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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라는 산을 올라갑니다(도구정리 편)

ADHD 등반 시 필요한 도구들

by SanMen

‘약’, 먹을까, 말까?

ADHD 치료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결정한 것이 약물치료였다. 의사 선생님께 내가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반응들, 조언들, 비평들을 말하면서 아울러 내가 돌발행동으로는 ADHD증상들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머릿속 생각이 윈도우 운영체제의 바탕화면에서 프로그램 창이 매우 많이 뜨는 것처럼 무수히 많이 떠오르는 증상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고(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는 수업내용과 관련된 설명들을 영상이나 그림들을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나 심지어 음악이 들리는 것들을 물리치려고 애를 썼다고, 그리고 JH공장에서 관계자의 권유로 받았던 ADHD검사가 실은 내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충분한 시간을 거처 설명을 듣고 난 뒤 테스트 문제로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친 뒤 했던 검사였고 그 후에 이어진 뇌전도 측정검사들 또한 스스로 자가최면등을 건 상태에서 나의 정신병력 귀책사유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미치는 가능성 자체를 드러내기 않기 위해서 매우 노력한 것이었다고 실토했다. 사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ADHD에 대해서, ’유아질병인데 어떻게 성인에게도 그 병명을 붙일 수 있는가 ‘라는 자문을 스스로 하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결코 나에게 퇴직사유가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 검사들을 통과했던 것이었음을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며 뒤늦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쏟아내듯이 하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다 들으시고는,

'산멘씨, 약물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우선 약물 사용해서 변화되는 것을 관찰해봅시다'

말씀해 주셨다. ‘아니 내가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인데 약물을 사용한다고?’ 하며 나는 약물 사용 자체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부정적인 반응이 내면에서 올라왔지만,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과 반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통해 하게 되었다.

“산멘씨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도 약물 먹고 증상이 많이 나아졌어요. 집중력 부족이 원인이 돼서 그런 일들을 겪으셨을 거예요”

똑같은 말을 해도 그것에 대한 주변정보까지 쏟아내는 일명 ‘TMI형 인간’인 나에게, 선생님은 위와 같은 말로써 나에게 핵심을 건드리면서도 간단명료하게 치료에 대한 전망까지 알려주신 것이다.

약물을 처방받았다. ALZA라는 이름이 약 표면에 새겨져 있었다.

‘알자? 무엇을 알자고 이름이 있는 것이지? 정녕 이 약이 내 증상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약을 보면서 복용 전과 복용 후는 명확히 다를 것이다는 이유 모를 예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해봐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더더군다나 약을 사용하는 일이니, 복용 전과 복용 후를 비교할 수 있으려면 먼저 ‘복용’이라는 실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좋다.

‘삼켜주지 이 운명’

나는 두 눈 딱 감고 약을 입안에 넣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복용후기: 부작용들, 약 의존성 경계경보 발령

먹자마자 드는 생각은 ‘맛이 없다’였다. 약 자체는 맛이 없다. 감기증상에 사용하는 약물들은 어떤 맛이 느껴지게 마련인데, 심지어 캡슐약은 캡슐이 구강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침의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에 반응하면서 녹을 때 느껴지는 맛이 있는데, ADHD로 처방받은 이 약은 약이 느껴지지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맛을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지.

먹고 난 직후 나의 몸과 마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나는 변화가 없다고 느꼈다. 이것이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약을 복용한 당일날 그녀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야 산멘아, 너 과장된 몸짓이나 갑자기 흥분돼서 말하는 것이 줄었어. 너 이러지 않았잖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막~~ 이러면서 손짓발짓 하면서 이야기했던 애가 굉장히 차분해졌어. 뭐랄까? 갑자기 조용해져서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야'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아니 나는 아무런 변화감을 못 느끼는데 그녀가 느끼는 변화감 도대체 무엇일까? 분명 약물이 나의 과장된 몸짓과 과잉행동에 효과 가 있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내면에서 올라왔다. 내가 느끼기로도 분명히 과장된 몸짓과 행동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흥분하면서 말하는 빈도가 아니 흥분되는 역치 값이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까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만사가 에너지를 사용해 가면서 열변을 토할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역치값이 높아진 것인지 그 정도의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약물의 효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에게, 약물효과를 게다가 내가 아닌 타인의 입에서 반응을 듣게 되니 의식이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1주일이 지나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내가 겪은 부작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가슴 두근 거림, 두통, 틱 유사 증상, 강박증상, 불안감, 각성증상

ADHD약 부작용이라고 부르는 증상들이 하나둘씩 내 몸에서 관찰되고 있었다.

‘이 약은 각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앞으로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술과 담배 그리고…’

‘저 선생님, 그럼 커피도 안 되나요?’

‘네. 되도록이면 커피도 마시지 않는 편이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렇게 내 카페 가서 마시면서 즐길 음료 종류가 하나 줄어드는구나 아아 어쩌란 말이냐’

약을 복용한 지 1주일 무렵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약의 효과, ‘각성’이라는 단어가 내 뇌리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이 약을 복용하면서 나는 수면시간이 점점 늦어졌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낮시간을 넘어서 저녁 6시 이후, 약의 효과가 줄어드는 저녁시간에 가슴 두근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크게 뛴 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편두통도 있었다. 편두통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했을 때, 어떤 자극이 왔는데 그것에 대한 반응과 대처가 적절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었는데, 내 경우에는 그것이 압박감이었다. 긴장감은 오히려 편두통을 느끼지 않았으니 뭔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질 만도 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아, 또 하나 부작용이 있다. 바로 입맛 없음, 식욕부진이다.

식욕은 사람이 자신의 육체를 이루도록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사행위의 출발점과도 같은 동기이다. 이 식욕이 있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모든 인간은 식품으로부터 영양소를 얻어 적절한 대사과정을 통해 육체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또한 먹음으로써 식욕이 어느 정도 기준에 충족되는 경우에 만족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 또한 계속 생명을 지속할 수 있는 신호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약을 먹은 지 1주일이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된 현상이 바로 밥을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는 것! 물론 작정하고 많이 먹을 때는 2배~3배 정도 많이 먹을 때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배고프다는 허기를 느끼는 빈도수가 줄어들어 2끼를 먹고도 허기를 느끼지 않으며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식욕감소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아차차… 가장 중요(?)한 부작용에 대해 내가 추가로 확인한 사항이 있다. ADHD 치료 약물과 ‘성욕’, ‘정자생산’의 상관관계. 다른 말로 하자면 무려 ‘리비도(Libido)’와의 연결고리이다.

“저 선생님, 이 약을 먹으면 아이를 가지는데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나는 어떻게 보면 남자로써 제일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부작용’에 대한 화두가 의사선생님과 나 사이에서 오가고 있는 틈을 타 은근슬쩍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이런 내 질문을 듣자마자 얼굴에 웃음꼬츠… 아니 미소를 활짝 지으시면서 답을 주셨다.

"이 약물은 정자생성에 영향을 안줘요, 왜요 산멘씨 요즘 들어 아침에 그 뭐 잘 일어나요? 안서요?”

“아, 네에? 네에에?? 아 그게 그런건 아닌데 이게 약을 먹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이라서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독자분들은 이런 질문을 정신의학진료시간에 한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이 질문은 약물치료시 약물부작용에 대한 진지한 문의를 드린 것이기에 호기심 천국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치료를 위한 궁금증을 해소하여 앞으로의 치료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확신을 얻기 위한 나름 소신을 가지고 한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오해는 아니아니 아니되오.


루틴(Routine)이 필요한 이유:

‘식욕감소는 약물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에 하나예요. 식사시간을 루틴으로 만들어서 습관처럼 식사하게 되면 일할 때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생활 행동 처방에서 ‘루틴(Routine)’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내가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일정주기마다 하는 일과, 다른 말로 루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10분 뒤의 미래엔 어떤 일이 일

어날까? ‘만약~라면’, ‘이를테면 ~라고 해보자’ 등등의 가정과 그에 따른 경우의 수들 일명 시나리오들을 각각 시뮬레이션하던 나의 생각사용패턴과 그 생각들을 떠올리는데 드는 에너지, 그리고 집중력들을 일거에 한줄기 흐름으로 정리함으로써 주의력이 분산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바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 위주로 일과 짜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어떤 한 주제나 분야에 집중하면 식사도 생각나지 않고, 화장실도 방광이나 대장이 터질듯한 신호를 보내며,

‘너 이번에 화장실 안 가면 네가 입고 있는 바지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까?’ 하는 협박을 보내기 전까지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물 마시는 것도 잊고, 연락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도 잊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잊고 하는 바람에 중요한 일을 못해서 결과가 없고 끝맺음이 없고 항상 흐지부지, 우유부단하다고 지적받으면서 살아왔던 인생이었는데,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바로 ‘루틴’을 짜는 것이었다니.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이 생명유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원칙으로 하루 일과를 구성하면 나머지 시간에 배치해야 하는 일들을 결정할 때는 그 다음 우선순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중요도 순으로 배치하면 된다는 것. ‘Simple is the best’, 단순한 게 가장 최고다.라는 거장들의 비결을 이렇듯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흥, 당신들은 나와 같이 않으니까 그런 말을 하겠지요’ 하면서 그들과 나의 다름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비교고찰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약물을 먹고 나니 ‘다들 이런 느낌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어?’ 하는 놀라움을 느끼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가능하다’에서 ‘할 수 있다’로, 그리고 ‘한다’로 점점 실현의 가능성이 올라가면서 느끼는 자기 계발서 혹은 자기 계발유튜버들이 강조하는 ‘자기 효능감’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은 요술방망이가 아니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행동’

약물은 만능이 아니었다. 내 집중력은 소위 잘 가다가 ‘잘 가는 줄 알았는데 삼천포로 빠지는’ 결과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약물의 효과는 내가 원하는 영역에 평소보다 더 적은 에너지로 주의 집중을 쏟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그것 말고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즉시 그곳으로 신경이 쏠리면서 해야 할 일이 조금씩 지연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나는 또 깨달음을 얻었는데 바로, ‘약물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약물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물만 의존하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치료자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인지하면서 행동치료를 해 나가는가’라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 약은 일종의 무기다. 그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효율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도 있는 것이다. 집중력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에너지인데, 그 일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분산돼버린다면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 위주로만 업무를 진행해 나가자’라는,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이 마음가짐은 나를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준비한 다짐들과 계획들은 전부 종이 위에만 기록된 문장들에 불과할 것이다. 행동만이 변화를 만들어낸다.


메모를 습관화하자

‘중요한 일들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을 고치는 데 있어 메모는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중요한 일,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면 반드시 메모하세요. 작은 수첩, 주머니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공책 같은 것을 하나 구해서 거기에 오늘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세요’ 진단을 받은 뒤로, 나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들은 지키야만 치료를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메모’하는 습관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짧게 느껴지는 진료가 끝난 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유튜브를 검색했다.

‘메모할 때 되도록 종이에 적도록 하세요. 종이에 적어야 촉감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데에 더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이런 처방을 받았다고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예전에 쓰다가 다른 다이어리를 사용하면서 쓰지 않게 된 작은 공책을 주었다. 감정일기장으로 썼었다고 한다.

‘아이고아이고 X들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네에? 이런 건 얼른 없애버려야지!’ (종이를 부욱 찢는 소리) 하며 그녀가 나에게 준 이 공책은, 중요한 일들을 메모하는 것은 기본, 손으로 쓰면서 무언가를 정리할 때 사용하는 요긴한 도구가 되었다.


정보는 세부사항까지(할 수 있는 한)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자세하게 예를 들어 주소라고 하면 그 도로명 주소 뒤에 부분 몇 동 몇 호까지 확실히 파악한 뒤에 일을 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해야만 실수를 줄일 수 있어요’

내가 생각이 많다 보니 다 말해주지 않은 정보들도 추론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예상가능한 경우의 수들을 다량 산출하는 등의 생각습관으로도 지레짐작하고 앞서나가고 하면서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그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일들을 하는 등의 실수연발이었던 나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물어볼 용기도 용기이거니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할 줄 아는 것들인데 유독 나만 못하는 것 같은 비교의식으로 인해 스스로의 자존, 자신감까지 갉아먹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 행동치료 지침을 듣고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내가 욕을 먹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며 욕을 먹는 것은 일을 이루는 데 있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이렇게 최면을 걸고 나니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에겐,

‘알아서 잘 딱 맞게 깔끔하게 센스 있게’(알잘딱깔센)이라는 신조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들을 인정하고 어떤 일을 배울 때는 그 밑바닥까지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치료해나가다 보면 나는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거리면서 삶을 살아 나가기로 했다.


비장의 무기: 마인드 맵(Mind Map)

내가 방사형 사고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현역으로 공군에 복무할 때였다. 진중문고라고 방공포병 부대 생활관에 있던 작은 도서관에서 발견한 마인드맵 학습법과 같은 책에서 처음 발견한 이 생각정리 기술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착안하여 개발되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며 인간의 사고는 일직선이 아닌 여러 갈래로,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동물이다’

‘자연의 만물들 생김새는 방사형으로 뻗어간다’

마인드맵을 사고방법을 창시한 토니부잔은 그의 형 베리부잔과 함께 이 사고법을 체계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하며 사고혁명을 일으켰다. 그 내용이 내 앞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씨만 쓰는 것은 너무 지루하다! 그래서 나는 이 사고 방법과 메모방법을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토니 부잔이 쓴 ‘마인드맵 북’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직접 해보는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마인드맵으로 생각과 글 내용을 요약하고 적는 것을 숙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대학교를 다닐 때 법학과목들 시험에서, 어떤 아이디어들을 구상하거나 어떤 시험공부를 하더라도 마인드맵으로 메모하면 그 기억력이 직선식으로 노트정리하며 시험공부를 할 때 보다 공부시간이 적었음에도 불과하고 시험성적이 매우 좋게 나왔던 경험까지 달성했다. 나는 내가 그동안 나도 모르게 ADHD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적합한 생각 메모방법을 익혀오고 있던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할 수 있다는 것은 일을 기획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체계화하거나 연관되는 정보들과 묶어서 기술하는 것은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등반에 필요한 도구들을 정리하며

ADHD라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여태껏 준비한 도구들을 위에서 한번 살펴보았다. 그동안 내가 ADHD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배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도구(마인드맵)도 있었고, 인지과정에서 사용하기로 결심했고 사용하고 나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의사 선생님께 보고해야 하는 도구(약물)도 있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신중함을 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구사용이 익숙해질 때까지 숙달시켜야 한다는 것도 다짐해 본다.


나 대신 일하는 도구가 있다면서?

요즘 생성형 AI라는 도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Chat GPT(챗지피티)를 위시로 한 인공지능 모델들이 나와서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어왔었지만, 서류지옥에 빠져 허덕이는 나에게 AI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업무자동화’라는 꿈을 꾸었지만 을 내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AI, 인공지능. 그런데 이제 프롬프트라는 ‘명령어’를 쓰면 명령어를 분석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앱 스스로 동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인공지능 기술이 너무 놀라웠다. 또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다시 일으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프로그램의 업무처리 순서를 짜는데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AI도움을 받는다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예감.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3명이 할 일을 1명이 다 하면서 업무효율이 극대화되고 임금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들을 접하며 나는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만약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굳이 이런 것을 배우지 않고도 살아갔으리라. 하지만 나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증상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없이는 업무효율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AI기술을 배우는 것이 내 업무효율을 올리는 데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하고 망설임 없이 배우려고 마음먹었기에 개발자노트 또한 ‘산만해서 살만한’이라는 이 ‘ADHD등반기’에 올리도록 하겠다.


나는 산만해서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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