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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나 Sep 21. 2024

바다냄새 1

[부우우-]

드디어 도착했다.

죽기 전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어머니.

어머니를 대신해 꼭 어머니의 고향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가 항상 얘기하던 어머니의 고향과 어머니의 가족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머니. 또 얘기해 주세요.” 나의 말에 어머니의 파리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이미 병색이 짙은 어머니에게 나는 계속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만 남은 나에게 어머니는 절대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 말을 거는 거밖에 없었다.


내 어린 기억 속 어머니는 몸이 아주 약한 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일을 나가도 금방 지쳐 힘들어했고 몸이 아파 자리에 몸져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변에서는 대를 이를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를 탓하며 아버지에게 아들을 낳아줄 첩을 들이기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아꼈다. 전쟁이 끝나고 더 가난해진 우리 가족을 위해 아버지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했는데 내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사고였다. 아버지를 잃고 몸이 약한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고 그마저도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우리 모녀는 언제 굶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고 배부른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어미가 살던 곳은 이곳과는 다른 곳이란다. 바람이 불면 시원한 나무의 향보다 짜디 짠 소금의 향이 나는 곳이지. 바다를 보며 바람을 느껴보는 것을 참 좋아했단다. 짜디 짠 소금의 향도 싫지 않았지. 휴.. 다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몸이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어머니는 계속 고향을 그리워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아주 먼바다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 태어난 어머니가 어떻게 이곳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얼마가 지났을까.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머니에게 편지가 한 통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편지를 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고향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했었다. 얼마나 펼쳐보았는지 편지내용이 적혀있는 종이는 너덜너덜해졌고 봉투는 색이 바래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픈 어머니가 잠시라도 기운이 나면 소중하게 보관해 둔 편지를 꺼내 쓰다듬으며 이제는 시간이 지나 가물거리는 고향과 가족에 대해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태어나서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를 상상하고는 했다. 바람에서 소금의 향이 나고 아주 큰 물이 있는 곳. 나에게 바다는 그런 곳이었다. 짠 소금이 있는 큰 물.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가요. 어머니의 고향에 저도 가보고 싶어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기억 속 희미해진 고향을 그리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래. 나도 가고 싶구나. 어머니와 동생들은 잘 지내는지.. “

힘겨운 숨을 내쉬며 잠이 든 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어머니는 곧 아버지를 따라가시겠지. 고향을 그리는 어머니에게 고향을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아직 어린 나 자신이 너무 한스럽고 서글다.

며칠이 지나고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나의 말에도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한 번씩 들리던 동네 아주머니는 잠든 어머니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집으로 오지 않았다. 입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딸은 일찍이 시집을 보내고 아들은 멀리 일을 보내는 일이 다반사인데 곧 홀로 남겨질 아이를 책임지게 될까 아무도 우리 집으로 오지 않았다. 누워있는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힘이 날까 나무를 캐 국을 끓여 어머니에게 먹이는데 이제는 그 물도 삼키지 못했다.

 “어머니..” 자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어머니는 나의 울음 묻은 목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떠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머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힘겹게 눈을 뜬 어머니가 떨리는 손을 들어 나에게 뻗었다. 아니 어머니의 손을 끌어와 어머니의 손에 내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어머니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 미안하구나.. 널 이리 남겨두고… 내 새끼..”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조금만 힘내서 우리 어머니 고향으로 가요. 가서 할머님도 뵙고 바다도 보고 해요. 어머니.” 힘겨운 어머니의 말에 나는 비명을 지르듯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정말 어머니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에게 온기를 나눠주려 어머니를 끌어안고 또 안았다.

 “아..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구나… 어머니…” 어머니는 이 말을 내뱉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감은 눈과 힘없이 쳐진 팔. 어머니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점점 차가워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나는 울기만 했다. 무엇을 더 하면 어머니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혹시나 자신들이 떠맡게 될까 동네사람들은 어머니의 장례만 치르고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는 멍하니 방에 앉아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이 집에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 눈에 들어온 어머니가 누워있던 이부자리를 보고는 다시금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기 전까지 자식인 나와 고향에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던 내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그리워한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아직 어린 몸이라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 막막했지만 그래도 가야 할 거 같았다. 집에 있던 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어머니의 편지를 품 안에 조심스럽게 넣고 나는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기에 검수원에게 들키면 쫓겨났다가 다시 몰래 기차를 타고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말한 바다가 있는 곳은 기차를 타고서도 두 달을 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뭔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어머니가 얘기했던 짜디 짠 소금의 냄새인가. 소금의 냄새라고 하기엔 내가 알고 있던 소금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던 짜디 짠 소금냄새가 나는 바다냄새를 상상하며 집에 있던 소금에 코를 묻고는 했는데 그때 맡았던 냄새와는 너무 달랐다. 뭔가 비릿하면서도 이상했다. 이 냄새가 어머니가 그리워한 그 냄새가 맞나.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품 안에서 낡은 편지를 꺼냈다. 낡고 낡아 이제는 흐려진 편지봉투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았다. 혹시나 찢어질까 조심스럽게 주소를 다시 한번 눈에 담고는 품 안에 조심스럽게 다시 넣었다.

 ‘꼬르륵’

참고 참았지만 배고픔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시장에서 몰래 만두를 훔쳐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는데 배고픔은 금세 돌아왔다. 그래도 봉투에 적힌 곳으로 가면 아마 이 배고픔은 잊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어서 빨리 그곳으로 가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렸다.

 “아이야. 어디를 가려고 이렇게 여기저기 서성거리니” 기차역 앞에서 주소를 중얼거리며 주변을 기웃대는 내 모습을 보고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한 발짝 남자에게서 더 멀어졌다. 내 모습에 남자는 빙긋이 웃더니 자신도 한 발짝 나에게서 떨어지더니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아주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 내 아버지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 나중에서야 그 옷이 멋진 신사들이 입는 양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을 찾고 있어요.”

나는 품 안에 있던 종이를 꺼내 남자에게 보여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처음 본 그 남자에게 왜 고민도 없이 종이를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눈을 마주치려고 쪼그리고 앉던 그 남자의 멋진 옷. 그 멋진 옷이 구겨지는 건 별거 아닌 듯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마주친 남자의 따뜻한 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음.. 내가 데려다줄 수 있다. 그전에 여기에 가서 뭐를 먹고 가지 않겠니.”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남자는 바로 옆에 있는 가게를 보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앞에는 커다란 찜 솥에서 하얀 김이 눈앞을 가리려는 듯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남자는 내 손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아이가 먹을 수 있게 한 접시 주시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남자는 자리에 앉으며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남자의 행색을 보더니 허리를 깊게 숙여 대답하고는 찜 솥으로 가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여니 아까보다 더 많은 연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인은 만두 한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아까 찜 솥에 있던 만두가 접시에 가득 쌓여있는 모습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어서 먹으렴.”

 “…그런데 왜 절 도와주시는 건가요.”

만두에 눈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에 미소를 짓던 남자에게 내가 물었다. 남자는 내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른이 아이를 돕는 것은 아주 당연하단다. 더군다나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아이를 홀로 두고 갈 어른이 어디에 있겠니. 어서 먹으렴. 다 먹으면 그 편지에 적혀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마.”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두를 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배고픔에 한참을 정신없이 먹던 나에게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적혀있는 주소에는 누가 살고 있니.”

 “어머니의 가족들이 살고 있어요. 할머님과 어머니의 동생들이요.”

배가 차서인지 남자의 따뜻함 때문인지 나는 순순히 남자에게 대답했다. 남자의 나의 대답에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금 말을 했다.

 “편지가 많이 오래되어 보이던데 언제 받은 편지인지 알고 있니?”

 “어머니가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고 받은 편지라고 했어요. 어머니의 동생이 보낸 편지라고. 지금은 내용이 다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의 말로는 가족들이 다 같이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다들 잘 지내고 있다고, 어머니도 잘 지내고 있으라고 적혀있었대요.”

나의 말에 남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렇구나.”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인가요.”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다. 아이 너를 도운 것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또래로 보여서 말을 걸었지.”

만두를 다 먹고 나서야 나는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선생님이라는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남자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남자는 내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주소를 보니 아주 먼 곳에서 왔던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몰래 기차를 탔어요.”

 “검수원이 있어 몰래 기차를 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검수원에게 들켜 쫓겨나면 몰래 숨어있다 달리는 기차에 몰래 타기도 하고 짐칸에 숨어있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니.”

 “두 달쯤 되었어요.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이곳으로 출발했어요.”

기차표도 없이 두 달이나 걸려 이곳으로 왔다는 나의 말에 남자의 따뜻해 보이던 눈이 커졌다.

 “음… 아이야. 네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알려주어야 할 듯싶구나. 그 편지에 적혀있는 주소는 오늘 하루에 갈 수는 없는 거리에 있단다. 내가 데려다 줄 터이니 위험하게 몰래 기차에 타는 행동은 하지 말거라. 알겠니.”

이곳으로 오기만 하면 어머니의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의 말에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도와준다는 남자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일어나거라. 표를 사고 하루 묵을 곳으로 가야 한다.”

남자는 주인에게 셈을 치르고는 내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섰다. 남자의 손에 끌러 기차역으로 가 기차표를 사고 집이 모여있는 주택가로 향했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이 아주 많았다. 나는 남자의 손에 이끌러 걸어가면서도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주택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한참을 걷던 남자가 어느 집 앞에 멈췄다. 남자는 거리낌 없이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집 안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이고. 선생님. 이게 얼마만인가요.”

아주머니는 남자가 무척이나 반갑다는 듯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맞아주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방 문이 열리고 아이들의 뛰어나왔다.

 “선생님.”

 “선생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방에서 나온 아이들은 저마다 남자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며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 역시 아이들을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휴. 아니에요. 선생님은 언제든 환영이랍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남자와 친근하게 대화하던 아주머니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다. 나는 멋쩍어하며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의 뒤로 아이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역에서 만난 아이입니다. 혈육들을 찾으러 왔다는데 묵을 곳이 없어 이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하루 신세를 지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렴요. 이 쪽으로 오세요. 선생님이 계시던 방이 아직 그대로 비어져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신세를 집니다. 잠시 후 보자꾸나. 아이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남자는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고 집 안을 들어갔다.

 “여기가 어디예요.”

 “이곳은 가족이 없는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란다. 사정이 있어 가족과 떨어진 아이도 있고, 바다에 가족을 잃은 아이도 있지.”

 “… 왜 이곳으로 오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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