오겠습니까? 그것도 적응할 시간도 촉박하고 말이죠. 저보다 잘하는 다른 사람들 알아보시는 게 빠르실 것 같습니다’


‘야, 기타? 그거 우리가 지원부서에 요청하면 바로 이번주에 사줄 수 있어. 딱 기다리고 있으라고, 어떤 곡 할지나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시작한 송년의 밤 준비.


매일 3, 4시간을 갈아 넣으며 자재준비는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고 나머지 걱정은 다 치워버린 채로,

송년의 밤 작은 연주회에서 연주할 2곡을 준비하는데 집중하였다.

송년의 밤무대에서 나는 Shure Beta 58 마이크를 90도 각도로 교차시켜 세팅하고


Kotaro Oshio의 황혼(twilight)과 My Home Town 2곡을 연주했는데 연주하고 나니 참가자들 말소리가 들렸다.


‘아니 프로를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찬조출연인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본래 원청 직원들이 참여해서 획득한 점수대로 시상을 하고 상품을 받는 행사였는데, 찬조출연한 협력업체 직원이 연주한 곡에 다들 정신이 황당하여있던 상태에서 다음 참가자가 무대 나오는 것에 심각한 부담을 느끼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소장님의 직권으로 협력업체 직원에게 줄 상품은 아니지만 급한 대로 에어팟프로 2를 받게 되었다. 현지 공항 면세점에서 산 것이 분명한 안내문엔 꼬부랑문자가 쓰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우연한 기회로 다시 기타를 잡게 되었다.


사표 쓰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방구석 백수처럼 지냈지만 마음속에 품은 목표가 있었기에 결국 1004를 손에 넣게 되었다.

(후에 또 짧은 이야기로 풀 수 있을 때 풀어보겠다)


어쿠스틱 기타 앤 뮤직이라는 국내 해외악기 판매점이 있다. 수리도 담당하고 있으며 악보판매 음반판매 해외 제작자 커스텀 주문 접수 및 진행 등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업체의 위치에서 지원해 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1004. 다른 모델들을 듣다가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귀가 꿰였다’


그 자리에서 에약금 15만 원을 걸고 3개월 후 모은 퇴직금을 다 쏟아부터 그 악기를 데려오기에 이른다.


> 핑거스타일 기타 솔로곡

이 친구로 만든 기타 솔로곡들 제목이 있다.


Good Morning


가보비


내눈꽃


그렇게 흘러가네


굿바이


틈새빛살


그 도시가 밤에 눈을 뜨면


I’m still alive


이상한 놈


I play therefore I am


이 중에서 완성도 100퍼센트인 곡들은 위에 3곡이고 나머지는 작업 중에 있다.


> 그녀와 함께 한 곡(음원 작업 편곡, 연주 참여)


내가 너와 여기


사랑이에요




-1004는 지금

1004는 지금 통기타이야기라는 기타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랑한다고 말해요’라는 곡의 다른 리듬 버전을 녹음연습하고 나서 그걸 정리한답시고 마이크를 뺐는데 마이크가 그만 손에서 미끄러져서 상판에 우지끈하고 부딪혔던 상처를 고치기 위해서다. 이 글을 쓰는 시점(2024년 12월 22일)에서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기 때문에 잘 회복하고 다시 만날 1004를 기다리면 이 글을 마무리한다. 그녀와 만나게 해 준 1004, 1004가 있기에 오늘도 세상은,


산만해서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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